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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 속의 폭력
이건일(당진북부사회복지관 관장) | 승인 2019.06.16 23:13

누구에게나 기억하기 싫은 순간이 있다. 하지만 때가 되면 원치 않게 기억이 떠올라 마음을 괴롭힌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일, 바로 학창시절의 폭력이다. 일터에 있으면 가끔 학교 폭력으로 처벌하는 학생들을 사회봉사하게 해달라며 의뢰가 들어온다. 아이들의 모습은 좀 남달라 보이지만 대화를 나누면 참 순박하다. 기본적인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아이들이지만 지금은 처벌의 하나로 자유가 제한된 사회봉사 활동을 해야 한다. 무엇이 아이들을 폭력적이게 만드는 것일까? 대부분의 이유는 바로 어른들이다. 아이를 둘러싼 환경, 어른들이 아이들을 대하는 태도에서 아이들의 비행은 시작된다.

학창시절 학교 가는 것이 끔찍했다. 25년도 훨씬 지난 일이지만 계속해서 기억이 난다. 히틀러라는 별명을 가진 교장은 정말 히틀러처럼 아이들을 대했다. 수업 중 수시로 한 반 전체를 불러 운동장에 돌을 고르게 시켰고, 다른 곳에서는 학교의 환경정화 활동이라는 미명하에 학교 구석구석에 삽질을 시켰다. 이에 반항하는 아이들이 있다면 문제아가 되었고 그 아이는 체벌을 받아야 했다.

당시 학교 폭력은 일상이었다. 아이들끼리의 싸움이 아니라 교사에 의한 폭력 말이다. 교사들에게는 아이들을 향한 폭력이 무척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한 교사는 해당 수업 시간 때마다 아이들을 길게 줄 서게 한 후 뺨을 플라스틱 막대기로 두어 차례 휘갈겼다. 50명의 학생들 중 그 매질을 피할 수 있는 사람은 5명이 채 되지 않았다. 매시간 인격 모독의 매질을 당한 이유는 숙제를 하지 않았거나 교사가 내는 문제를 정확하게 풀지 못해서다. 다른 교사는 자신이 점찍은 학생이 회장이 되지 못했다며 노골적으로 불쾌감을 표시했으며 그가 수업 시간에 문제를 풀지 못하자 뺨을 여러 차례 치기도 했다. 얼마 후 수학여행 때 버스 안에서 학생들의 노래 요구에 찬송가를 불렀던 그 교사의 이중성은 아직도 내 기억에서 잊히지 않는다.

학생 신분에서 경험했던 많은 교사들은 있는 힘껏 감정을 담아 학생들을 매질했다. 교사는 그것을 사랑의 매라고 포장했지만 학생들은 안다. 그런 포장을 하지 않더라도 그것이 정말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맞으면서 느낀다. 많은 교사들이 학생들에게 폭력을 가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맞아야 인간이 된다”라는 교육 철학 때문일까? “내 아이를 때려서라도 인간 좀 만들어 주세요”라고 자신의 아이를 온전히 맡긴 보호자의 의지 때문일까? 맞아야 할 이유는 분명했다. 바로 성적이다. 그때는 성적이 좋아야 인간이었다. 성적은 인간이 되기 위한 필수 조건이었다. 이것이 교사들의 폭력을 정당화했다.

성적 지상주의에 대한 비판과 청소년들의 인권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며 사회는 변했다. 일상이었던 폭력은 이제 더 이상 일어나지 않는다. 교사의 폭력이 발생하면 가끔씩 그것은 커다란 뉴스거리가 된다. 일상이 아니라는 것이 다행스럽다. ‘상황 속의 인간’이라는 말이 있다. 그때 폭력을 행사했던 교사들을 두둔할 생각은 전혀 없지만 성적 지상주의라는 시대 상황이 교사들을 그리 내몰았으리란 생각도 부정할 수 없다.

우리는 과거 형제복지원 사건을 통해서 국가와 사회가 가진 철학이 사람을 어떻게까지 만드는지를 경험했다. 경찰들이 노숙인들을 형제복지원으로 보내면 높은 근무평점을 받게 하는 일, 사람을 보내는 대가로 커미션을 받던 일은 이미 드러난 사실이다. 수용소가 복지원으로 둔갑했다. 인권 유린을 대가로 승진을 하던 사회시스템에 놓여 있다면 대다수의 직원들은 생각 없이 따르거나 일부의 인권 감수성이 있는 사람들만이 갈등하지 않을까?

국민을 지켜달라고 힘을 준 정부는 도리어 국민을 상대로 폭력을 행사한다. 시민들은 국가의 폭력으로부터 해방되기 위해 노력하고 헌법 제10조를 지켜 국민의 인권을 보호하라고 요구한다. 짜인 상황 속에 놓여 있는 사람들은 그들이 잘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폭력을 행사하며 인권을 유린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늘 깨어 있어야 한다. 그들이 행했던 반인권적인 상황이 더 이상 짜인 각본대로 움직이지 않도록 해야 한다. 복지관에서 사회봉사 활동을 하고 있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책임 있는 어른의 모습을 다시금 떠올린다.

이건일(당진북부사회복지관 관장)  mail@newstow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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