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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남부 편 - 지곶동에 독산성을 수축한 변응성 장군의 선정비가 있다?경기도의 역사와 문화를 찾아서
김희태 기자 | 승인 2019.08.20 08:03

오산의 대표적인 역사 유적이라 할 수 있는 독산성(사적 제140호)은 지정학적 요충지로서의 성격을 갖추고 있다. 실제 독산성을 방문해보면 옛 삼남길이 지나는 것을 볼 수 있고, 우리 역사에서 대부분의 외침이 북쪽에서 내려오는 전쟁 양상이었던 까닭에 문경새재를 넘어서면 한양까지 사실상 막을 수 있는 성곽이 없었다. 따라서 독산성은 방어적 요충지의 성격도 함께 겸하는 것이다. 때문에 <서애집>에는 수원의 독성(禿城)을 험준하고 좁아서 꼭 지킬 만한 땅으로 평가하고 있으며, <조선왕조실록>에서는 독산성과 관련해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수원(水原)은 곧 양호의 요충지입니다. 독성(禿城) 안에는 샘물이 모자랄 것을 염려하여, 혹자는 대군(大軍)이 주둔하기에 마땅치 않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미 쌓여진 성이니 그냥 헛되이 버릴 수는 없습니다. <중략>... 한편으로는 급한 변에 대비하게 하고 또 한편으로는 좀도둑들에게 겁을 주어 두렵게 한다면, 서울을 보호하는 데에 진실로 편리하고 유익함이 있게 될 것입니다.”
- <조선왕조실록> 선조 33년 1600년 4월 4일자 기록 중

오산 독산성. 임진왜란 당시 중요하게 인식된 방어의 요충지였다.

독산성은 백제 때부터 활용된 성곽으로 여겨지는데, 이와 관련해 <삼국사기> 온조왕 조에 등장하는 독산(禿山)이 등장, 일부에서 독산성과 연결 짓기도 한다.

이러한 독산성이 주목받게 된 건 임진왜란으로, 이곳에 주둔하던 권율 장군과 세마대 이야기는 지금도 인근의 지명에 영향을 미칠 만큼 강렬했음을 알 수 있다. 앞선 류성룡의 <서애집>에서 독산성을 독성(禿城)으로 표기하는데, 이는 김정호가 제작한 <대동여지도>에서도 확인이 되고 있다. 임진왜란을 겪은 조선 조정은 방어의 측면에서 독산성의 가치에 대해 주목하게 되고, 이는 독산성의 수축으로 이어지게 된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수원도호부 편의 기록을 보면 “독성산이 부의 남쪽 7리에 있다”고 적고 있다.

독산성 아래 지곶동에서 확인된 오산 변응성 장군 선정비

또한 <대동지지>에는 최초 선조 25년(=1592년)에 성을 쌓고, 이후 선조 35년(=1602년) 당시 경기도 방어사 겸 수원부사로 있던 변응성 장군이 쌓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즉 우리가 보고 있는 독산성의 외형은 변응성 장군이 쌓은 모습인 것이다. 실제 독산성의 안내문에서도 이 같은 사실을 기록하고 있는데, 최근 독산성 아래에 있는 지곶동에서 변응성 장군의 선정비가 확인이 되었다. 물론 선정비 자체는 오래도록 그 자리에 있었으나 최근에서야 해당 사실이 조명되기 시작한 것이다. 사실 독산성을 자주 올랐던 나조차도 선정비가 존재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모를 정도였으니, 일반인들에게 해당 선정비는 잊힌 존재였다고 할 수 있다.

■ 독산성을 수축한 변응성 장군의 선정비, 주목해볼 오산의 문화재

지금의 독산성을 수축한 변응성 장군(1525~1616)은 원주 변씨의 시조이자 고려 말의 무장으로 명망이 높았던 변안열 장군의 후손(=8세)이다. 조선시대 무반 가문의 하나라고 할 수 있는 원주 변씨의 족보를 보면 변응성 장군의 아버지는 왜구 토벌에 공을 세웠으며, 선조로부터 양장(良將)이라 칭찬을 들었던 변협 장군이다. 변응성 장군은 1579년 무과에 급제한 이후 임진왜란에서 큰 활약을 하게 되는데,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서애 류성룡(1542~1607)이 직접 “변응성(邊應星)이 무사(武士)들 중에서는 좀 우수하니 방어사(=경기도)에 차임하는 것이 합당합니다”라고 언급하고 있다.

사진3) 전란 이후 <징비록>을 저술한 서애 류성룡. 변응성 장군의 재능을 눈여겨보고, 경기도 방어사로 천거했다.

임진왜란이 있던 해에 경주부윤으로 임명되나 실제 부임하기 전 경주가 왜적에 점령되면서 부임하지 못했다. 이후 가평에서 싸우지 않고 진 것을 문책 삼아 백의종군의 명이 떨어지기도 했지만, 류성룡의 천거에 따라 경기도 방어사로 임명되었다. 이후 광주와 이천 등지를 돌며 왜적에 맞서 싸우며 역사의 전면에 등장하게 된다. 임진왜란이 벌어진 뒤 방어사는 독성에 주둔하며 수원부사의 직무도 겸임을 했다. 따라서 변응성 장군을 수원부사라 칭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러한 변응성 장군은 1602년 조정의 결정에 따라 독산성 수축의 책임자로 결정이 되었고, 이에 공사 끝에 현재의 독산성의 모습이 만들어진 것이다.

오산 변응성 장군의 선정비

신익성(=정숙옹주의 부마, 동양위)이 쓴 <낙전당집>을 보면 독산성을 지날 때 지은 시가 있는데, “경기의 관방 중 이곳이 가장 웅장하니 / 어렴풋한 성루는 맑은 하늘에 의지해 있네”라는 구절이 등장한다. 당시 신익성이 봤을 독산성의 모습 역시 지금의 모습과 같았을 것이다. 이처럼 독산성을 수축한 결과로 지곶동에 변응성 장군의 선정비가 세워진 것으로 보인다. 그간 선정비의 존재는 철저하게 베일에 가려져 있었다. 하지만 독산성의 현재 모습이 변응성 장군의 수축으로 만들어진 것임을 감안하면, 해당 선정비가 마을 구석에 방치된 채 관심을 받지 못하는 것은 온당하지 못하다.

화성지역의 문화재 지킴이 단체인 역공생(=화성시역사공동체생태학교)의 변응성 장군 선정비에 대한 지킴이 활동

선정비의 경우 그 내용과 의미를 볼 때 마땅히 독산성으로 옮겨 많은 이들이 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며, 이러한 과정을 통해 독산성과 변응성 장군의 스토리텔링도 기대해볼만 하다. 사실 이제까지 독산성이라고 하면 자연스럽게 권율 장군과 세마대 이야기만 떠올린 점이 없지 않다. 그런데 생각하지 못했던 선정비의 출현으로, 지금의 독산성을 수축한 변응성 장군의 이야기 역시 관심 있게 지켜볼만한 소재다. 이를 통해 오산 변응성 장군 선정비의 문화재 지정과 선정비의 이전을 통해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해본다.

김희태 기자  mail@newstow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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