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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천의 옹주 묘(1) - 신생옹주 묘를 아시나요?경기도의 역사와 문화를 찾아서
김희태 기자 | 승인 2020.03.08 10:27

보통 왕의 자녀를 칭할 때 부르는 호칭은 제각각인데, 그 기준은 왕비 소생이냐 후궁의 소생이냐에 따라 달라진다. 즉 왕비 소생의 남아일 경우 대군(大君), 여아일 경우 공주(公主)로 불리는데 비해, 후궁의 소생일 경우 남아는 군(君), 여아는 옹주(翁主)로 불린다. 가령 다산의 여왕이라 불릴 만큼 많은 자녀를 낳았던 소헌왕후 심씨의 경우 8남 2녀를 두었는데, 남아의 경우 대군, 여아의 경우 공주로 불린 것을 알 수 있다. 반면 숙종과 영조의 경우 왕비 소생의 자녀가 없고, 후궁 소생의 자녀만 있었다. 때문에 남아의 경우 군으로, 여아의 경우 옹주로 불렸다.

성주 세종대왕자 태실. 왕비 소생의 경우 대군(大君)으로, 후궁 소생의 경우 군(君)으로 불렸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왕의 자녀들의 묘역은 전국 각지에 분포하고 있어 당시의 시대상을 보여주는 좋은 자료가 되는데, 이 가운데 경기도 부천에는 작동산과 지양산 일대를 중심으로 옹주들의 묘가 집중적으로 분포하고 있다. 현재까지 확인된 옹주들의 묘는 ▲민자방, 경숙옹주 묘 ▲황인점, 화유옹주의 묘 ▲신생옹주 묘 등이 확인되었는데, 알려지기로는 이보다 많은 옹주들의 묘가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 가운데 황인점과 화유옹주의 묘, 신생옹주의 묘 등은 영조와 귀인 조씨의 소생으로 추정되고 있어 서로 연결점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이번 시간부터는 부천에 소재한 3곳의 옹주묘에 담긴 이야기와 시대상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 신생옹주? 그게 누구야?

주변 사람들에게 부천에 신생옹주의 묘가 있는 것을 아냐고 물어보면 대부분 금시초문이라는 반응이다. 실제 이곳을 다녀간 일부 사람들을 제외하면 대부분 그 존재를 잘 모르는 곳인데, 여기서 신생옹주(新生翁主)라고 하면 이름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신생옹주는 이름이 아니라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의미로 이해해야 한다. 실제 <태봉등록>을 보면 갓 태어난 옹주들을 신생옹주라 칭한 것을 볼 수 있다. 보통 우리가 왕의 자녀를 부를 때 ‘○○大君’, ‘○○翁主’ 등으로 부르는 것 역시 부왕으로부터 직첩을 받은 이후에 불린다는 사실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는 것이다.

처음 마주한 신생옹주 묘의 모습. 관리되지 않은 비지정 문화재의 모습을 여실히 보여준다.

부천 신생옹주의 묘를 찾는 과정은 쉽지 않았는데, 처음 신생옹주 묘의 존재를 인지하고 이곳을 다녀가신 분에게 부탁해 위치 정보를 알 수 있었다. 지도상으로는 찾기 어렵지 않아 보였는데, 막상 현장을 방문해보니 묘가 있을 만한 곳이 보이지 않아 한 동안 해당 지역을 헤매야 했다. 그렇게 한참을 헤매다가 마침내 묘비가 눈에 들어왔는데, 사진 속에서 보던 신생옹주의 묘비와 일치했다. 현재 신생옹주의 묘는 방치된 묘비를 제외하면 묘의 흔적은 찾을 수가 없다. 처음에는 산 중턱에 신생옹주의 묘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예상외로 오솔길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이곳은 평소에 사람들이 종종 지나다니는 길로, 그야말로 등잔 밑이 어둡다는 표현이 적절하다.

비석의 전면에 새겨진 신생옹주지묘(新生翁主之墓)
비석의 옆면에 새겨진 정좌계향(丁坐癸向)

현재 묘비에서 확인되는 명문은 전면에 ‘신생옹주지묘(新生翁主之墓)’가, 비의 옆면에 ‘정좌계향(丁坐癸向)’이 새겨져 있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신생옹주는 갓 태어난 후궁 소생의 옹주를 지칭하는 것으로,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세상을 떠나 이곳에 묻힌 것으로 보인다. 또한 비의 옆면에 있는 정좌계향은 신생옹주 묘를 조성했을 때의 방향으로 이해가 된다. 안타깝게도 묘비에서는 신생옹주가 누구인지를 추정할 수 있는 연대와 관련한 흔적이 확인이 되고 있지 않다. 따라서 묘비만으로는 신생옹주가 누구인지를 알기란 쉽지 않다. 다만 묘비의 형태나 인근에 조성된 묘를 통해 피장자가 누구인지를 추정해볼 수 있는데, 우선 이장되기 전 영조의 후궁인 귀인 조씨의 묘와 영조와 귀인 조씨 소생의 화유옹주의 묘가 신생옹주 묘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선원계보도>를 보면 영조와 귀인 조씨 사이에는 옹주가 두 명이 있었는데, 직첩을 받지 못한 장녀(=1735년, 제8왕녀 / 선원계보도 상 제5왕녀)와 화유옹주다.

■ 방치된 신생옹주 묘, 보존과 활용을 위한 대책 필요

이처럼 인근에 조성된 묘의 배치를 통해 해당 신생옹주의 묘를 영조와 귀인 조씨 소생의 장녀로 추정해볼 수 있는 근거가 된다. 또한 묘비의 변화 과정 역시 눈여겨보면 좋은데, 조선 전기 공주나 옹주의 묘비의 경우 후기의 묘비 형태가 다른 것을 볼 수 있다. 가령 서울 의령옹주 묘(=태조와 찬덕 주씨 소생)와 고양 경혜공주 묘(=문종과 현덕왕후 권씨 소생), 남양주 경숙옹주 묘(=문종과 사칙 양씨 소생) 등 조선 전기에서 나타난 묘비의 경우 하엽(荷葉)의 형태를 보이고 있다. 이 경우 부천 신생옹주의 묘비 형태와는 확연한 차이를 보이기에 부천 신생옹주의 묘가 조선 전기의 묘라고 보기는 어렵다. 물론 신생옹주 묘비의 형태가 정확하게 어느 시기인지는 좀 더 고증이 필요하지만, 현재로서는 해당 신생옹주의 묘를 영조와 귀인 조씨 소생의 장녀로 보는 시각에 무게가 실릴 수밖에 없다.

측면에서 바라본 신생옹주 묘. 현재 묘비만 남아 있을 뿐 봉분의 흔적은 찾을 수가 없다.
포천 무봉리 태봉. 해당 신생옹주 묘가 영조와 귀인 조씨 소생의 옹주로 확인될 경우 포천 무봉리 태봉의 태주가 된다.

또한 신생옹주 묘와 관련해서는 앞으로도 연구가 필요한 부분으로, 추정대로 신생옹주의 묘가 영조와 귀인 조씨의 장녀로 확인될 경우 본지에서 소개한 바 있는 포천 무봉리 태봉의 태주가 된다는 점은 눈여겨볼만하다. 이 경우 ‘부천 신생옹주 묘=포천 무봉리 태봉’의 연결이 가능하기에 문화재의 가치와 의미를 더할 수가 있다. 이처럼 부천의 역사와 문화 자원으로 손색이 없는 신생옹주의 묘임에도, 현재 방치된 채 관리의 사각지대에 있다는 점은 여러모로 안타까운 대목이다. 빠른 시일 내에 신생옹주 묘에 대한 조사와 함께 문화재 지정 및 오솔길에 이정표와 안내문 등을 설치해 보다 많은 사람들이 신생옹주 묘에 대해 알 수 있도록 보존과 활용을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

김희태 기자  mail@newstow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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