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오피니언 연재
안산 취몽헌 오태주 묘역과 주목해볼 명안공주 어제치제문비경기도의 역사와 문화를 찾아서
김희태 기자 | 승인 2020.03.08 10:48

수원에서 안산 방향의 수인로를 가다 보면 오태주 묘와 관련한 이정표를 만날 수 있는데, 문화재의 정식 명칭은 취몽헌 오태주 묘역(경기도 기념물 제186호)이다. 여기서 취몽헌(醉夢軒)은 오태주(吳泰周)의 호로, 형조판서를 지낸 오두인(吳斗寅)의 아들이다. 또한 오태주의 아내는 현종의 셋째 딸인 명안공주로, 왕의 부마가 되면서 해창위(海昌尉)의 위호를 받았다. 주로 숙종 대에 활동했던 문신으로 정치적인 성향은 서인에 속했는데, 가령 희빈 장씨 소생의 왕자 윤을 세자로 책봉하고자 했을 때 이에 반대 의사를 표시했던 송시열의 입장에 동조했던 입장에서 찾을 수 있다.

안산 취몽헌 오태주 묘역

때문에 한때 해창위의 위호를 삭탈 당하기도 했으나, 기본적으로 오태주와 숙종에 대한 신뢰 관계가 형성이 되어 있어 직첩은 다시 돌려주고 친히 어제시를 보내는 등 사이가 좋았다. 이를 알 수 있는 것이 오태주가 세상을 떠난 뒤 숙종은 친히 어제치제문을 보내 애도를 표하기도 했다. 즉 오태주는 당색이 옅고, 서예 등의 활동에 더 두각을 드러내며, 권력과는 일정 정도 거리를 두었다고 볼 수 있다. 여기에 숙종의 하나 뿐인 누이였던 명안공주의 남편이라는 것도 숙종과 오태주의 신뢰 관계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 명안공주와 숙종의 관계를 엿볼 수 있는 명안공주 어제치제문비

오태주와 함께 주목해야 할 인물이 바로 명안공주로, 당시 여인으로 드물게 이름이 알려져 있다. 명안공주의 이름은 온희(溫姬)로, 현종과 명성왕후 김씨 소생의 1남 3녀 중 막내딸이었다. 명안공주의 위로는 장녀인 명선공주, 차녀인 명혜공주가 있었는데 모두 일찍 세상을 떠났기에 현종의 자녀 중 장성했던 이가 숙종과 명안공주였다. 특히 현종의 경우 조선의 왕 가운데 유일하게 후궁을 두지 않았기에 현종의 자녀는 숙종과 명안공주가 유일했기에 오누이 사이는 각별할 수밖에 없었다. 실제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1684년 청나라로 간 사신이 돌아올 때 청주(淸主, 주; 청나라의 황제)가 은(銀)과 비단을 보냈는데, 이때 온 비단을 명안공주에게 주기도 했다. 하지만 1687년 명안공주가 세상을 떠나자, 숙종은 “몹시 슬프고 애통스러워 마음을 어떻게 할 수 없다”며 슬픔을 표했으며, 직접 명안공주의 집으로 행행하여 곡을 했다.

안산 취몽헌 오태주 묘역. 해창위 오태주와 명안공주의 합장묘다.
명안공주 어제치제문비. 숙종이 직접 내린 치제문으로, 앞면은 오태주, 뒷면은 명안공주의 애도의 성격을 담은 글이다.
묘비. 묘비의 내용을 통해 명안공주와 해창위의 위호를 받고, 역임한 관직을 새긴 오태주의 묘인 것을 알 수 있다.

한편 명안공주의 장지를 조성하는데 있어, 최초 양주 서면의 염산으로 정했는데, 보통 한양에서 10리 이내는 금표로 설정되었기에 묘를 쓸 수 없도록 규제를 했다. 그럼에도 숙종은 의숙공주(세조와 정희왕후 윤씨 소생)의 묘가 양주 개좌동에 조성된 사례를 들어 승정원의 반대를 무릅쓰고, 장지를 조성했다. 또한 장지를 조성하는 과정에서 묘에 세울 석물을 강화도에서 가져오게 했는데, 이 역시 기존의 견지된 입장을 바꾼 것에 속했다. 그 만큼 명안공주를 어떻게 인식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로, 이를 잘 보여주는 사례가 바로 명안공주 어제치제문비(明安公主 御製致祭文碑)이다. 어제치제문비는 숙종이 명안공주와 오태주가 세상을 떠나자 직접 내린 어제치제문으로, 비석의 앞면은 오태주, 뒷면은 명안공주에 대한 애도의 성격을 담고 있다. 이같은 어제치제문비의 경우 그 사례가 매우 드문 경우로, 귀중한 자료라고 할 수 있다.

■ 오태주, 명안공주 묘에 담긴 이야기를 주목해보자!

현재 오태주, 명안공주의 묘는 옛 소릉터를 제외하면 안산의 유일한 왕실 무덤으로, 묘역은 크게 가장 위쪽에 오태주의 모친인 상주 황씨의 묘가, 가운데 오태주와 명안공주의 합장묘, 그 아래 오태주와 명안공주의 아들인 오원의 묘가 일렬로 조성되어 있다. 특히 합장묘의 봉분을 중심으로, 좌측에는 명안공주 어제치제문비가 우측에는 묘비가 자리하고 있는데, 묘비에는 ‘조선국왕녀명안공주지묘(朝鮮國王女明安公主之墓) / 수록대부해창위겸오위도총(綏祿大夫海昌尉兼五衛都摠) / 부도총관오공태주도장지묘(府都摠管吳公泰周道長之墓)’가 새겨져 있다. 묘비의 내용을 통해 해당 묘가 명안공주와 오태주의 합장묘라는 것을 알 수 있으며, 오태주의 경우 부마의 위호와 역임한 관직 등이 새겨진 것을 볼 수 있다. 또한 묘의 가운데 상석과 향로석, 장명등이 배치되어 있고, 좌우로는 문인석과 망주석 각 1쌍이 자리하고 있다.

묘역의 상단에 위치한 상주 황씨의 묘. 오태주의 모친이다.
묘역의 아래 위치한 오원의 묘. 오태주와 명안공주의 아들이다.
성남 봉국사. 명안공주의 언니인 명선공주와 명혜공주의 원찰이다.
부여 명혜공주 태실비. 명안공주의 태실 역시 명혜공주와 함께 있었지만, 지금은 땅에 묻었다고 전할 뿐 그 흔적을 찾을 수 없다.

한편 명안공주의 묘와 함께 주목해볼 장소가 있는데, 바로 명안공주의 언니인 명선공주와 명혜공주와 관련한 흔적이다. 가령 성남에 있는 사찰인 봉국사(奉國寺)의 경우 명선공주와 명혜공주의 원찰이었다. 즉 이때만 해도 명선공주와 명혜공주의 묘는 성남에 있었는데, 이후 해당 지역의 개발 과정에서 명선공주와 명혜공주의 묘는 고양 서삼릉의 왕자, 공주 묘로 옮겨졌다. 또한 숙종의 명릉 역시 고양 서오릉에 위치하고 있어 숙종과 그 누이들의 흔적을 경기도에서 찾아볼 수 있는 점은 흥미롭다. 또한 최초 명안공주의 태실은 명혜공주의 태실과 함께 부여에 있었는데, 지금은 땅에 묻었다고 전할 뿐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대신 명혜공주의 태실비는 부여 정림사지 박물관으로 옮겨져 야외에 전시되고 있다. 이처럼 오태주와 명안공주의 묘를 통해 당시의 시대상을 이해할 수 있고, 귀중한 자료인 명안공주 어제치제문비는 숙종과 누이의 애틋함을 엿볼 수 있는 자료라는 점에서 주목해볼 역사의 현장이라고 할 수 있다.

김희태 기자  mail@newstower.co.kr

<저작권자 © 뉴스타워,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김희태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16310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정조로 966(조원동)  |  대표전화 : 031)373-8770  |  팩스 : 031)373-8445
등록번호 : 경기, 다01040  |  발행인 : 조백현  |  편집인 : 조백현  |  청소년보호책임자 : 조백현 대표   |  이메일 : mail@newstower.co.kr
Copyright © 2020 뉴스타워. All rights reserved.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