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오피니언 칼럼
계획 없는 여행이 어때서
이소영 기자 | 승인 2019.06.17 06:48

여행을 다녀왔다. 삼척과 울진, 강릉 일대를 누볐다. 흰 구름이 낀 하늘보다도 푸른빛이 진한 바다를 눈과 마음에 담고 왔다. 2박 3일간의 길 위의 여정. 특별히 이번 여행에선 숙소를 예약하지 않았다. 아직은 비성수기라서, 안심이 되어서 등의 이유는 아니었다. 애초부터 나는 시간 순으로 계획 된 여행을 좋아하는 인간이 아니다. 때마침 함께 여행을 떠난 지인도 나와 비슷한 부류였다. ‘흘러가는 대로. 어쩌다’의 여행을 선호하는 타입.

2박. 숙소를 못 구해서 텐트를 치고 길바닥에서 자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하루는 삼척의 어느 대안학교 숙소에서, 하루는 강릉의 작은 책방 사장님 댁에서 잤다. ‘삼무곡’이라는 학교에서 만난 교장 선생님은 전직 목사였다. 신학대를 졸업하고 제법 큰 교회에서 있었다. 그러다 모든 것을 내려놓았다. 그분의 왈, 막노동을 하며 집 짓는 법을 터득하고, 밑바닥의 삶을 경험했단다. “기독교를 통한 ‘교회’와 ‘교리’를 벗어나 기독교를 통한 ‘예수’를 일상에서 만났어요. 성경책과 머릿속 지식을 던져버리고 말이죠. 저는 불교도 공부를 많이 했어요. 사랑이 아닌 것을 경험하면 사랑을 더 잘 알게 되죠.”

‘삼무곡’이라는 뜻은 3가지 無를 말하는 것인데, 여기서 無란 ‘판단’, ‘소유’, ‘계획’을 ‘하지 않음’을 의미한다. 잠시 머문 이 학교에서 네 살 난 아들은 물이 나오는 작은 약수터를 벗 삼아 놀았다. 바구니에 물을 담아 세차도 하고, 잡초에 물도 주고, 자신을 향해 물을 뿌리기도 했다. 그렇게 자신만의 소우주를 만난 마냥, 새로운 재미를 창조해나갔다. 학교를 놀이터로 받아들인 아이는 그날 밤, 작은 통나무집에서 한 번도 깨지 않고 깊은 잠을 잤다.

다음날엔 강릉의 작은 책방에 갔다. 밤 10시가 가까울 무렵이었다. 이전에 서점 주인과 한 번 본 사이였다. 함께 간 지인은 처음 본 사이였고. 어쩌다 간 책방에서 책은 읽지 않고 맥주를 마셨다. 그리고 삶의 결을 나눴다. 지극히 사적인 대화가 오고갔다. 대화가 끝날 무렵, 주인이 물었다. “숙소는 예약 하셨어요?” 당당하게 “못했죠. 아직”하고 말하니 “두 분 저희 집에서 자고 가세요. 저는 친구 집에서 자면 돼요” 한다. 자신의 집을 내어준다는 것. 그럴 수 있는 마음의 열쇠는 어디서 나온 것일까. 오랜 시간을 두고 안 지인이 아니더라도, 머리가 아닌 가슴이 움직이면 가능하다는 걸 배웠다.

계획 없는 여행은 완벽했다. 길에서 만난 사람들과 내밀한 대화를 통해 다른 사람의 생애를 엿보기도 했다. 그 순간만큼은 타인을 함부로 폄하하지도 평가하지도 말자고 다짐했다. 동시에 연약한 내면을 성찰하고, 나만의 소우주를 쓰다듬기도 했다.

‘~해야 할 것’들이 많은 세상에서 ‘~해야 하지 않아도 될 것’을 찾아보고 싶다. 아이를 키우며 일종의 반항 심리로 행한 ‘빨래 개지 않기’가 그 중 하나다. 건조기에서 빨래를 꺼내 통 안에 쌓아둔다. 가끔 그 빨래성이 커질 무렵이면, 계절을 보고 옷을 정리하고 남에게 줄 것과 버릴 것 남길 것을 살펴본다. 빨래를 개지 않아도 아이는 잘 큰다.

시인 엘렌코트는 말했다. 완벽주의자가 되지 말고 경험주의자가 되라. 작가 정희재는 ‘아무것도 하지 않을 권리’에서 말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고 해서 결코 생동하는 삶에서 은퇴한 것은 아니었다고. 계획 없이 떠나는 여행도 그렇다. 효율과 생산성, 경쟁의 논리에서 벗어나 다른 것들을 얻을 수가 있다. 이번 주말, 이번엔 가족여행을 떠난다. 이번에도 그냥 떠나냐고? 그럴 리가. 남편 눈살에 못 이겨 리조트 예약은 진즉 끝냈다. 사람은 내 입맛대로 바꾸고 소유할 수도 없는 법이다. 살아보니 그렇다. 그래서 인생은 쉽고도 어렵다.

이소영 기자  mail@newstower.co.kr

<저작권자 © 뉴스타워,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소영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16310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정조로 966(조원동)  |  대표전화 : 031)373-8770  |  팩스 : 031)373-8445
등록번호 : 경기, 다01040  |  발행인 : 조백현  |  편집인 : 조백현  |  청소년보호책임자 : 조백현 대표   |  이메일 : mail@newstower.co.kr
Copyright © 2019 뉴스타워. All rights reserved.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