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오피니언 연재
경기도의 태실 - 무관심 속에 방치된 김포 고막리 태실경기도의 역사와 문화를 찾아서
김희태 기자 | 승인 2019.12.16 08:20

앞선 기사에서 언급한 것처럼 현재까지 김포에서 확인된 태실 중 태실비와 태함이 발견된 사례는 ▲김포 조강리 태실(=인순공주 태실) ▲김포 고막리 태실(=신성군 태실) ▲김포 고양리 태실 등이다. 이 가운데 김포 조강리 태실의 경우 태봉산이 훼손되어, 현재 인근에 임시 이전된 상황이다. 그런데 김포 조강리 태실에서 차량으로 불과 5분 정도 거리에 또 다른 태실이 자리하고 있는데, 바로 김포 고막리 태실이다.

김포 고막리 태실의 원경

해당 태실의 정확한 주소는 김포시 월곶면 고막리 212번지로, 바로 뒤쪽에 문수산이 병풍처럼 버티고 있는 형상이다. 태실은 고막리에서 문수산으로 올라가는 등산로 오른쪽에 있는 나지막한 산의 정상에 자리하고 있다. 정상까지는 불과 10분이면 올라갈 수 있을 정도로 높이가 낮은 편으로, 현재 김포 고막리 태실의 경우 정상에 태함과 비석의 비좌가 남아 있다. 또한 산 정상에서 민가 쪽으로 10m 아래 태실비가 굴러 떨어진 채 방치되고 있는 모습이다.

■ 태실비의 명문을 통해 선조와 인빈 김씨 소생의 신성군 태실로 밝혀져

현재 태실비의 경우 비의 뒷면이 하늘로 향하고 있는데, 다행히 연호 부분과 몇 글자를 제외하면 명문의 육안 판독이 가능하다. 앞면의 경우 땅에 묻혀 있어 파악하기가 어려운데, 다행히 논문을 비롯한 선행 자료에 해당 태실비의 명문이 남아 있다. 이를 통해 현장에서 확인이 어려운 태실비의 앞면에는 ‘왕자후아지씨태실(王子珝阿只氏胎室)’이, 뒷면에는 ‘만력십이년칠월이십오일입/만력십사년십이월초육일개입(萬曆十二年七月二十五日立/萬曆十四年十二月初六日改立)’이 새겨져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해당 태실에서 중요한 부분이 비의 앞면인데, 성별+이름이 등장하고 있다. 즉 태주를 특정할 수 있는 단서인 것이다. 그렇다면 왕자 후는 누구일까? 기록상 나타나는 왕자 후는 바로 선조와 인빈 김씨 소생의 신성군(1579~1592)이다.

김포 고막리 태실의 태실비. 정상에 못 미쳐 자리하고 있다.
남양주 순강원. 신성군의 어머니 인빈 김씨의 원소다.
남양주 봉영사. 인빈 김씨와 신성군의 원찰이다.

이를 뒷받침 하는 것이 비의 뒷면에 새겨진 명문으로, 연호를 통해 태실이 조성된 시기를 특정할 수 있다. 태실비의 명문을 재구성해보면 최초 만력 12년(=1584년) 7월에 태실비가 세워졌고, 이후 만력 14년(=1586년) 12월에 새롭게 고쳐 세웠음을 알 수 있다. 신성군은 선조의 총애를 받던 왕자로, 한때 세자의 유력한 후보로 거론되던 인물이었다. 하지만 임진왜란(1595~1597)이 발발하는 예상 밖의 상황 속에서 광해군이 세자로 책봉되고, 신성군은 선조를 따라 의주로 피신하던 중 병사하게 된다. 현재 신성군의 묘는 남양주시 진접읍 내각리에 위치하고 있는데, 어머니인 인빈 김씨의 원소인 순강원(順康園)에서 멀지 않은 곳이다. 또한 순강원과 신성군 묘 인근에 두 사람의 명복을 빌기 위한 원찰인 봉영사(奉永寺)가 자리하고 있다.

■ 무관심 속에 방치된 신성군의 태실

조선이 유지되는 동안 나름 관리가 되었을 고막리 태실은 일제강점기가 시작되면서 여느 태실이 그러하듯 도굴을 피하지 못했다. 또한 마을의 우환이 계속 생긴다고 해서 태실비 역시 뽑혀서 지금처럼 굴려진 채 방치되고 있는 모습으로, 무관심 속에 방치되고 있는 태실의 현 주소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실제 해당 태실을 찾아간 날도 태실비 위로 낙엽이 쌓여 있었는데, 태실비가 있다는 걸 알고가지 않았다면 모르고 지나칠 뻔 했다. 그럼에도 앞선 조강리 태실(=인순공주 태실)과 비교하면 고막리 태실(=신성군 태실)은 상태가 좋은 편에 속한다.

고막리 태실의 비두. 연봉이 떨어져 나간 상태다.
정상에 남아 있는 태실의 흔적. 태함과 태실비를 세운 비좌가 남아 있다.

원형의 훼손 측면에서 조강리 태실의 경우 태봉산 자체가 사라졌지만, 고막리 태실은 원형 자체를 유지하고 있는데다 관심만 있다면 태실 관련 석물 역시 비교적 온전하게 보호가 가능하다. 어떻게 보면 충분히 문화재의 가치가 있음에도 비지정 문화재로 방치되고, 관리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는 점은 안타까운 대목이다. 더 이상의 훼손이 진행되기 전에 김포에 남아 있는 조강리 태실과 고막리 태실에 대한 문화재 지정과 더불어 실질적인 관리 대책이 필요하다. 아울러 명칭 역시 태주가 확인되었기 때문에 조강리 태실의 경우는 김포 인순공주 태실, 고막리 태실은 김포 신성군 태실로 변경할 필요가 있다.

김희태 기자  mail@newstower.co.kr

<저작권자 © 뉴스타워,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김희태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16310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정조로 966(조원동)  |  대표전화 : 031)373-8770  |  팩스 : 031)373-8445
등록번호 : 경기, 다01040  |  발행인 : 조백현  |  편집인 : 조백현  |  청소년보호책임자 : 조백현 대표   |  이메일 : mail@newstower.co.kr
Copyright © 2020 뉴스타워. All rights reserved.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