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문화재를 접근할 때 단순히 외형만을 접근하는 것이 아닌 이곳에 담긴 본질을 이해할 때 해당 문화재의 의미를 이해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어떤 경우이든 원인이 없는 결과는 없는 것처럼 해당 문화재가 만들어지게 된 배경이나 과정, 현장의 모습 등은 반드시 그 사연을 남기기 마련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다녀본 곳 중 기억에 남는 장소가 바로 가평 조종암(朝宗巖) 이다. 처음 조종암이라고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사찰의 암자인가 생각했다가 한자를 보고서야 바위와 관련한 흔적임을 알 수가 있었다.

가평군 조종면 대보리에 위치한 가평 조종암. 나름의 상징성이 있는 문화재인 만큼 지명에 영향을 미쳤다.

가평 조종암 인근에 세워진 대통묘. 명나라 황제와 9의사의 위패를 봉안한 사당으로, 지금도 제남 왕씨의 후손에 제사를 지내고 있다.

여느 문화재가 그런 것처럼 조종암 역시 해당 지역의 지명에 영향을 미친 경우로, 조종암은 가평군 조종면 대보리에 위치하고 있다. 조종암이 있어 조종면으로, 인근의 조종천 등의 지명에 영향을 미친 경우다. 또한 대보리의 경우 인접한 명나라 황제(=만력제, 숭정제)의 신위를 모신 대통묘(大統廟)에서 유래했는데, <면암집>을 보면 명나라 9의사의 후손인 왕덕일, 왕덕구(王德九) 형제가 조종암 동쪽에 대통단을 설치했다고 기록하고 했다. 대통단이 현 대통묘로, 과거 창덕궁에 설치했던 대보단과 유사하다. 그렇다면 가평 조종암은 어떤 사연을 담고 있는 것일까?

■ 우리가 생각하는 사대(事大), <증여론>을 통해 다르게 해석해보자!

기본적으로 사대(事大)라는 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중국과 주변국들의 관계에 대해 이해할 필요가 있다. 사대라는 것은 단순히 조선시대만 등장한 것도 아니고, 조선만의 문제도 아니었다. 사대는 약한 나라가 강한 나라를 섬겨야 한다는 논리로, 과거 중국(=옛 중원의 세력을 지칭)을 중심으로 인근의 소국들은 조공이라는 관계로 이어져 있었다. 지금이야 조공이라는 것을 굴종적인 것으로 인식하기 쉽지만, 당시의 조공 질서는 동아시아의 외교 질서라는 점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가평 조종암 기실비. 왜 조종암이 만들어진 것인지를 기록한 비석으로, 당대의 사대 인식을 엿볼 수 있다.

실제 마르셀 모스의 <증여론>을 보면 부족사회를 관찰하던 중 포틀라치(potlatch)라는 행위를 통해 존경과 은혜의 관계가 성립된다고 봤다. 여기서 포틀라치는 일종의 위계서열을 확립하기 위한 하나의 의례행사로 여기서 핵심은 증여와 교환의 체계로 설명된다. 이러한 견해를 따르자면 조공 질서는 중국이나 조선 모두에게 이익이 되기 때문에 하는 것이다. 물론 조공이라는 것이 시기별로 차이를 보이기도 하는데, 과거 한무제나 당태종과 같이 팽창정책을 취할 때의 중국세력은 자신들의 힘으로 타 국가를 핍박하고, 군사력을 동원해 멸망시키고 그 자리에 식민지를 건설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같은 팽창정책은 중국 쪽에서도 큰 무리가 가는 것이었고, 이후 자신들이 중심이자 천자국이라는 명예에 더 집착했다. 그래서 조공이라는 것도 최초에는 힘에 굴복했던 상대가 바치는 예물에서 후대로 갈수록 무역의 성격을 가지고 있어, 조공무역이라는 말도 등장하게 된 것이다.

부여 부산각서석. 효종이 내린 비답인 지통재심 일모도원(至痛在心 日暮途遠), 지극히 원통함이 마음에 있는데, 해는 저물고 갈 길은 멀다는 의미다.

흔히 조공이라고 하면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지만, 조선 때 조공은 우리에게도 남는 장사였다. 우리가 조공을 통해 예물을 바치는 만큼 중국의 황제는 우리가 바친 것 이상으로 더 많은 하사품을 주어야 했다. 이는 주고 싶어서 줬던 것이 아니라 이렇게 함으로써 동아시아의 평화를 지키고, 동시에 황제는 명예를 지킬 수 있는 하나의 교환 메커니즘이었던 것이다. 실제 중국 쪽에서는 조선에 대해 조공 횟수를 줄일 것을 이야기한 적도 있다고 하니 이런 점에서는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조공의 부정적인 단어와는 거리가 있는 것이다. <증여론>을 통해 이러한 증여와 교환의 관계를 본다면 중국의 황제는 이러한 관계 속에서 그 지위를 유지할 수 있었으니, 어떻게 보면 중국은 명분을, 조선은 실리를 챙긴 것을 조공이라고 볼 수 있다. 이렇게 보면 현대의 중국인들이 미엔쯔(面子)라고 부르는 체면을 중시하는 이유를 이러한 역사적 기원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다.

■ 사대의 인식이 새겨진 현장, 가평 조종암

그런데 이러한 사대(事大)가 우리 역사에 전면으로 드러난 것이 바로 임진왜란(1592~97)과 병자호란(1636~37)으로, 왜(=일본)의 침략으로 시작된 임진왜란 과정에서 명나라는 조선에 파병, 조명연합군을 결성하게 된다. 이후 조정에서는 재조지은(再造之恩), 즉 망할 뻔한 조선을 구해준 명나라의 은혜라며 사대의 예를 더욱 강화해갔다. 그런데 문제는 임진왜란 이후 동북아시아가 격랑의 소용돌이에 빠져 들었다는 점이다. 임진왜란을 틈타 만주에서 여진세력을 통합한 후금과 명나라 간 운명을 건 사르후 전투(1619)가 벌어졌고, 여기서 후금이 대승을 거두면서 이제 만주에서 후금의 서진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병자호란과 삼전도의 굴욕을 상징하는 서울 삼전도비

조선으로서는 명나라와 후금이라는 두 마리 고래 사이에 낀 새우로 전락하게 되는데, 망해가는 명나라와 달리 흥기하는 후금 사이에서 여전히 조정의 대세는 재조지은(再造之恩)과 숭명배금(崇明排金)이었다. 여기에 중립외교 노선을 취한 광해군이 폐위되고, 반정으로 왕위에 오른 인조였기에 이같은 명분은 이후 후금(=청)의 침입, 정묘호란(1627)과 병자호란(1636~37)의 대외적인 침공 명분으로 작용하게 된다. 이후의 결과는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것처럼 남한산성에서의 47일간의 항쟁과 삼전도의 굴욕으로 귀결되며, 우리 역사의 치욕적인 한 장면으로 남게 된다. 그럼에도 명나라에 대한 사대는 계속되었고, 심지어 명나라가 망하자, 대보단(大報壇)과 만동묘(萬東廟)를 세워 조선에 도움을 준 신종(=만력제)과 명의 마지막 황제인 의종(=숭정제)의 제사를 지내기에 이르렀다.

견심정(見心亭). 고종 때인 1874년 성재 유중교의 일행이 조종암을 방문한 뒤 새겼다.

명의 마지막 황제 의종(=숭정제)의 친필인 사무사(思無邪). 생각에는 간사함이 없다는 뜻으로 논어의 한 구절이다.

선조의 손자인 낭선군 이우의 필체인 조종암(朝宗巖)

이러한 시대적 배경으로 가평 조종암이 만들어지게 되었는데,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가평의 뜻 있는 이들이 조종암에 글씨를 새긴 것을 감동했던 이이명이 ‘지명에 의리가 있다’며 칭송이 나오기도 했던 것이다. 현재 조종암에는 여러 각자가 새겨져 있는데, 크게 ▲견심정(見心亭) : 고종 때인 1874년 성재 유중교의 일행이 조종암을 다녀가면서 새긴 글자로, 이곳에 정자를 만들 계획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명의 마지막 황제 의종(=숭정제)의 친필인 사무사(思無邪) : 생각에는 간사함이 없다, 논어 ▲선조의 손자인 낭선군 이우의 필체인 조종암(朝宗巖) : 당대 유림들의 성지처럼 인식된 장소인 가평 조종암 ▲효종이 내린 비답인 지통재심 일모도원(至痛在心 日暮途遠) : 지극히 원통함이 마음에 있는데, 해는 저물고 갈 길은 멀다, 조선왕조실록 ▲선조의 필적으로 알려진 만절필동 재조번방(萬折必東 再造蕃邦) : 중국의 큰 강(=황하)이 굽이쳐도 결국은 순리대로 동쪽으로 간다는 의미로, 현재 명과 후금 사이에 풍랑 역시 명의 승리로 귀결됨을 의미한다. 즉 임진왜란 때 조선을 구원해준 명나라에 대한 의리를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조종암에 새겨진 지통재심 일모도원(至痛在心 日暮途遠). 부여 부산각서석에도 새겨져 있다.

선조의 필적으로 알려진 만절필동 재조번방(萬折必東 再造蕃邦)

이 가운데 가평 조종암을 비롯해, 부여 부산각서석에 새겨진 지통재심 일모도원(至痛在心 日暮途遠)은 효종이 내린 비답으로, 병자호란과 삼전도의 굴욕 이후 왕위에 오른 효종과 북벌의 흔적을 담고 있다. 차남으로 왕위에 올랐던 효종은 부족했던 정통성을 보완하기 위해 겉으로는 북벌을 계획, 정치적인 입지를 다져갔다. 하지만 북벌은 사실상의 허상이나 다름없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백강 이경여가 북벌 계획에 대한 상소를 올리자 효종이 이경여에게 비답을 내린 것이 위의 문구로, 뜻을 해석해보면 원통하지만 우리가 청나라를 이길 힘이 없다는 것을 은연 중에 드러낸 것이라 볼 수 있다. 즉 효종의 심경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비답에 대해 당시 사대부들은 자신들의 정치적 유불리에 따라 활용을 했는데, 이경여나 송시열이나 의리를 강조하는 것으로 활용했던 것이다.

가평 조종암. 사대의 인식을 엿볼 수 있는 현장이자, 우리 역사의 한 장면을 간직하고 있다.

이처럼 가평 조종암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 조선의 사대 인식이 어떠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장소다. 또한 관련 사건들을 언급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할 만큼 나름의 의미를 간직한 현장으로, 주목해서 봐야 할 경기도의 문화유산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김희태 기자  mail@newstow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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