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수원이 만들어진 배경을 살펴보면 사도세자(추존 장조, 1735~1762)의 현륭원이 화산으로 천봉되면서 시작되었다. 본래 이곳은 수원부의 읍치로, 수원고읍성(경기도 기념물 제93호)을 비롯해 관아와 향교, 민가 등 옛 수원의 중심이었던 곳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수원도호부 편을 보면 읍성과 관련해 흙으로 쌓았으며, 둘레가 4천 35척으로 기록하고 있다. 이미 당대에 허물어져 방어의 기능을 상실했음을 볼 수 있는데, 반면 이보다 뒤에 작성된 <대동지지>를 보면 수원의 중심지가 현 수원 화성으로 옮겨졌음을 알 수 있다.

현륭원. 지금의 융릉으로, 정조 이전에 이미 왕릉의 후보지로 봉표를 세워둔 곳이다.

이 모든 시작점이 바로 현륭원의 천봉에서 시작된 것이다. 사도세자의 현륭원이 천봉되기 이전에도 이미 화산은 능원의 조성지로 유력하게 거론이 되던 곳이다. <조선왕조실록> 정조 13년(=1789) 7월 11일의 기록을 보면 수원(水原) 읍내에 봉표해 둔 곳이 세 곳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에 정조는 관가 뒤에 있는 현 융릉(=현륭원)의 자리를 이미 점찍어 둔 것으로 보이는데, 선정의 근거가 된 건 반룡농주(盤龍弄珠)의 지세를 가진 명당이라는 인식 때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현륭원의 이전으로 새로운 신도시로 건설된 수원 화성

그런데 화산이 수원부의 읍치였던 까닭에 이곳에 현륭원이 조성되면서 필연적으로 백성들의 이주를 피할 수가 없었다. 이에 정조는 이주 대상이 된 백성들에게 이주금, 지금으로 치면 토지(=집) 보상금을 지급했다. 이 과정에서 일부 백성들의 경우 그대로 거주하기를 원하는 경우도 있었고, 집값을 보상 받았음에도 여전히 이주하지 않고 머무르는 사례도 있었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백성들은 현륭원의 조성과 함께 새로운 신도시 수원 화성을 비롯해 독산성, 안녕리 등지로 옮겨가게 된다.

■ 능원을 보호하기 위한 화소의 설치와 표석

이처럼 현륭원과 같은 능원은 크게 진입 공간과 제향 공간, 능침 공간으로 구분이 되는데, 어느 능원을 가더라도 이러한 규칙성을 보여주고 있다. 이와 함께 주목해봐야 할 능원의 공간 중 화소(火巢)와 금양지(禁養地)가 있다. 앞선 진입, 제향, 능침 공간의 경우 눈에 보이는 부분인 반면 화소와 금양지는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이라 모르고 지나치기 쉬운 부분이다. 보통 능원이 조성되면 해당 능원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가 취해지는데, 해당 조치 중 화소와 금양지가 있다. 화소는 능원으로 산불이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로, 인공적인 해자를 만든 뒤 바깥쪽에 일정 구간에 있는 나무(=숲)와 풀 등에 불을 놓아 제거하게 된다. 즉 화소는 산불로 인한 능원의 훼손을 막기 위한 일종의 완충지대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하마비. 보은 순조 태실로 가는 길에 마주하게 되는 비석이다.

하마비의 뒷면. 화소(火巢)가 새겨져 있다. 태실에서도 화소가 설정되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보은 순조 태실의 전경

이렇게 화소가 설정이 되면 그 내부는 출입이 통제가 된다. 당연히 화소 내에 거주한다거나 묘를 쓰는 행위, 나무를 벤다거나 경작 등은 금지가 되었다. 또한 설정된 화소에 표석을 세우게 되는데, <건릉지>를 보면 화소 표석이 ▲세람교(현 오산 양산동, 황구지천) ▲홍범산 들머리(현 수원대학교, 최루백 효자각이 위치한 산) ▲하남산 ▲배양치(현 배양동) 등에 설치되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위의 언급된 표석의 경우 현재까지 발견된 바 없다. 하지만 이와 유사한 사례로 속리산에 자리한 순조 태실(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1호)을 예로 들 수 있다. 순조 태실로 가는 길에 하마비가 세워져 있는데, 뒷면에 화소가 새겨져 있어 태실에서도 화소가 설정되었음을 보여준다. 따라서 <건릉지>에 언급된 화소 표석 역시 이와 유사한 형태로 해당 장소들에 세워졌음을 추정해볼 수 있다. 또한 능침의 화소는 엄격하게 관리가 되던 곳으로, 화소나 외안금표(外案禁標)에 투장을 한 사례가 적발될 경우 사형에 준하는 처벌이 뒤따르게 된다.

■ 화소와 함께 설정된 금양지, 현륭원과 건릉의 금양지였음을 보여주는 외금양계비

이처럼 화소는 능원을 보호하기 위한 완충지대의 성격을 가지고 있는데, 이와 함께 꽤 넓은 범위의 금양지가 설정되었다. 즉 ‘현륭원, 건릉 + 화소 + 금양지’의 형태로, 금양지로 설정이 되면 해당 지역에서 밭을 개간하거나 경작, 나무를 베는 행위와 가축을 기르는 행위가 금지가 된다. 즉 일종의 개발제한구역이 조성되는 것으로 이를 지금과 비교하면 그린벨트로 지정한 것과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금양지를 조성한 것은 능원을 보호하고, 더 넓게 해당 지역에 대한 개발을 제한, 자연을 지키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 실제 이러한 금양지가 설정되었음을 알 수 있는 표석이 화성시에 자리하고 있는데, 바로 외금양계비다.

태봉산. 화성시 봉담읍과 정남면 사이에 있는 산으로, 외금양계비가 세워져 있다.

외금양계비의 전경

화성시 봉담읍과 정남면 사이에 있는 태봉산에 세워진 이 비석은 현륭원과 건릉의 금양지가 설정되었음을 입증해주는 좋은 사례다. 실제 외금양계비를 처음 마주했을 때 들었던 의문은 태봉산에서 현륭원까지 제법 거리가 있었기에 이곳까지 금양지로 설정했다는 것이 와 닿지가 않았다. 그런데 <건릉지>에 현륭원과 건릉의 금양지로 외금양계비가 세워진 태봉(台峰)이 포함되어 있고, 독산성까지 금양지로 포함이 된 것을 보면 능원을 보호하기 위해 화소와 금양지를 설정했던 시대상을 엿볼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외금양계비는 화강암으로 제작된 표석의 앞면에 외금양계(外禁養界)가 새겨져 있는데, 그 뜻은 금양지 내에서 가축을 기르거나 경작을 금지한다는 의미다. 즉 현륭원과 건릉의 금양지가 설정되었음을 기록이 아닌 현장의 문화재를 통해 알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외금양계비 옆에 자리한 사당. 관항 1리의 민속신앙의 하나로, 지금은 폐허처럼 남아 있는 모습이다.

외금양계비. 금양지를 설정했음을 보여주는 문화재로, 희귀한 금석문으로 평가된다.

지난 2006년 발간된 <문화유적분포지도: 화성시>에서는 외금양계비를 희귀한 금석문으로 평가한 바 있는데, 앞선 내용들을 보면 결코 과장된 표현이 아니다. 그렇다면 현실은 어떨까? 안타깝지만 현재까지 외금양계비는 비지정 문화재로, 그 가치를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 앞선 동탄호수공원의 태실비처럼 충분히 가치가 있고 의미 부여를 할 수 있는 문화재임에도 방치되고 있는 현실은 안타까운 대목이다. 누구나 화성시의 대표적인 유적지를 떠올릴 때 융릉과 건릉을 생각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이러한 융릉과 건릉의 새로운 면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외금양계비를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실제 국내에 40기의 조선왕릉이 있고, 공통적으로 화소와 금양지가 설정되었지만 금양지와 관련한 표석의 실물로 남아있는 것은 현재까지 화성시에 소재한 외금양계비가 유일한 사례이기 때문에 그 가치를 제대로 평가해 문화재 지정과 보존 대책이 수립되기를 기대한다.

김희태 기자  mail@newstow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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