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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 어떻게 살 것인가
이소영 기자 | 승인 2019.08.24 10:23

1층에서 산지 어느덧 3주차가 되어간다. 필자는 군관사에서 살기 때문에 이사를 앞두고 ‘층수’와 ‘평수’를 고를 수 있었다. 28평대 1층이냐, 33평대 3층이냐. 이를 두고 고심했다. 숫자에 목매는 우리나라 특성상, 남편은 당연히 3층을 가자고 했다. 반면 나는 1층을 주장했다.

나에게 ‘층수’는 일종의 육체적, 정신적 ‘생존권’과 연결된 문제였다. 영유아 아이를 데리고, 그것도 아기띠를 매고, 양손에 장을 본 장바구니를 들고, 엘리베이터가 없는 4층을 3년 오르락내리락 하면 알 것이다. 층수를 오르면서 엄마는 늙어간다는 것을. 계단을 오르는 일이, 또 하나의 ‘그림자 노동’이라는 것을.

그렇게 1층에서 살게 됐다. 아이에게 말했다. “이제 집에서 마음껏 뛰어도 돼.” 아이는 계단 근처에는 얼씬도 안 했지만, 더 많이 움직였다. 집에서 뛰고 춤추는 일상을 즐거워했다. 잔소리가 줄었다. “햇님이 없어졌으니까 집에 가야해”라고 말하지 않고 “덥지 않으니 나가서 산책할까?”라고 말하게 됐다. 저녁을 먹은 후, 바람이 불어 나무가 흔들리고 풀벌레가 울기 시작하면 우리 모자는 나왔다. 현관문만 열면 나무가 보였다.

“저층 너무 좋아. 살아보니”라고 말한 ‘층수 예찬론자’ 지인은 고작 두 명이었다. 지인 K는 말했다. “알다시피 나는 아이 친구 엄마들이랑은 잘 안어울리잖아. 그런데도 우리 집에는 늘 아들 친구들로 가득 찼었지. 1층에 살아서 그랬던 것 같아. 언제나 열려있는 집, 마음 편히 드나들 수 있는 모두의 집처럼.” (건축과 관련된 사회학을 연구한 로버트 거트만에 따르면 ‘1,2층 저층 주거지에 사는 사람들은 고층 주거지에 사는 사람보다 친구가 세 배 많다’고 한다.)

지인 J는 말했다. “나는 인테리어가 잘 되어있는 8층을 놔두고 2층을 계약했어. 내가 생각하는 좋은 집은 나무가 보이는 집이었거든. 주방에서 설거지하다 밖을 보면 나무의 예쁜 모습만 보여서 좋아.”

아직 사계절을 지내보지 않아서, 곰팡이 여부를 발견하지 않아서 일수도 있지만, 지금으로써는 1층이 만족스럽다. 집 밖과 집 안의 경계가 모호한 것도, 지인 J처럼 나무를 바라볼 수 있어서 등등의 이유로. 무엇보다도 계단 노동을 그만할 수 있어서.

‘어디서 살 것인가’를 쓴 건축가 유현준 교수는 이렇게 주장한다. 학교 건물은 저층화되고 분절화 되어야 한다고. 그래야 10분 쉬는 시간 동안 잠깐만이라도 바깥 공기를 쐬면서 하늘을 볼 수 있다고.

요즘엔 단기 임대주택, 셰어하우스, 렌트 등 다양한 모양새의 ‘살이’가 있다. 이 모든 것을 시도해본다는 건 ‘돈’과 ‘시간’이 소요되는 일일 수도 있겠지만, 이사라는 변화를 통해 다시 한 번 실감했다. ‘어떤 공간이 우리를 더 행복하게 만드는가’에 대한 연구를 그치지 않아야겠다고.

“우리나라에 천재가 나오려면 다양한 교육과 더불어 다양한 종류의 주거 공간과 삶의 형태가 필요하다.(‘어디서 살 것인가’P.59)”는 유 교수의 말대로 몇 년 동안 같은 집에서 사는 건 어쩌면 재미없는 일일지도 모른다. 살다보니 ‘아직 내 집이 없어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하게 된다.

이소영 기자  mail@newstow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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