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인 없는 결과가 없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을 문화재에 대입해 보면 해당 문화재가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어떠한 원인이 반드시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리고 이러한 명제를 생각하게 한 장소가 바로 파주에 소재한 윤관 장군의 묘다. 흔히 윤관 장군이라고 하면 고려 때의 명장으로, 무인으로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의외로 윤관 장군은 문과를 급제한 문관으로 이러한 사례는 강감찬 장군의 사례에서도 찾을 수 있다. 전형적인 문반 우대 사회였던 고려의 일면을 엿볼 수 있는 대목으로, 이 같은 풍조는 훗날 무신정변(武臣政變, 1170)의 배경이 되기도 했다.

파주시 광탄면 분수리에 위치한 윤관 장군의 묘

이러한 윤관 장군의 최대 업적이라고 하면 단연 동북 9성으로 대표되는 영토 확장을 들 수 있다. 당시 여진 정벌을 주도했던 윤관 장군은 별무반을 창설해 1107년부터 여진과의 전쟁에 돌입했다. 이때 활약했던 인물이 부총관인 오연총을 비롯해 당대 최고의 무장으로 불리게 되는 척준경이었다. 그 결과 함주에서 공험진에 이르는 넓은 영토를 개척했는데, <고려사> 윤관 열전을 보면 공험진에 비석(=고려지경, 高麗之境)을 세웠음을 기록하고 있다. <세종실록지리지> 경원도호부 편에는 공험진의 위치를 두만강 북쪽으로 7백 리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이 같은 영토 인식은 훗날 조선의 사군육진의 개척에 밑바탕이 된다. 바로 이러한 행적을 담은 그림이 바로 척경입비도(拓境立碑圖)로 현재 고려대학교 박물관에 소장 중이다.

윤관의 사당인 여충사

철종 때 세워진 교자총비(橋子塚碑). 여진 정벌 당시 하사받은 교자를 부장했다.

이 같은 공적으로 인해 윤관 장군의 이름은 널리 알려지게 되었는데, 윤관 장군의 명성은 여말선초의 시대에서도 확인된다. <조선왕조실록>의 태조와 관련한 기록을 보면 두만강 일대에 살던 여진족인 올량합과 알타리가 고려 조정으로 조회를 왔음을 기록하고 있다. 이후 이성계의 초대로 이성계의 집을 방문한 이들 중 알타리가 “옛날에 시중(侍中) 윤관(尹瓘)이 우리 땅을 평정하고 비석을 세워 ‘고려지경(高麗地境)’이라 했는데, 그 지경 안의 인민들이 모두 제군사(諸軍事: 이성계를 말한다)의 위엄과 신의(信義)를 사모하여 왔을 뿐입니다”라고 말하고 있다. 당시 동북면을 근거지로 한데다 이성계가 실질적인 고려의 실권자였기에 이 같은 발언을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여진족인 알타리가 자신들의 영토가 과거 윤관이 정벌한 동북 9성이라는 사실을 말하고 있어 당시 여진족들의 윤관에 대한 인식을 엿볼 수 있다.

■ 윤관 장군 묘의 곡장이 높은 이유는?

이러한 윤관 장군의 묘는 파주시 광탄면 분수리에 자리하고 있는데, 문제는 장군의 묘가 조선 중기까지 실전되어 아무도 그 위치를 몰랐다는 점이다. 그런데 문제는 실전된 사이 윤관 장군의 묘 뒤로 청송 심씨 묘역이 조성되었다는 점이다. 그러다 문제가 된 것이 1764년으로 이 해의 <조선왕조실록> 6월 14일 자 기록을 보면 윤관 장군의 묘에서 확인된 비석의 조각을 통해 윤관 장군의 묘라는 것이 확인이 되었고, 이로부터 산송분쟁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문제는 파평 윤씨나 청송 심씨 모두 왕비를 배출했던 명문가였다는 점에서 가문의 자존심 대결로 비화되었다는 점이다.

윤관 장군 묘의 곡장. 다른 묘에 비해 지나치게 높은 곡장에도 숨은 역사의 이야기가 있다.

대체부지로 옮겨간 청송 심씨 묘역

우선 파평 윤씨 쪽에서는 애초에 먼저 입장한 것이 윤관의 묘이니, 청송 심씨의 묘를 이장해줄 것을 요구하게 되고, 청송 심씨에서 이에 반발하면서 결국 영조는 중재로 자기네 무덤을 보호하고 다투지 말라고 진정을 시켰다. 그럼에도 두 가문 간의 반목은 지속되었고 결국 영조 역시 두 손을 들게 된다. 때문에 임금도 해결하지 못한 묘지 다툼이라는 타이틀이 나오게 된 것이다. 이러한 묘지 다툼은 이후 400년을 더 이어갔고, 마침내 지난 2007년 청송 심씨의 묘 19기를 400m 가량 떨어진 대체 부지로 이전하는 것으로 결정, 산송분쟁은 하나의 역사적 사건으로 남게 된다.

옮겨간 청송 심씨 묘역 중 영의정을 지낸 심지원의 묘

묘역 입구에 세워진 심지원의 신도비

이러한 분쟁의 흔적이 지금도 윤관 장군 묘에 고스란히 남아 있는데, 사진 속의 곡장을 보면 다른 묘와 달리 유독 높은 것을 볼 수 있다. 이는 윤관 장군 묘의 뒤쪽에 있는 청송 심씨 묘의 조망을 막기 위한 것으로, 두 가문 간 산송분쟁의 흔적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의 시각에서 보면 무슨 묘지 문제로 사활을 거나 싶은 생각도 하겠지만, 유교 사회였던 조선에서 효라는 당시의 시대 분위기와 풍수지리설이 결합되고, 여기에 두 가문의 자존심 경쟁이 펼쳐지면서 우리 역사의 대표적인 산송분쟁의 흔적을 남겼다고 볼 수 있다. 어떻게 보면 동북 9성을 개척했던 고려 명장의 묘라는 이면에 묘지를 두고 벌어진 산송분쟁은 윤관 장군의 묘를 바라보는 역사의 흔적으로 주목해볼 만한 지점이다.

김희태 기자  mail@newstow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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