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에 대한 답사를 다니다 보면 원인 없이 만들어진 것은 없다는 것을 실감하게 되는데, 한번은 고양 서삼릉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서삼릉은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 3기의 능(예릉, 희릉, 효릉)이 있다고 해서 붙여졌다. 이 가운데 눈길을 끈 것은 예릉의 석물로, 예릉은 철종과 철인왕후 김씨의 능이다. 흔히 강화도령으로 불린 철종의 시대는 변화하는 국제 정세에 대처하지 못한 채 세도정치가 심화되는 경향을 보인다. 또한 삼정의 문란(전정, 군정, 환정 등의 조세제도의 붕괴)으로 인한 전국적인 민란이 일어난 시기로, 대표적인 진주농민항쟁(1862)이 발발한 것도 이때다. 하지만 해당 시기 왕의 권위와 권한은 극도로 축소된 상태였기에, 철종이 할 수 있는 일은 극히 제한적이었다. 이러한 시대를 살았기에 철종을 허수아비 임금으로 평가하고 있는 것이다.

철종과 철인왕후 김씨의 예릉

하지만 이러한 인식과는 달리 예릉(睿陵)은 규모가 크고, 화려하게 조성되었다. 이는 철종에 이어 즉위한 고종의 가계를 통해 유추해 볼 수 있다. 철종의 경우 헌종이 후사 없이 세상을 떠나자 왕위에 올랐는데, ‘장조(=사도세자)-은언군-전계대원군-철종’으로 이어졌다. 그런데 철종 역시 후사 없이 세상을 떠나자, 먼 방계의 왕족을 찾아 왕위에 올린 것이 바로 고종이다. 고종의 아버지는 흥선대원군으로, ‘장조(=사도세자)-은신군-남연군(은신군의 사후 양자)-흥선대원군-고종’의 가계로 이어졌다. 즉 고종이 왕위에 오를 당시 정통성이 취약한 상태인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경우 대개 정통성 확보를 위해 아버지를 추존하거나 선왕의 업적 혹은 능을 규모 있게 조성하게 된다. 물론 고종의 경우 아버지인 흥선대원군이 생존해 있었기에 살아있는 최초의 대원군이자, 국태공으로 막강한 권력을 휘두를 수 있었다.

예릉의 참도. 이도 형태가 아닌 삼도 형태인 것을 알 수 있다.

이를 보여주는 사례로, 예릉의 경우 기존의 왕릉에서 제향 공간 즉 홍살문에서 정자각 사이에 설치된 참도를 보면 알 수 있다. 기존 왕릉의 경우 신도(=향로)와 어도(=어로) 이도 형태인 반면 예릉의 경우 삼도 형태인 것을 볼 수 있다. 홍살문과의 배치 상 최초 이도로 조성되었다가 훗날 고종이 대한제국을 선포하면서 철종은 ‘철종장황제(哲宗章皇帝)’로 추존되었다. 그리고 이때 추가로 가설이 된 결과 현재의 삼도 형태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또한 <승정원일기>를 보면 고종이 예릉에 보인 관심이 남다른 것을 알 수 있는데, 선왕의 능을 규모 있게 조성함으로써, 방계 왕족에 불과했던 고종의 정통성을 보완하는 조치로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와 함께 고종 때 사도세자에 대한 추존이 이루어져 ‘장조의황제(莊祖懿皇帝)’의 묘호를 올리게 된다. 그 결과 현륭원에서 융릉의 능호를 받게 되는데, 이 역시 정통성을 강화하기 위한 일련의 조치로 볼 수 있다.

■ 예릉의 석물이 서로 다른 이유는?

그런데 예릉은 기존의 왕릉과 달리 왕릉 그 자체에 담긴 의미가 작지 않다. 우선 예릉의 능침 공간을 오르게 되면 압도적인 크기의 석인상을 마주할 수 있는데, 크게 문인석과 무인석으로 구분된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해당 석인상이 옆에 자리한 장경왕후 윤씨의 희릉과 유사한 것을 볼 수 있다. 반대로 앞선 왕인 헌종의 석인상과 비교해보면 확연한 차이를 보이는데, 예릉의 조성시기와 석인상의 조각 수법이 전혀 맞지 않는 기이한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이다. 분명 능은 조선 후기의 것인데, 석인상은 조선 중기의 것이라는 점에서 분명 그 사연을 담고 있다고 할 것이다. 그렇다면 예릉의 석인상은 왜 이런 모습을 보이는 것일까?

예릉의 석인상 중 문인석

예릉의 석인상 중 무인석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옆에 있는 희릉(禧陵)을 주목해야 하는데,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본래 희릉 옆에 중종의 정릉(靖陵)이 자리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희릉은 피장자는 장경왕후 윤씨로, 중중의 계비였다. 중종과 장경왕후 윤씨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 바로 인종으로, 서삼릉의 효릉이 바로 인종과 인성왕후 박씨의 능인 것이다. 따라서 최초 예릉이 있던 자리는 ‘중종의 정릉 + 장경왕후 윤씨의 희릉’이 하나의 능역인 형태였다. 실제 <조선왕조실록>를 통해 정릉의 정자각이 정릉과 희릉의 중간 지점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즉 서삼릉은 최초 중종과 장경왕후 윤씨, 인종과 인성왕후 박씨의 능으로 조성, 중종의 가계로 조성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정릉은 훗날 중종의 또 다른 계비인 문정왕후 윤씨에 의해 현 서울 강남구 삼성동으로 천장이 되면서, 정릉이 있던 자리는 버려진 채 방치가 되었다. 자연스럽게 홀로 남게 된 장경왕후 윤씨의 능은 정릉에서 기존의 능호인 희릉으로 변화하게 되고, 정자각 역시 중간 지점에 있던 것이 현 위치로 옮겨지게 되었던 것이다.

예릉 옆에 자리한 장경왕후 윤씨의 희릉

서울 강남구 삼성동으로 옮겨진 중종의 정릉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이때 정릉의 천장에 대한 사관들의 평가는 비판이다 못해 혹평에 가깝다.

“정릉(靖陵)은 안장(安葬)한 지 거의 20년이나 되었는데, 장경 왕후와 같은 무덤인 것을 미워하여 마침내 옮기기에 이르렀으니, 어찌 차마 그렇게 했단 말인가... <중략> 《서경(書經)》 목서(牧誓)에 ‘암탉이 새벽에 우는 것은 집안의 다함이다.’ 하였으니, 윤씨(尹氏)를 이르는 말이라 하겠다”

- <조선왕조실록> 명종 20년(=1565) 4월 6일 기사 중

또한 정릉의 천장에 동조했던 대신들에게는 “배릉(拜陵)할 때 그 얼굴이 뜨겁게 달아오르지 않겠는가? 저따위 정승을 장차 어디에다 쓸 것인가”라며 원색에 가까운 비난을 하고 있는데, 당대에도 정릉의 천장에 대한 논란의 여지가 있었던 것을 보여준다. 실제 선조수정실록에서는 이때의 천장을 봉은사(奉恩寺)의 주지인 보우가 문정왕후를 속여 선릉(宣陵, 성종과 정현왕후 윤씨의 능)으로 옮겼다고 비판하고 있다. 물론 이 같은 천장의 배경에 중종과 문정왕후가 함께 묻히려는 의도도 있었던 것으로 보이지만, 역설적으로 문정왕후가 세상을 떠난 뒤 서울 노원구의 태릉(泰陵)에 안장되었다. 즉 가만히 있던 중종의 정릉만 외톨이로 남겨진 신세가 된 것으로, 훗날 임진왜란 때 왜군에 의해 정릉이 도굴되고 시신이 훼손된 것을 생각하면 이 같은 천장은 더욱 안타까움으로 남게 되는 것이다.

예릉의 정자각 주변에 돌출된 초석

예릉의 석양

예릉의 석양. 같은 석양인데 그 형태가 다른 것을 볼 수 있다.

예릉의 석호

예릉의 석호. 같은 석호임에도 형태가 다른 특징은 석물을 재활용한 예릉의 새로운 면을 보여준다.

이러한 정릉의 천장 과정에서 석물은 옮겨가지 못했고 대신 그 자리에 파묻게 된다. 석물이나 비석을 파묻는 사례는 당시에는 흔하게 볼 수 있던 풍경으로, 정릉의 석인상은 규모만 해도 3m가 넘었기에 이를 이동할 수 있는 수단이 마땅하지 않았던 점도 한 몫을 했다. 때문에 정릉의 빈자리에 묻힌 채 방치되던 이곳에 훗날 철종과 철인왕후 김씨의 예릉이 조성되면서 과거에 묻혀있던 석물이 발견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석물을 재활용한 결과 예릉의 특이한 형태, 즉 능은 조선 후기에 조성되었지만, 석물은 조선 중기의 부자연스러운 조합이 만들어진 것이다.

또한 봉분의 뒤쪽에 있는 석양과 석호의 경우 각각의 형태가 서로 다른 것을 볼 수 있다, 이는 석물의 경우 기존의 것을 최대한 재활용 하되, 필요한 부분은 새로 제작했던 모습이 혼합되어 나타난 형태다. 또한 예릉의 정자각 주변을 보면 옛 정자각에 쓴 초석들이 돌출된 것을 볼 수 있는데, 그야말로 아는 만큼 보이는 역사의 현장이라고 할 수 있다. 어쩌면 글로 접하는 것 이상으로, 문화재가 들려주는 역사의 흔적은 오래도록 깊이 각인될 한 장면이 아닐까라는 생각과 함께 고양 서삼릉을 방문하실 기회가 있다면 예릉의 새로운 면을 한번 주목해보시길 권한다.

김희태 기자  mail@newstow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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