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역사를 돌아보면 삼국시대라 부르는 고구려와 백제, 신라의 발전과 대립은 시기별로 서로 다른 양상을 보이며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양상의 공통점은 어느 세력이 한강 유역을 장악했는지에 따라 그 전성기를 구분하곤 한다. 우선 가장 먼저 한강 유역을 차지했던 세력은 백제로, 고구려를 떠난 온조와 비류가 부아악(=북한산 추정)에 올랐을 때 온조는 한수를 도읍으로 삼게 된다. 바로 하남 위례성의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하남 위례성은 지금의 송파구와 하남 일원으로 여겨지는데, 백제는 한강 유역을 기반으로 자신이 속했던 마한을 정복하며 세력을 키워나갔던 것이다.

성남 망경암에서 바라본 송파구 일원. 옛 하남 위례성이 있던 곳으로 추정된다.

■ 고구려의 전성기와 후기 국경선인 임진강으로 후퇴하는 과정

이후 백제는 고구려와 대립을 하게 되는데, 미천왕 시기 둘 사이의 완충지대 역할을 해주던 낙랑군과 대방군이 고구려에 의해 축출이 되면서 충돌을 피할 수 없게 된다. 이러한 충돌의 대표적인 장면이 백제 근초고왕 때 있었던 평양성 전투(=371년)로, 이 전투에서 고구려의 고국원왕이 전사하는 미증유의 위기에 빠지게 된다. 이후 고구려는 소수림왕의 즉위와 함께 내치의 안정과 함께 국력을 회복하게 되고, 이를 기반으로 조카인 광개토왕의 치세를 여는 마중물 역할을 하게 된다. 실제 광개토왕과 장수왕 시기를 거치며 고구려는 백제를 압박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백제 개로왕 때 하남 위례성이 함락되며, 수도를 웅진으로 천도하기에 이르렀다. 이에 따라 한강 유역은 고구려가 장악했던 것이다.

광개토왕비(=복제품). 고구려의 전성기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문화재다.

한편 고구려에 의해 수도를 웅진으로 천도한 백제는 국가의 생존을 도모하기 위해 신라와 손을 잡는 선택을 하게 되고, 신라 역시 고구려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기 위해 백제와 손을 잡는 이른바 나제동맹(羅濟同盟)을 맺게 되고, 고구려에 맞서 대항했다. 그러다 고구려의 힘이 약화되자 백제 성왕과 신라의 진흥왕은 고구려로 진격, 고구려를 임진강 이북으로 몰아내는 데 성공하게 된다. 하지만 한강유역을 두고 백제와 신라 간의 분쟁이 발생하게 되고, 이후 백제와 신라는 국가의 명운을 건 전쟁에 돌입하게 된다.

성왕의 패사지로 알려진 구진벼루. 성왕의 죽음과 관산성 전투의 패전은 백제에 있어 악몽과도 같았다. (사진제공= 이건일)

연천 신답리 고분. 고구려 후기의 묘제인 석실분으로, 임진강 일대의 고구려 유적 가운데 하나다.

하지만 관산성 전투(=554년)를 통해 성왕이 전사하고, 백제는 3만에 가까운 군사를 잃어버리며 치명적인 패배를 당하게 된다. 반대로 한강 유역을 장악한 신라는 이 기세를 몰아 국가의 전성기를 열게 되니, 이때부터 임진강은 고구려와 신라의 국경선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지금도 임진강을 따라 ▲연천 호로고루(사적 제467호) ▲연천 당포성(사적 제468호) ▲연천 은대리성(사적 제469호) 등의 고구려 성과 고구려의 석실분인 연천 신답리 고분(경기도 기념물 제210호)처럼 고구려의 흔적이 남아 있는 배경이 되었던 것이다.

■ 지형을 최대한 활용했던 고구려 성의 특징을 보이는 연천 당포성

흔히 고구려를 산성의 나라라고 표현을 하는데, 성을 축조하는 있어 고구려인들은 자연 지형을 최대한 이용하는 특징을 보인다. 가령 최초 고구려의 수도인 오녀산성(=오녀산산성)의 경우 자연적인 절벽 부분을 활용, 산으로 통하는 길목에만 성벽을 쌓는 방식을 활용한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러한 특징은 비사성(=대흑산산성)을 비롯한 고구려 성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특징이다. 이는 임진강을 따라 늘어선 고구려의 성에서도 확인이 가능한데, 연천 호로고루와 당포성 역시 임진강의 자연적인 지형을 최대한 활용하고, 육로가 통하는 곳에만 인위적인 성벽을 쌓는 방식인 것을 볼 수 있다. 때문에 연천 호로고루와 당포성 모두 하늘에서 보면 역삼각형의 형태라는 공통점을 보이고 있다.

연천 호로고루. 장단과 개성 사이의 최단거리를 방어하는 곳으로, 옛 장단현의 치소가 있던 곳이다.

연천 호로고루에서 바라본 임진강. 깊이가 얕아 육로로 이동이 가능하다.

또한 연천 호로고루와 당포성 등 고구려 성이 축조되는 지역의 공통적인 특징은 바로 교통로 상 중요한 요충지에 해당한다는 점이다. 즉 연천 호로고루의 경우 장단과 개성으로 이어지는 최단거리이자 강의 깊이가 얕아 육로로 이동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또한 당포성의 경우 당개나루가 있던 곳으로, 과거 개성으로 가는 교통로였다는 점에서 해당 지역을 방어하는 목적으로 성이 축조되었음을 사실을 보여준다. 또한 고구려 성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성곽의 경우 들여쌓기 혹은 치(雉) 등의 방어시설을 활용한다는 점은 고구려 성에서 보이는 공통된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삼화교에서 바라본 연천 당포성. 임진강의 주상절리 절벽을 성벽으로 활용한 특징을 보인다.

당포성의 성벽 위에서 바라본 모습. 외형이 호로고루의 판박이처럼 닮아 있다.

유일한 통로에 인위적으로 쌓은 성벽. 지형지물을 최대한 활용했던 고구려인의 지혜가 엿보인다.

이처럼 임진강을 따라 늘어선 고구려의 성과 고분 등의 유적은 삼국시대 후기 국경선이 임진강으로 고착화되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와 함께 ▲<삼국사기> 온달전을 보면 신라에 빼앗긴 계립현과 죽령의 서쪽의 땅을 되찾아야 한다는 언급 ▲<삼국유사> 김유신전에 나오는 연개소문이 고구려로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방문한 김춘추(=무열왕)에게 죽령 이북의 땅을 내놓으라고 언급한 점은 고구려가 임진강 유역으로 국경이 후퇴했음에도 여전히 고토 회복 의식이 있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고구려와 신라가 임진강을 두고 대치했던 국경선도 국제정세의 변화 속에 변곡점을 맞이하게 된다.

단양적성비. 신라 진흥왕 시기 죽령 이북을 넘어선 신라의 시대상을 보여주는 문화재로, 온달이나 연개소문의 예에서 보듯 임진강으로 국경이 고착화된 시점에서도 고구려는 고토 회복 의식을 엿볼 수 있다.

가장 먼저 660년 나당 연합군에 의한 백제의 멸망을 시작으로, 666년 고구려를 실질적으로 통치했던 연개소문의 죽음은 고구려에 치명타를 안겼다. 이후 연개소문의 세 아들(=연남생, 연남산, 연남건) 간 내부의 권력을 두고 내분으로 고구려는 안에서 무너지게 되고, 이 과정에서 연개소문의 동생으로 알려진 연정토가 신라로 투항을 하게 되는데, <삼국사기>에는 12성 763호 3,543명을 이끌고 투항했음을 알리고 있다. 당시 연정토가 투항했던 지역을 고구려의 남부로 보는 견해가 있는데, 이 경우 임진강 방어선이 신라로 넘어갔다고 볼 수 있다. 이처럼 임진강을 따라 볼 수 있는 고구려의 성은 단순히 기념물로서의 의미를 넘어선 당시의 시대상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 역사의 현장으로, 연천 당포성을 비롯한 연천에 소재한 고구려의 성과 고분 등은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김희태 기자  mail@newstow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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