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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내 감정은 이랬어요”라고 글로 적어보기
이소영 기자 | 승인 2019.10.01 11:41

첫 책을 내고 '작가'라는 새로운 호칭을 얻게 되었다. 겨우 한 권으로 과분한 대우를 받는 듯해 진짜 작가인 거장들에게 송구스럽다. 여전히 나도 글쓰기가 어렵다. 아니, 형용사를 붙여야겠다. ‘솔직한’ 글쓰기가 어렵다. 글쓰기야 말로 나를 드러내는 수단이다보니, 자기 검열과 동시에 수많은 타자를 의식하게 될 때가 있다.

다행히 나만 그런게 아닌가 보다. 소설가 장강명 씨는 에세이 ‘5년 만에 신혼여행’을 출간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책이 나오기 사흘 전인가, 밤새 잠이 안 오더라고요. 지금 취소해달라고 할까? 책을 불살라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애석하게도 그의 책은 매우 잘 팔렸으며, 책을 불살라버리기는커녕 새로운 책을 또 쓰고 있더라. 나 역시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도 쓴다.

최근에는 ‘감정글쓰기’를 추천하는 편이다. 말 그대로 ‘감정’에 주력해서 쓰는 글을 말한다.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듯해도 우리는 수많은 상황과 그에 맞는 감정을 맞닥뜨린다. 감당하기 힘든 상황이 오면 감정 역시 오르락내리락 한다. 나도 육아를 하며, 이렇게나 내 안에 많은 '다중이'가 살고 있는지 몰랐다. 감정을 들여다보는 건 알아차림의 인식 과정이다. “네가 이랬었구나”하고 토닥여주는 것이다. 그리고 결과물인 글로 남겨두면, 내가 무엇 때문에 힘들어하고 상처를 잘 받는지, 궁극적으로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지표가 되어주는 셈이다.

세계적인 영장류학자 프란드 드 발은 ‘동물의 감정에 관한 생각’이란 책에서 동물도 인간과 비슷한 감정과 정신세계를 지녔음을 말한다. 그는 “인간과 동물이 번성하고 진화하는 데 가장 강력한 무기는 감정”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동족의 죽음을 애도하는 침팬지, 물고기의 우울증, 고양이의 가짜 분노 등 사례를 증거로 제시한다.

애석하게도 동물은 감정을 느껴도 그 감정을 ‘글’로 표현하긴 어렵다. 우리는? 쓸 수 있다. 심리학자인 페니베이커는 감정표현치료 중 하나로 감정표현 글쓰기를 했고, 질병의 치료에도 도움이 되는 것을 수많은 실험을 통해 증명했다. 그가 사용한 글쓰기를 감정표현치료 ‘EET'라고 하는데, 'Expressive Emotions Writing’의 줄임말이다.

감정글쓰기를 잘 쓰기 위해서는 감정에 대한 어휘 공부를 하면 더 도움이 된다. ‘좋다’, ‘싫다’, ‘짜증난다’, ‘힘들다’를 넘어 다양한 감정을 알아가는 것이다. 글쓰기수업 중 ‘희노애락’과 관련한 감정어휘를 프린트물로 수강생들에게 나눠줬다. “이렇게 많은 감정이 있었는지 몰랐어요”하며 다들 놀란 기색이었다. 애(哀)를 표현하는 형용사(고독한, 공허한, 구슬픈, 뭉클한, 미어지는 등)도 수십개가 있으니 놀랄만도.

뮤지컬 ‘스위니토드’ ‘마틸다’ 등을 맡았던 뮤지컬 번역가 김수빈 씨는 공연 번역에 앞서 눈에 보이지 않는 감정의 행간을 읽는 데 노력한다고 한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작품 전체의 감정과 호흡을 잘게 해부한 다음 번역을 통해 살을 붙여 나가야 한다”고 했다. 그만큼 감정공부가 도움이 되는 것이다.

나는 근래 남편에게 감정글쓰기를 A4용지 두 장을 써서 선물로 줬다. 물론 좋은 내용이 아니었다. 그런데 말로써 표현하는 것보다 더 효과는 있었던 것 같다. 적어도 ‘이 사람은 참 나와 다르구나’를 알아챔과 동시에 ‘이런 상황에서 넌 이런 기분을 느끼는구나’를 인지한 듯해서다. 감정을 표현하는 단어는 ‘한국비폭력대화센터’ 홈페이지 내 ‘느낌/욕구목록’에서 자세히 볼 수 있다.

이소영 기자  mail@newstow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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