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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문주 장군이 몽고군에게 잉어를 보낸 이유는?경기도의 역사와 문화를 찾아서
김희태 기자 | 승인 2019.07.12 08:06

답사를 다니다보면 쉽게 볼 수 있는 문화유산 중에 산성이 있다. 뜻처럼 산의 정상부근에 방어를 위한 성을 쌓은 것으로, 산성은 그 형태에 따라 테뫼식(山頂式)과 포곡식(包谷式), 혹은 테뫼식과 포곡식이 혼재된 양상으로 구분한다. 말이 조금 어려워 보이지만 테뫼식은 한자 그대로 산의 정상을 중심으로 성을 축성하는 방식을 말한다. 테뫼식의 대표적인 예로 오산 독산성(禿山城)을 들 수 있는데, 독산성의 독(禿)은 대머리 독으로 민둥산을 뜻한다. 지금도 멀리서 독산성을 바라보면 정상을 중심으로 성벽이 둘러진 형태를 마주할 수 있다.

오산 독산성. 전형적인 퇴뫼식 산성의 형태다.
공주 공산성. 포곡신 산성으로, 독산성에 비해 그 규모가 크다.

반면 포곡식의 경우 산성이 정상 부근이 아닌 산과 산에 걸쳐 성벽을 쌓는 특징을 보인다. 이 같은 축성은 바로 계곡과 같은 수원지가 포함이 된 경우로, 앞선 테뫼식에 비해 산성의 크기가 크다는 특징을 보인다. 포곡식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자면 공주 공산성(公山城)을 들 수 있는데, 앞선 오산 독산성과 비교해보면 형태상의 차이가 확연하게 드러난다. 마지막으로 테뫼식과 포곡식이 혼재된 산성의 경우 최초 테뫼식으로 정상 부근에 성을 축성했다가 이후 성을 확장하는 과정에서 포곡식이 결합된 경우로, 부여 부소산성(扶蘇山城)이나 화성 당성(唐城)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 방어의 핵심인 산성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종종 산성과 관련해 강의를 할 때 수강생들에게 관련 질문을 하는데 ‘산성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라고 물어보면 한참을 고민하던 수강생들은 ‘물’이라고 이야기한다. 누가 이야기 해줘서가 아니라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대답이리라 생각된다. 다시 반대로 질문을 던져보는데, ‘그럼 침입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라고 물어보니 한참을 고민한 기색이 역력한 수강생들에게 고구려와 수나라의 전쟁을 예시로 들어주자 눈치가 있는 수강생은 ‘식량’이라고 답했다. 산성과는 관련이 없어 보이는 질문이지만 강의 때 해당 질문을 꼭 던지는 이유는 물과 식량을 통해 우리 전쟁사의 기본적인 흐름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안성 죽주산성의 집수시설. 아래 연못의 존재를 눈 여겨볼만 하다.

우선 방어하는 입장에서 보면 산성의 가장 큰 문제는 바로 물 부족이었다. 특히 성의 형태 가운데 테뫼식의 경우가 물 부족이 심각했는데, 이는 방어를 위한 최적의 목적으로 쌓은 탓에 마땅한 수원지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수원지가 없는 곳의 경우 물을 저장하기 위한 집수시설이 반드시 필요했던 것이다. 반대로 해당 산성을 점령하기 위한 침략자들의 경우 성을 직접적으로 공격하기 보다는 대개 성을 포위하고, 물이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전략을 취했는데, 이를 알 수 있는 것이 바로 오산 독산성과 안성 죽주산성의 사례다.

독산성의 정상에 자리한 세마대. 산성에서 물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게 해준다.

오산 독산성의 경우 임진왜란 때 권율 장군이 주둔했는데, 당시 왜군들이 독산성을 포위하고 물이 떨어지길 기다리자 이에 권율 장군이 산의 정상에 말을 데리고 가서 쌀을 등에 부어 목욕하는 것처럼 보이게 했다. 이에 왜군이 독산성에 물이 많다고 착각해 포위를 풀고 퇴각했다는 것이다. 때문에 지금도 독산성의 정상에는 세마대(洗馬臺)가 있어 이 날의 이야기를 현장에 품고 있다. 마찬가지로 안성 죽주산성의 사례 역시 고려 때 몽고가 침입해 죽주산성을 포위, 물이 떨어지길 기다리는 전략을 취하자 이에 송문주 장군이 잉어를 몽고군의 진영으로 보내자 포위를 풀게 된다. 그리고 송문주 장군은 퇴각하는 몽고군을 쫓아가 승리를 거두었다.

안성 죽주산성에 자리한 송문주 장군의 사당인 충의사
충의사의 벽화. 잉어를 보내 물이 많음을 알렸던 송문주 장군의 기지를 엿볼 수 있다.

한편 <삼국사기> 대무신왕조의 기록을 보면 서기 28년 한나라가 고구려를 침입하자 이에 위나암성을 포위한 한나라 군에게 좌보 을두지의 제안에 따라 수초로 싼 잉어를 한나라 군에 보내고, 이에 한나라 장수가 물이 풍부한 성을 함락시키기 어렵다고 판단해 포위를 풀고 퇴각한 사례도 있다. 이를 통해 방어를 하는 입장에서 물은 중요한 요소이자 전쟁의 승패에 영향을 미친다는 볼 수 있으며, 산성의 답사 과정에서 중요하게 봐야할 지점이라고 할 수 있다.

■ 청야전술(淸野戰術), 보급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다

우리 전쟁사를 가만히 살펴보면 대개의 흐름이 성문을 닫아걸고, 함락시키지 못한 적이 퇴각하는 형태가 주를 이룬다. 앞서 산성의 물이 중요했다면, 반대로 침공하는 적의 입장에서는 무엇보다 식량의 중요성이 시급한 과제였다. 제 아무리 많은 대군이 오더라도 먹을 것을 먹지 못한다면 군사력이 제대로 발휘되기 어렵기 때문에 전투 병력보다 더 중요한 것이 바로 보급이었다. 하지만 방어하는 측도 바보가 아닌지라 적이 쳐들어오면 적에게 쓰일 식량이나 도구 등의 군수물자를 성안으로 이동시키고, 혹여 이동이 안 될 경우에는 불을 질러 적이 사용하지 못하도록 했다.

몽고군이 주둔했다 해서 이진터로 불린 죽산성지에서 바라본 안성 죽주산성

이를 청야전술(淸野戰術)이라고 하는데, 적어도 적에게 현지보급을 기대할 수 없게 만들었다. 이렇게 되면 적은 자국의 보급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데, 문제는 한반도의 지형상 보급선이 길어진다는 점이다. 이 과정에서 보급선에 문제가 생길 경우 침공했던 적은 말 그대로 날벼락을 맞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전쟁에서 보급의 중요성은 두 말할 나위가 없는 것이다. ‘그럼 해당 산성을 지나치고 바로 수도로 직공하면 되지 않나요?’라고 물어보는 경우도 있는데, 이 경우 수도를 함락시키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재앙에 직면하게 되는데, 우리 역사에서 살수대첩(薩水大捷)으로 부르는 수나라의 참패가 이를 증명한다.

순천 왜교성. 고니시 유키나가가 주둔했던 곳으로, 선봉장이었던 그가 남해안에 성을 쌓고 장기 농성을 했던 이유를 생각해보면 물과 식량이 전쟁에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했는지 알 수 있다.

실제 임진왜란 당시 왜군이 평양까지 점령했음에도 이후 남해안으로 후퇴, 왜성을 쌓고 장기 농성을 했던 가장 큰 이유에 대해 조명연합군의 참전이라는 표면적인 이유가 있지만, 보급선의 붕괴가 한 몫을 했다. 따라서 산성에 대한 답사를 할 때 물과 식량처럼 방어하는 입장과 공격하는 입장을 대입해서 바라보면 그 때 보이는 산성의 모습은 우리에게 전혀 다른 이야기를 들려줄 것이다.

김희태 기자  mail@newstow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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