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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이 된 아들과 아버지 (4) - 정조와 사도세자(추존 장조), 창경궁과 경모궁터에 남아 있는 정조와 사도세자의 흔적경기도의 역사와 문화를 찾아서
김희태 기자 | 승인 2019.12.01 08:54

서울에 있는 여러 궁궐들 가운데 창경궁(昌慶宮)은 우리 역사의 굴곡진 장면들을 많이 남기고 있다. 특히 순종이 즉위한 뒤 창경궁은 크게 훼손되고, 그 자리에 동물원과 식물원이 들어서게 된다. 또한 이름 역시 창경원(昌慶苑)으로 바뀌면서 더 이상 궁궐이 아닌 유원지로 바뀌게 되는데, 지금도 당시 만들어진 이국적인 창경궁 대온실(등록문화재 제83호)이 당시의 흔적을 말해주고 있다. 이른바 나라가 망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창경궁 문정전(文政殿). 임오화변의 역사적 배경이 된 장소다.
창경궁 대온실(등록문화재 제83호). 한때 창경원이라는 이름으로 동물원과 식물원 등의 유원지로 활용이 되었는데, 이는 나라가 망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러한 창경궁의 여러 건물 가운데 특히 눈길을 끄는 곳이 바로 문정전(文政殿)으로, 문정전 앞마당은 영조가 자신의 아들인 사도세자를 뒤주 속에 가둬 죽인 이른바 임오화변(1762)의 배경이 된 현장이다. 본래 문정전은 혼전(魂殿)이라고 해서 종묘에 부묘하기 전 신위를 모신 공간으로 활용되던 건물인데, 지금은 사도세자의 뒤주 사건의 현장으로 인식되어 창경궁 내 역사의 한 장면을 담고 있는 공간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창경궁을 걷다보면 정조의 어머니 혜경궁 홍씨가 거처하던 자경전터가 남아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자경전(慈慶殿)과 함께 주목해야 할 공간이 바로 사도세자의 사당인 경모궁(景慕宮)이다. 그렇다면 해당 건물들에는 어떤 역사의 흔적이 남아 있을까?

■ 경모궁(景慕宮), 사도세자의 신원을 회복하고자 했던 정조

사도세자가 세상을 떠난 뒤 최초 양주 배봉산에 묘가 조성되고, 사당인 수은묘(垂恩廟)는 창경궁 동쪽에 있던 정원인 함춘원(含春苑)에 있었다. 함춘원 자리는 지금의 서울대학교 병원으로, 정조가 즉위한 뒤 기존의 수은묘를 경모궁(景慕宮)으로 바꾸게 된다. 또한 무덤 역시 수은묘(垂恩墓)에서 영우원(永祐園)으로 한 단계 높이는 조치를 취했다. 자연스럽게 경모궁에 대한 정조의 관심은 남다른 것이었다. 실제 경모궁의 편액은 정조가 친필로 썼다고 하며, 위치상 창경궁 쪽에서는 일첨문을, 경모궁 쪽에서는 월근문을 만들어 창경궁과 경모궁이 통하도록 했다. 이렇게 이어진 길을 따라 정조는 경모궁에 대한 전배를 했던 것이다.

창덕궁과 창경궁을 그린 동궐도
궁원의(宮園儀). 경모궁과 영우원의 제향과 관련한 의례서다.

이 같은 정조의 노력은 훗날 영우원을 양주 배봉산에서 수원부의 화산으로 천봉하는 조치를 취하고, 영우원을 현륭원(*사도세자의 능호 변화를 살펴보면 ‘수은묘-영우원-현륭원-융릉’의 순으로 변화)으로 바꾸었다. 이때 옮겨진 곳이 지금의 융릉(隆陵)으로, 아버지의 신원회복을 위한 정조의 노력이 지금의 융릉이 만들어진 배경이 되었던 것이다. 또한 영우원이 천봉됨에 따라 수원부의 치소였던 화산 일대는 영우원 내 화소 및 금표 내에 위치하게 된다. 따라서 자연스럽게 기존의 수원을 대신할 장소를 물색하게 되고, 이러한 흐름의 결과 수원 화성의 축성으로 이어졌던 것이다. 가히 역사의 나비효과라고 칭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통명전과 양화당 뒤쪽에 자리한 자경전터. 정조가 어머니 혜경궁 홍씨를 위해 지은 건물로, 건물의 앞쪽은 경모궁 방향을 향하고 있었다고 한다.

한편 창경궁 내에는 혜경궁 홍씨가 거처하던 자경전이 있었는데, 해당 위치는 통명전과 양화당의 뒤쪽, 계단을 오른 지점에 자리하고 있다. 현재 자경전은 터만 남아있는데, 1777년 정조는 혜경궁 홍씨를 위해 자경전을 지었다. 그런데 자경전의 배치를 보면 앞쪽으로 경모궁을 바라보는 방향으로 지어진 것이 특징으로, 건물의 배치에서도 사도세자와 혜경궁 홍씨를 생각했던 정조의 생각을 읽을 수 있다.

■ 아버지를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했던 정조

이처럼 사도세자에 대한 정조의 관심은 남다른 것이었는데, 대표적으로 영우원 천봉과 함께 조성된 사도세자의 원소다. 지금도 대중들에게는 사도세자라는 호칭이 더 익숙한데, 고종 때 사도세자는 장조(莊祖)로 추존, 융릉의 능호를 받았다. 앞선 사례처럼 세자로 세상을 떠났지만 왕으로 추존된 경우인 것이다. 그럼에도 화산으로 옮겨진 이후 현륭원으로 불리는 사도세자의 원소는 그 규모와 크기가 웬만한 왕릉을 압도한다. 실제 원소에서 세워지지 않은 무인석이 등장하는가 하면 숙종 이후 왕릉에서 나타나지 않던 병풍석과 와첨상석이 설치되는 등 일반적인 원소와는 그 차이가 뚜렷하다.

융릉. 최초 양주 배봉산에 있던 영우원이 지금의 화산으로 천봉되었다. 이후 현륭원을 거쳐 융릉의 능호를 받게 된다.
영우원 천봉이 만든 수원 화성의 축성. 역사의 나비효과라 할 만하다.

특히 융릉의 석물 가운데 백미는 피지 못한 연꽃으로, 채 피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난 사도세자의 모습을 그대로 담아내고 있다. 이는 정조의 건릉(健陵)과 비교해 봐도 융릉이 얼마나 화려하게 조성되었는지를 알 수 있다. 그야말로 아버지를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했던 정조의 애끓는 효심을 고스란히 볼 수 있는 것이다. 이와 함께 정조는 예천에 있던 사도세자의 태실을 가봉하는 조치를 취했는데, 통상 태실가봉(胎室加封)의 절차는 왕(*예외적으로 왕비의 태실가봉 사례가 있음)이 된 경우에만 실시했다. 그럼에도 정조는 세자의 신분으로 죽은 사도세자의 태실가봉을 명했는데, 이 같은 내용이 <승정원일기>와 ‘예천 명봉리 경모궁 태실 감역 각석문(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623호)’을 통해 알 수 있다.

예천 사도세자(=장조) 태실. 세자로는 최초로 태실가봉이 된 사례로, 비석의 전면에 ‘경모궁태실(景慕宮胎室)’이 새겨져 있다. 여기서 경모궁은 사도세자의 사당으로, '경모궁=사도세자'를 뜻한다.

이처럼 사도세자의 신원을 회복하고자 했던 정조의 애끓는 효심은 우리 문화재 곳곳에 그 흔적을 남기고 있다. 지금 기준으로 보기에도 다소 과해보이는 이러한 조치들은 1762년 창경궁 문정전 앞마당에서 있었던 임오화변(壬午禍變)에서 그 단초를 찾아야 한다. 당시 세손이었던 정조는 뒤주 속에서 숨져간 사도세자의 모습을 눈으로 목격했다. 또한 당시 정치적인 구도를 볼 때 영조와 사도세자의 관계는 더 이상의 회복이 불가능했다. 세손이 없었다면 영조가 사도세자를 죽음으로 내모는 조치를 취할 수 있었을까? 대답은 절대 불가능이라고 봐야 한다. 하지만 세손이 있는 상황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특히 세손의 경우 영조가 생각했던 왕의 자질을 갖추었다고 판단했기에 사도세자의 제거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 있는 배경이 되었다.

정조의 건릉. 아버지의 신원 회복을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했던 정조, 이러한 정조의 행보는 임오화변의 비극에서 시작된 역사의 한 장면은 아니었을까?

실제 사도세자의 어머니 영빈 이씨가 직접 아들의 대처분을 고하고, 홍봉한을 비롯해 혜경궁홍씨 역시 사도세자가 아닌 세손의 보호로 입장을 선회한 것 역시 이 같은 정치적 환경의 변화와 맥을 같이 한다. 이렇게 본다면 사도세자의 죽음에 대해 정조가 가지는 생각은 통상적인 아버지의 죽음을 넘어선 자신으로 인해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는 생각을 가졌을 법하다. 그랬기에 사도세자의 신원 회복에 대해 정조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취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렇듯 창경궁과 경모궁터를 비롯해 ▲융릉과 용주사 ▲수원 화성 ▲예천 사도세자(=장조) 태실 등을 통해 아버지의 신원회복을 위해 노력했던 정조의 흔적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나름의 의미가 있다고 할 것이다.

김희태 기자  mail@newstow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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