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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와 보물 사이… ‘구제’의 가치를 찾아서
이소영 기자 | 승인 2020.02.02 09:07

구제 쇼핑을 좋아한다. 구제 가게에서 보내는 시간은 백화점에서 느낀 ‘시간 도둑’과는 달라서다. 설령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해도 헤매는 공간 자체에서 누비는 재미가 있다.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으면 구입도 한다. 올 겨울에는 목도리 2개를 6000원에 샀다. 털이 적당히 풍성한 게 촌스럽지 않고 귀티가 났다. 집에 와서 빨래를 한 후, 목에 두르니 그제야 ‘소유권’이 전 주인에게서 옮겨 온 듯했다. 새 주인이 된 만큼 더 애틋해졌다. ‘더 아껴줘야지.’

‘구제’를 바라보는 눈은 저마다 다르다. 누군가의 눈에는 ‘쓰레기 더미’로 보이고, 다른 누군가의 눈에는 ‘보물 단지’로 보인다. ‘구제 가게’ 사장님들은 대개 이렇게 생각한다. ‘나는 죽은 옷을 살리는 사람이다.’

며칠 전, 취재차 구제가게 사장님들과 대화에 나섰다. 두 시간 가까이 가게 네 곳을 돌며 느낀 점. 모든 노동은 존엄하다. EBS1 ‘극한직업’ 프로그램에 나올법한 이들의 일상을 고스란히 들으며, 돈 버는 일은 쉽지 않다는 ‘뻔한’ 깨달음과 구제시장에서의 자본주의의 흐름을 배웠다.

이분들의 기상시간은 평균 새벽 네 시. 동이 트기도 전, 거래를 맺은 집하장에 가면 같은 일을 하는 이들이 물건을 고르기 위해 고군분투를 한다(옷을 떼 온 후 오전 중 가게 문을 열어야 하기 때문). 돈이 되는 옷을 찾기 위한 기싸움도 적잖다고.

20여 년 간 택시 운전을 하다, 오랜 꿈이었던 구제 옷가게를 차린 K사장님은 ‘브랜드’와 ‘원단’ 공부를 계속 한다고 했다. 8개월 간 ‘구제 무덤’ 속에서 살다보니, 이제는 구스 패딩만 눈으로 봐도 ‘죽은 솜’인지 ‘살아 있는 솜’인지 알 수 있다고 웃어 보였다.

‘보이지 않는 노동’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저마다 옷을 진열하는 노하우는 물론 세탁하는 기술도 익혀야 한다. 아무리 구제라도 깨끗하게 보여야 사람들이 돈을 꺼낸다는 것. K사장님은 ‘스팀다리미’를 예찬했고, 캄보디아 출신 결혼이주여성인 I씨는 ‘손빨래’를, 자영업을 하다 구제 매장에 뛰어든 L사장님은 ‘세탁기’를 택했다. 방법이 어쨌든 간 몸을 쓰는 일이다.

저마다 보람을 느끼는 순간은 다르다. 커튼부터 이불, 액세서리, 인형까지 없는 것이 없던 매장의 P사장님은 ‘오고가는 사연’이 여기까지 이끌었다고 했다.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이유를 안고 구제 집에 발을 내디뎌요. 지금 같은 겨울에 여름옷을 찾으러 오는 분들은 해외여행을 가는 경우가 많아요. 그럼 여행 이야기를 듣죠.” L사장님은 필리핀으로 구제물건을 보내 일종의 ‘프랜차이즈 사업’을 하고 싶다는 포부를 내비치기도 했다. K사장님은 물건을 사든 안사든 ‘여성들의 동네 사랑방’이 되었으면 한다고 했다.

이들이 가진 생각의 공통점이 있다면, 헌 옷 입는 건 ‘또 하나의 가치’라는 것. 패스트패션브랜드가 쏟아지는 시대, 환경에 대한 ‘연대’와 ‘책임 의식’을 구제라는 대안을 통해 찾을 수도 있다는 것.

이날 나는 구제 가게를 돌며, 스무 살 무렵 친정 엄마 몰래 사온 구제옷을 장롱 속 숨겨뒀던 기억이 났다. 어디서 굴러 온지도 모르는 옷이라며 질색했던 엄마 눈을 피해서였다. 그러나 나는 이제 더 당당해 질 수 있을 것 같다. 평범한 일상을 특별한 것으로 만드는 것은 남이 아닌 나 자신에게 달려있다는 걸 알았으니 말이다. P사장님의 말이 귓전에 맴돈다. “죽은 사람이 그 옷을 입고 죽은 건 아니잖아요. 우리가 저 세상에 가져갈 수 있는 건 결국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소영 기자  mail@newstow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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