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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남부 편 - 수원의 3.1운동 현장과 표지석의 설치, 의미 부여가 필요한 때경기도의 역사와 문화를 찾아서
김희태 기자 | 승인 2019.07.12 08:25

필자가 좋아하는 시 중에 나태주 시인의 <풀꽃>과 김춘수 시인의 <꽃>이 있는데, 이들 시의 공통점이라면 아마도 관심이지 않을까 싶다. 자세히 봐야 예쁘다는 이들 시인의 인식으로 우리 문화재를 바라보다 보면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이번에 안동의 3.1운동 유적지를 다녀오면서 인상이 깊었던 것 중 역사의 현장에 표지석을 세워 이곳에 어떤 일이 일어났고, 그 의미가 무엇인지를 기리고 있다는 점이다.

웅부공원이 3.1운동 당시 경찰서와 법원이었음을 표지석을 통해 알 수 있다.

분명 같은 거리를 2년 전 다녀갔을 때는 아무것도 없어 그저 무심히 걷던 길이었는데, 표지석을 본 뒤 해당 장소가 가지는 의미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었다는 점에서 나름 의미가 있었다. 또한 표지석을 따라 도보 답사가 가능하기에 표지석은 단순히 안내문이 아닌 그 자체로 하나의 상징으로 변모했음을 느낄 수 있었다.

■ 왜 수원은 3.1운동과 관련한 표지석을 설치하지 않나?

앞선 사례와 달리 수원의 경우는 이와는 다른 사례로, 아쉬움을 남기게 하는 현장이다. 3.1운동의 관점에서 수원은 평안북도 의주, 황해도 수완과 함께 3대 항쟁지로 알려질 만큼 역사적 의미는 남다르다. 이러한 수원의 첫 만세운동이 시작된 장소가 바로 방화수류정으로, 수원 사람들은 이곳을 용두각이라 부른다. 이는 이병헌 선생이 남긴 <3.1운동비사>를 보면 1919년 3월 1일 방화수류정에서 시작된 만세운동은 수원군(*현 화성시와 오산 등이 통합된 상태의 수원군)의 전 지역으로 확산되었다.

지난 3월 1일 방화수류정에서 재현된 3.1만세운동

이 과정에서 소작농이나 기생 등 나이와 성별, 신분을 막론한 전 계층이 참여했으며, 곳곳에 그 흔적을 남겼다. 그런데 문제는 수원을 떠올릴 때 ‘정조=수원 화성’의 인식이 너무나 고착화 되어 있다는 점이다. 대표적으로 앞서 언급한 방화수류정의 경우 많은 관광객들이 방문하는 명소이지만 대부분 이곳에서 3.1운동이 시작되었다는 것에 대해 모르고 있다. 실제 방화수류정의 안내문 어디에서도 이러한 언급은 찾을 수가 없기 때문에, 당연히 처음 수원 화성을 찾는 사람들은 성곽 예술의 관점에서만 수원 화성을 바라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화성행궁의 봉수당. 경술국치 이후 자혜의원으로 변모했고, 위생검사를 받기 위해 이곳을 찾은 김향화 선생과 기생 30여명은 이곳에서 만세를 외쳤다.
서대문 형무소의 여옥사. 김향화 선생의 흔적을 엿볼 수 있다.

또한 화성행궁의 대표적인 건물 중 봉수당(奉壽堂)이 있는데, 대부분 이곳에 대해 혜경궁 홍씨의 회갑진찬연이 있었던 장소로만 기억할 뿐 이곳에서 의기(義妓)로 칭송받는 김향화 선생과 기생 30여명이 만세운동을 외친 것은 모르고 지나치는 것이 대부분이다. 마찬가지로 화성행궁 어디의 안내문에서도 이 같은 내용을 찾기가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 외형적인 행사 외에도 역사의 현장을 찾는 사람들을 위한 세심한 배려가 필요한 때

언급한 장소 말고도 종로 거리를 비롯한 서장대, 동장대 등 만세운동이 있었던 역사의 현장은 지금도 남아 있다. 하지만 정작 이곳을 지나는 사람들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면, 무언가 본질을 놓치고 있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중앙정부나 지방정부 너나없이 3.1운동과 관련한 다양한 행사와 재현, 조형물 건립 등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 이 역시도 의미가 있는 일이라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다만 적어도 현장을 찾는 사람들을 위한 세심한 배려는 반드시 필요한데, 여기서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이 바로 안내문과 이정표라고 할 수 있다.

안동교회 앞 표지석. 이 같은 표지석의 설치는 수원에서도 벤치마킹해볼 지점이다.

겉으로는 3.1운동 100주년이라고 이야기하면서 실제 역사의 현장에서는 전혀 이러한 내용을 찾을 수 없다면, 과연 수원 화성을 찾는 관광객들이 수원의 3.1운동에 대해 알 수가 있을지 한번 고민해봐야 할 지점이다. 때문에 앞선 안동의 3.1운동 표지석의 사례는 충분히 수원에서도 적용한 가능한 사례다. 다시 앞선 김춘수 시인의 <꽃>을 생각해보면, 이름을 불러주는 관심을 보여주었을 때 그제야 수원의 3.1운동도 시민과 관광객들의 품속에 다가올 것이다. 분명 의미에 맞는 외형적인 행사도 필요하지만, 표지석의 설치와 이정표 등의 세심한 배려가 아쉬운 대목이다. 표지석을 세운 안동시의 사례처럼 하루 빨리 관련 역사의 현장에 표지석을 설치, 100주년을 맞이한 수원의 3.1운동이 널리 알려질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해본다.

김희태 기자  mail@newstow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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