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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의 태실 - 성종의 자녀 태실로 추정되는 안성 배태리 태실경기도의 역사와 문화를 찾아서
김희태 기자 | 승인 2019.10.29 00:59

본지의 현장 답사를 통해 안성에 소재한 태실의 존재가 확인이 되었다. 해당 태실의 정확한 주소는 안성시 삼죽면 배태리 산 46번지로, 그간 마을 주민들의 증언과 지역신문 등을 통해 태실로 구전되어 오던 곳이다. 그럼에도 정확하게 누구의 태실인지 밝혀진 적이 없었다. 우선 안성 배태리 태실의 지형적 특징을 보면 덕산저수지를 지나 양촌 마을의 왼쪽에 3곳의 봉우리가 늘어선 모습으로, 마을에서는 삼태봉이라 부르고 있다. 태실은 이 가운데 중태봉의 정상에 위치하고 있는데, 현재 흔적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은 태실비가 유일하다. 그런데 해당 태실비가 중요한 이유는 태실비에서 확인되는 명문과 태실비의 외형 변화를 통해 태주를 특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 안성 배태리 태실, 명문 판독과 태실비의 외형을 통해 확인된 성종의 자녀 태실

우선 태실비의 형태는 주변부에 일부 파손 흔적이 있기는 하지만 양호한 편이다. 다만 태실비의 앞면은 육안 판독이 어려울 정도로 마멸이 심한 편으로, 명확한 내용은 탁본을 통한 판독이 필요하다. 이번 현장 답사를 통해 확인한 명문은 태실비의 뒷면으로, ‘?치육년십월??일자시입(?治六年十月??日子時立)’이 확인되었다. 이 가운데 앞부분의 연대를 알 수 있는 연호 부분이 중요한데, 안타깝게도 첫 글자는 판독이 어렵다. 또한 다음 글자 역시 인위적인 훼손이 가해졌는데, 다행히 글자의 남아 있는 부분과 훼손된 글자의 필획을 추정해보면 치(治)로 추정된다. 이처럼 태실비에 새겨진 연호 중 치(治)가 있는 경우는 ▲명나라 효종의 연호인 홍치(弘治) ▲청나라 세조의 연호인 순치(順治) ▲청나라 목종의 연호인 동치(同治) 등이 있다.

안성 배태리 태실이 위치한 중태봉
중태봉의 정상. 현재 태실과 관련한 흔적은 태실비가 유일하다.
안성 배태리 태실비. 앞면은 마멸이 심해 육안 판독이 어렵고, 뒷면의 경우 비교적 글자가 잘 남아 있는 편이다.
태실비의 명문 중 연호 부분에 해당하는 글자. 남아있는 부분과 훼손된 글자의 필획을 통해 치(治)로 추정된다.

한편 태실비의 비교 연구를 통해 안성 배태리 태실이 성종의 자녀 태실인 것이 입증이 된다. 아기씨 태실비의 경우 외형은 초기와 중기, 후기의 태실비의 차이가 비교적 명확하게 구분이 된다. 우선 초기 태실비의 경우 성주 세종대왕자태실(사적 제444호)과 서울 월산대군 이정 태실(서울특별시 기념물 제30호), 양평 제안대군 태실비의 경우처럼 비두가 없다. 그러다 성종 때의 태실비에서는 초기의 형태와 비두가 나타나는 과도기적 성격이 나타난다. 즉 성종 이후의 태실비에서는 공통적으로 비두가 확인되고 있으며, 중기와 후기로 접어들면 ‘비두+비좌’가 함께 조성되는 외형적인 변화를 볼 수 있는 것이다.

성주 세종대왕자태실. 왕자 당의 태실비로, 초기 태실비의 외형은 사진처럼 말각형의 형태를 보인다.
강릉 정복 태실비. 성종 대의 옹주 태실로, 태실비의 비두를 확인할 수 있다.
울진 나곡리 태실, 중기에서 후기로 접어들면 비두와 함께 비좌가 함께 있는 형태인 것을 알 수 있다.

실제 해당 태실과 유사한 사례가 있는데, 바로 원주 대덕리 태실이다. 원주 대덕리 태실은 태실비의 명문을 통해 홍치 7년(=1494년)에 세워졌는데, 그 형태가 안성 배태리 태실과 유사성을 드러내고 있다. 즉 이러한 태실비의 외형 변화를 분석해보면 안성 배태리 태실의 태실비는 성종 때 세워졌을 가능성이 높고, 자연스럽게 태실비 뒷면의 연호 역시 홍치(弘治)일 가능성이 높다고 할 수 있다. 즉 안성 배태리 태실은 홍치 6년(=1493년) 10월에 세워진 것을 알 수 있으며, 이 경우 1493년 이전에 태어난 성종의 자녀 중 한 명의 태실인 것을 알 수 있는 것이다. 한편 성종 이전까지는 하삼도에서 조성되는 것이 일반적이던 태실은 성종 때부터 경기도에 조성이 되기 시작했다. 현재 경기도에 남아 있는 성종의 자녀 태실 가운데 태실비가 남아 있는 사례는 고양 효자동 성종 왕녀 태실(=효자동태묘)를 비롯해 광주시 원당동 성종 왕녀 태실 2기 등이 남아 있다.

원주 대덕리 태실. 안성 배태리 태실과 유사성을 드러낸다.
안성 배태리 태실. 태실에 대한 추가적인 조사와 연구가 필요하다.

이번 현지답사를 통해 확인된 내용을 종합해보면 ▲안성 배태리 태실이 성종 때인 홍치 6년(=1493년)에 조성되었다는 점 ▲해당 태실의 태주는 1493년 이전의 성종 자녀 중 한 명으로 추정된다는 점 ▲원주 대덕리 태실과 외형의 유사성이 드러나는데, 입비한 시기가 1년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또한 보통 태실비의 앞면에 왕자 혹은 왕녀의 명문이 새겨져 있어 성별을 알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보면 태실비의 탁본을 통해 추가적인 정보가 확인될 것이라 기대된다. 그간 해당 태실의 경우 전승의 형태로 전해져 왔을 뿐 제대로 된 조사와 연구가 진행된 적이 없고, 논문으로도 보고된 바 없는 태실비다. 특히 명문과 태실비의 외형을 통해 성종 때의 자녀 태실인 것이 확실시 된다는 점에서 관심 있게 지켜볼 역사의 현장이다.

김희태 기자  mail@newstow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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