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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왜 읽는가
김소라 기자 | 승인 2019.09.11 18:34

제17회 황순원문학상수상작품집에 실린 단편을 읽었다. ‘한정희와 나’ ‘권선춘과 착한 사람들’, 구병모의 ‘한 아이에게 온 마을이’ 권여선의 ‘손톱’ 기준영의 ‘마켓’, 김경욱의 ‘고양이를 위한 만찬’, 김애란의 ‘가리는 손’, 박민정의 ‘바비의 분위기’, 최은영의 ‘601,602’, 편혜영의 ‘개의 밤’까지.

이번 단편집의 작품들은 대다수가 재난이나 구조적 폭력과 같은 사회적 사건을 문제로 삼고 있다.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갑작스러운 사건으로 인해 개인의 삶이 얼마나 피폐해지고, 알 수 없는 나락으로 떨어지는지 보여준다.

권여선의 「손톱」을 읽으면서 ‘나도 한 때 이랬는데...’라는 생각에 눈물이 났다. 관리비, 전기세, 수도세, 가스비 등 가계부 빼곡히 쓰고, 아껴가면서 갚았던 대출금. 재활용 쓰레기 버리는 날 사람들이 버린 맥심커피 박스에서 오케이캐쉬백 50점짜리 쿠폰을 오려 붙여서 점수를 모았던 적도 있다. 1000점, 10,000점, 50,000점까지 포인트를 쌓았다. 열심히 쿠폰을 모아 포인트를 쌓는 인생이었다. 그러다가 집안에 누군가가 아프시거나 하는 등의 일이 생기게 되면 뭉텅이 돈이 나가야만 했고, 원치 않는 빚이 늘었다. 나의 수고가 헛수고가 되어버렸던 일은 한 두 번이 아니다.

가난한 삶은 아무리 노력해도 벗어날 수 없다는 숨 막히도록 슬픈 현실을 접하는 순간 결국 개인의 문제가 아님을 인지하게 된다. 결코 불성실하거나 부지런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구조의 문제 앞에서는 누구든 피해갈 수 없게 된다.

p.127 오늘 얼마를 썼는지, 이번 달에 얼마를 쓰게 될지, 그러면 시간이 빨리 간다. 돈 계산을 하고 가계부를 쓸 때에만 소희는 살아있는 것 같다. 뭔가 벅차오르다 금세 풀이 죽고 갑자기 조급증이 났다 울렁거렸다 종잡을 수 없는 흥분 상태에 사로잡힌다. 이번 달 월급 백칠십만원을 받으면, 받으면...

6000원짜리 짬뽕을 먹지 못하고 나와야 하는 소희. 500원 때문에 자신이 원하는 것을 선택하지 못하는 삶. 이런 사람들이 얼마나 되냐고? 여전히 가난은 개인의 문제, 노력의 문제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내 주변에 많다.

‘공부를 하면 되잖아, 자격증 따면 되잖아... 방통대도 있고, 사이버대학도 있고, 노력을 안 해서 그런 거잖아’

자격증 딸 시간도 없고, 노력을 할 수 있는 환경이 하나도 주어지지 않는 지금 닥친 밥벌이의 문제에 급급한 사람들은 1년 뒤를 상상하는 것조차 힘들다는 걸 모른다. 이처럼 단편소설을 읽으면서 누군가가 처한 현실을 함부로 평가할 수 없음을 또다시 깨닫는다. 타인의 삶을 내가 이러쿵저러쿵 판단할 수 없다.

소설을 읽는 사람들은 어쩌면 부족한 사람들인 것 같다. 아직도 타인에 대한 미련이 남아 있고, 아픈 가슴을 부여잡고 사는 사람들이다. 오랫동안 소설을 읽으면서 아직도 소설이 좋고, 소설 속의 삶을 꿈꾸기도 한다. 소설 한 편 쓰겠다고 마음도 먹지만, 잘 쓰여진 문학 앞에서는 기가 죽어 버리고 ‘내 주제에 감히...’ 라는 말로 꼬리를 내릴 수밖에 없다. 소설을 쓰지 못할 바에야 소설 읽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그래서 소설 읽는 사람들이 좋다. 할 이야기가 많은 사람들이다. 자신이 느끼고 경험한 것을 언어화할 수 있는 사람들은 적어도 자기 언어를 지녔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김소라 기자  sora771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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