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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남부편 - 화성 동탄호수공원에 태실비가 있다?경기도의 역사와 문화를 찾아서
김희태 기자 | 승인 2019.07.15 08:32

우연한 기회에 동탄호수공원을 방문할 기회가 있어 주차장을 찾기 위해 다음 지도를 검색하던 중 눈에 띄는 지명 하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바로 태봉산이다. 사실 외형만 두고 보자면 산이라기보다는 구릉 같은 느낌이 강하게 드는데, 최근 들어 전국에 있는 태실들에 대한 답사를 진행하다 보니 낯설지 않은 지명이 주는 유혹이 있었다. 그리고 혹시나 싶은 생각에 동탄호수공원을 방문했을 때 지도 속 태봉산으로 향했다. 그리고 산의 정상에서 태실비를 마주하게 되었는데, 해당 산의 지명에 영향을 미친 태실비의 존재를 마주하게 된 순간이었다.

동탄호수공원에서 바라본 태봉산의 전경. 호수공원 이전에는 산척저수지가 있던 곳이다.

사실 이 태실비의 존재는 지난 2006년 발간된 <문화유적분포지도: 화성시>를 통해 인지를 하고 있었는데, 해당 자료에서 붙여진 태실비의 이름은 ‘화성 산척리 태실비’였다. 그런데 태실비의 존재를 인지하고는 있었지만, 그 사이 동탄신도시가 개발되었기에 찾는 과정이 여의치가 않았다. 그랬기에 책 속에 있는 사진을 통해 태실비의 존재를 인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랬던 태실비를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동탄호수공원에서 그것도 태봉산의 지명과 함께 만나게 되었으니, 어떻게 보면 태실비의 만남은 우연을 가장한 필연이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 태실비를 통해 어떤 역사의 흔적을 찾을 수 있을까?

처음 태실비를 마주하면서 우선 보존 상태가 예전 자료 속 사진과 별반 달라진 것이 없다는 점에 놀랐고, 보존 상태가 생각보다 좋아서 인상적이었다. 흔히 태실(胎室)이라고 하면 조선 왕실에서 아들이나 딸이 태어났을 때의 탯줄을 전국 길지의 명당에 봉안하는 것을 말한다. 보통의 경우 태항아리와 태지석을 묻은 석물과 태실비를 세우게 되는데, 이 때 세운 태실비를 통상 ‘아기씨 태실비’ 혹은 ‘아지씨 태실비’라 칭한다. 이렇게 조성한 태실의 주인공 중 훗날 왕위에 오를 경우 해당 태실은 ‘태실가봉(胎室加封)’의 절차를 밟게 되는데, 이때 장태석물과 태실가봉비를 세워 태실을 더욱 웅장하게 조성하게 된다. 앞서 소개한 바 있는 가평 중종대왕 태봉(가평군 향토유적 제6호)이 이에 속한다.

가평 중종대왕 태봉의 전경
중종대왕의 아기씨 태실비

따라서 현재 우리가 보고 있는 왕의 태실은 이러한 절차를 밟아 조성된 것이라 할 수 있다. 다시 앞으로 돌아와 태봉산 정상에서 만난 태실비를 통해 몇 가지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데, 가장 중요한 해당 태실이 누구의 태실인가 하는 점이다. 우선 현재까지 태실비만 확인되었을 뿐 태실, 즉 태항아리와 태지석의 존재는 확인이 되지 않았다. 누구의 태실인지를 특정 하는데 중요한 것은 태지석으로, 여기에 해당 인물이 태어난 날짜와 이름 등이 기록되어 있어 누구의 태실인지를 규명하는데 있어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따라서 이 경우 태실비의 앞면과 뒷면에 있는 명문을 통해 유추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태실비의 앞면에 새겨진 왕녀아지씨태실(王女阿只氏胎室)
태실비의 뒷면에 새겨진 황명만력십육년칠월십일일을시입(皇明萬曆十六年七月十一日乙時立)

우선 태실비의 앞면을 보면 ‘왕녀아지씨태실(王女阿只氏胎室)’이 새겨져 있는데, 이를 통해 해당 태실의 주인공이 여자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신분의 경우 공주나 옹주 중 하나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반면 뒷면의 경우 ‘황명만력십육년칠월십일일을시입(皇明萬曆十六年七月十一日乙時立)’이 새겨져 있는데, 여기서 중요한 건 바로 연대 표시인 만력(萬曆)이다. 태실비에 등장하는 만력 16년을 환산해보면 선조가 재위하던 1588년에 비석을 세운 것을 알 수 있다. 즉 해당 태실비는 선조의 딸 가운데 1588년에 태어난 이를 찾으면 해당 태실비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알 수 있는 것이다.

■ 태실비의 주인공, 선조의 서녀인 정숙옹주의 가능성이 높다

여기까지 진척이 되면 선조의 딸을 찾아보면 되는데, 기록 상 확인되는 선조의 딸은 총 11명(공주 1, 옹주 10)으로, 다음과 같다.

​1. 정명공주 = 1603년(모친 : 인목왕후 김씨)

2. 정신옹주 = 1583년(모친 : 인빈 김씨)

3. 정혜옹주 = 1584년(모친 : 인빈 김씨)

4. 정숙옹주 = 1587년(모친 : 인빈 김씨)

5. 정안옹주 = 1590년(모친 : 인빈 김씨)

6. 정휘옹주 = 1593년(모친 : 인빈 김씨)

7. 정인옹주 = 1590년(모친 : 정빈 민씨)

8. 정선옹주 = 1594년(모친 : 정빈 민씨)

9. 정근옹주 = ?(모친 : 정빈 민씨)

10. 정정옹주 = 1595년(모친 : 정빈 홍씨)

11. 정화옹주 = 1604년(모친 : 온빈 한씨)

이 가운데 정명공주는 1603년 출생이니 태실비의 기록과는 맞지가 않다. 따라서 해당 태실비는 선조의 서녀들 가운데 한 명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그런데 문제는 1588년에 출생한 옹주가 없다는 점이다. 다시 태실비의 뒷면을 보면 비석을 건립한 날짜만 기록되어 있을 뿐, 출생일이 아니라는 점에서 전후 사정을 고려해볼 때 그나마 가능성이 높은 이가 바로 1587년에 태어난 정숙옹주로 추정된다.

전면에서 바라본 태실비의 전경
비교해서 보면 좋은 부여 명혜공주 태실비(부여군 향토유적 제113호)

즉 태어난 것은 1587년이지만 태실비의 건립은 1588년이었을 가능성을 제기할 수 있는데, 태지석이 확인된다면 좀 더 명확한 규명이 가능할 것이라 여겨진다. 정숙옹주는 선조와 인빈 김씨 사이에서 태어난 세 번째 옹주로, 인조에게는 고모가 되는 인물이다. 정숙옹주의 남편은 동양위 신익성(申翊聖)으로, 훗날 유교칠신의 하나이자 영의정을 지낸 신흠의 아들인데, 정숙옹주와의 사이에서 5남 4녀를 두었다.

동탄호수공원에서 만날 수 있는 태실비. 향토유적의 등재와 새로운 문화관광 자원의 하나로 주목해볼만 하다.

해당 태실비는 현재까지 수원과 화성, 오산 등지에서 확인되는 유일한 태실로, 비교적 온전하게 남아 있어 문화재적 가치가 충분히 있다. 지역의 문화재 지킴이 단체인 ‘화성시역사공동체생태학교(=역공생)’가 해당 태실비에 대한 지킴이 활동을 펼쳐왔고, 태실의 복원공사 및 화성시 향토문화유산 지정을 위한 준비가 진행되고 있어 다행이라 할 수 있다. 의외로 우리 주변에 이런 곳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잘 알려지지 않은 문화재들을 마주할 수 있다. 이러한 문화재들에 어떠한 의미를 부여하느냐에 따라 상징이 되고, 문화자원으로 조명해볼 수 있는 것이다. 어쩌면 시민들의 휴식 공간으로 조성된 동탄호수공원의 또 하나의 명소로 해당 태실비를 관심 있게 지켜볼 필요가 있다.

김희태 기자  mail@newstow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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