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한 사랑과 흔한 이별의 이야기는 영화가 아닌 현실에서도 흔하다. 기적처럼 사랑이 시작되고, 운명 같은 이별을 마주하고, 또 다시 극적으로 재회하여 사랑을 이어가는 것. 이런 동화 같지만 현실 불가능한 스토리에 여전히 사람들은 매료된다. 왠지 우리 마음속에는 긴 시간이 흘러도 바뀌지 않는 무언가가 존재해야 할 것 같다. 변치 않는 무엇이 바로 사랑이었으면 하는 불가능한 바람을 품고 살아간다.

이번에 개봉한 영화 ‘유열의 음악앨범’은 현우(정해인)과 미수(김고은)의 사랑 이야기다. 1994년 10월 1일 라디오 프로그램 ‘유열의 음악앨범’이 시작되는 그날 둘은 만났다. 죽은 엄마의 제과점을 이어 나가고 있는 미수, 소년원에서 출소한 현우는 라디오가 매개가 되어 특별한 인연을 이어나간다. 그날로 현우는 미수네 제과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 97년에서 2000년 또다시 2005년도 이후까지 이어지는 영화의 전개 속에서 서로를 잊지 못하며 우연한 계기로 여러 번 극적 재회한다. 변하지 않는 라디오처럼 서로를 향한 주파수를 맞추어나가는 둘을 보면서 90년대를 살아온 사람들에게 레트로 감성을 느끼게 하는 영화다.

주목했던 장면은 미수네 제과점과 현우의 자취방이다. 정지우 감독은 골목길을 통해서 주인공이 우연히 오가는 모습을 찾아보고 싶어 장소를 고심한 것 같다. 알고 보니 빵집은 인천의 화수동이고, 자취방은 종로구 창신동이라고 한다. 이 골목과 저 골목이 연결되면서 옥탑방으로 올라가고 제과점을 오간다. 꺾어지고 구부러진 골목길에서 갑자기 사람이 나타나기도 하고, 보이던 사람이 금방 사라지기도 한다. 조금은 은밀하게 둘만을 품어줄 때도 있는 곳이 골목길이다.

그런데 소년원을 출소했던 현우가 갑작스레 찾아온 친구들 때문에 미수 언니에게 가불을 받고, 그날 이후 빵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다시는 현우를 못 볼 줄 알았다. 그러다 5년쯤 시간이 흘러 미수가 오가는 골목길에서 또다시 둘은 우연히 만났다. 골목길의 가로등 불빛 아래를 걷는 장면은 정말 아름다웠다. 지금은 거의 사라져가는 골목길에서 기적처럼 남녀가 만났다. 둘이 곧바로 연인이 되지 않았던 이유는 현우가 군대를 가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면서 입술이 닿을 듯 말 듯 키스하는 장면은 영화의 백미다.

미수는 현우에게 둘의 비밀 이메일 계정을 만들어 주고, 연락을 하자고 했지만 아쉽게도 비밀번호를 적어주지 않았다. 이후 현우가 들어올 수 없는 메일함에 미수는 자신의 일상을 쏟아낸다. 언젠가 현우가 비밀번호를 알아내길 바라는 마음에서... 현우가 비밀번호를 알아내 이메일 답장이 올 때 까지 미수는 수년을 기다렸다.

스마트폰으로 실시간 연락을 주고받고, 심지어 전 세계 어디에 있건 위치추적이 되는 지금의 세상에서는 있을 수 없는 사랑 이야기일까. 6시에서 7시 사이에 전화를 한다고 하면, 꼬박 한 시간을 전화통 옆에서 기다려야만 했다.

도시화와 재개발로 도심의 골목은 빠르게 사라지고, 반듯한 아파트와 상가들이 들어섰다. 길과 길을 잇고 사람을 이어주는 곳이 골목이었다. 故 김기찬 사진가의 책 <골목을 사랑한 사진가> 에서는 그의 평생의 테마라고 생각한 ‘골목 안 풍경’을 담아내었다. 오랜 시간을 두고 천천히 그리고 서서히 골목 곁에 스며든 것을 담아낸 사진사였다.

골목길에서 걷고 이야기하며 사랑을 하고, 수년간 만남을 애틋하게 이어가는 연인들은 사라졌다. 이제 젊은이들은 대형 쇼핑몰과 번쩍거리는 카페에서 소비를 하고 SNS로 실시간 소통하면서 살아간다. 물론 어떤 사랑의 모습이 더욱 아름답고 의미있다고 평가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7080세대들이 영화를 보면서 더더욱 그리워지는 건 함께 골목길을 걸었던 연인의 손이 아닐까.

김소라 기자  sora771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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