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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남부 편 - 팔달산 정상에 위치한 ‘대한민국독립운동기념비’에 얽힌 사연경기도의 역사와 문화를 찾아서
김희태 기자 | 승인 2019.06.01 13:02

흔히 많은 이들이 수원을 찾게 되면 대표적인 관광지인 수원 화성을 방문하곤 한다. 팔달문의 일부 구간을 제외하면 수원 화성의 성벽을 따라 걸어볼 수 있기에, 지금 이 시간에도 많은 이들이 성벽을 따라 걸을 만큼 걷기 코스로 손색이 없다. 또한 성벽을 따라 걷다 보면 자연스럽게 팔달산의 정상인 서장대에 오르게 되는데, 이곳에서 서면 수원이 한 눈에 조망된다. 특히 서장대에서 바라보는 야경은 수원 관광의 백미로 손꼽힌다.

팔달산 정상에 위치한 3.1운동 기념탑과 대한민국독립운동기념비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서장대에 대해서는 알아도 같은 정상에 있는 3.1운동 기념탑과 대한민국독립기념비에 대해서는 잘 모르거나 그냥 지나치는 것을 볼 수 있다. 위치상 주목해서 보지 않으며 찾기가 쉽지 않은 장소로, 특히 올해는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라는 상징성을 간직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해봐야 할 장소라고 할 수 있다. 재미있는 사실은 대한민국독립운동기념비에 얽힌 사연으로, 애초에 이곳에 세워진 비석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대한민국독립운동기념비는 어떤 사연을 간직하고 있을까?

■ 대한민국독립운동기념비 자리에 노구치 순사부장의 순직비가 있었다고?

대한민국독립운동기념비의 본래 위치는 팔달산이 아닌 지금의 삼일상고 인근에 위치하고 있었다. 최초 이 비석은 일제강점기 때 만들어졌기에 시기적으로 대한민국독립운동기념비는 세워질 수는 없었다. 그렇다면 대체 이 비석은 누구를 위한 비석이었을까? 놀랍게도 이 비석이 세워진 목적은 노구치 순사부장의 순직을 기리는 위한 것이다. 그렇다면 노구치 순사부장이 누구인가? 지금의 화성시인 송산, 사강지역에서 있었던 3.1운동을 진압하다가 주민들에게 처단 당했던 그 노구치 고조(野口廣三) 순사부장인 것이다.

대한민국독립운동기념비. 원래 위치는 방화수류정 인근 지금의 삼일상고 부근이다.
사강시장 옆 수협건물. 노구치 순사부장의 처단지다.

순직비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당시 격렬했던 3.1운동의 성격을 알 수 있다. 1919년 3월 28일, 노구치 순사부장은 사강시장에서 진행된 만세운동을 진압하기 위해 출동했다. 시위대를 해산시키기 위해 만세운동의 주도자에 대한 체포 작전에 나서게 되고, 이 과정에서 노구치 순사부장의 총에 홍면옥이 부상을 당하면서, 격분한 군중을 피해 도망치던 노구치 순사부장은 붙잡혀 처단을 당했다. 그 장소가 지금의 사강시장 옆 수협건물 앞으로, 지금도 사강시장을 중심으로 옛 송산면사무소(=지금의 사강 4리 마을회관), 송산면사무소 뒷산(=송산초등학교) 등에서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 대한민국독립운동기념비가 들려주는 역사의 흔적

일제는 처단 당한 노구치 순사부장의 순직을 기리는 비를 지금의 방화수류정 인근 삼일상고 부근에 세우게 된다. 일명 ‘노구치 순사 순직비’가 세워진 배경으로, 일제강점기까지만 해도 순직비는 계속 자리를 지킬 수 있었다. 아마 당시 지나가던 수원 군민들이 이 비석을 봤다면 당장이라도 없애고 싶었겠지만, 시대의 분위기 상 그러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해방을 맞이하면서 이 순직비의 운명은 180도 바뀌게 된다. 눈엣가시처럼 여겨진 이 순직비는 철거를 피하지 못했는데, 사실상 일제강점기를 상징했기에 이러한 운명은 이미 예견된 것인지도 모른다.

관심을 가지지 않으면 그냥 지나치기 쉬운 3.1운동 기념탑과 대한민국독립운동기념비
대한민국독립운동기념비의 전경

대신 순직비를 없앤 자리에는 나라의 독립을 기리는 대한민국독립운동기념비가 세워졌다.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바로 그 비석인 것이다. 그런데 비석 자체는 없애버렸지만, 비석을 받치는 자리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즉 우리가 대한민국독립운동기념비를 기억해야 하는 이유인 것이다. 기념비는 1945년 8월 15일에 세워져, 이후 1969년 10월 15일 현재의 자리인 팔달산 정상으로 옮겨지면서 현재 우리가 보고 있는 비석의 모습이 만들어진 것이다. 어떻게 보면 관심을 가지고 보지 않으면 있는지 조차 알기 어려운 비석이지만, 이 비석에 담긴 의미는 결코 가볍지 않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관심을 가지고 바라보게 될 때 여기에 담긴 의미를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로,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주년을 맞아 기억해야 할 역사의 한 장면이라고 할 수 있다.

김희태 기자  mail@newstow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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