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오피니언 칼럼
눈 만큼은 샛별처럼 빛나야 할 때
이소영 기자 | 승인 2020.03.13 16:16

시간을 좀 거슬러 올라가봤다. 1997년부터 1년 여 기간, 당시 사람들의 사는 모습을 들여다봤다. 언론진흥재단이 운영하는 뉴스 빅데이터 분석시스템인 ‘빅카인즈’에서 검색한 외환위기 무렵의 신문 기사에는 ‘우울한 한가위’, ‘갈 곳이 없다’ 부터 ‘생계 걱정’, ‘우울’, ‘자살’ 등의 단어가 적잖았다. 엎친 데 덮친 격, 불가항력적인 사고도 있었다. 1998년 8월에는 집중호우로 인한 수해로 많은 피해가 발생했다. 같은 해 12월에는 돼지콜레라로 비상이 걸렸다.

​타임머신을 탔는데 큰 차이는 없었다. 24년 전이나 지금이나 크고 작은 개인적·사회적·국가적 재난 상황은 계속 반복되는 건 흡사했다. ‘어떤 정권’이 들어서느냐, 자리를 차지하느냐에 상관없이. (물론 ‘그 정권’이 어떻게 ‘처리’를 해나가느냐는 다르겠지만).

​UCLA 면역학 교수인 리자 P.테일러의 첫 실화소설인 ‘사랑과 진실’. 배경은 1854년 콜레라가 창궐하는 영국 런던의 여름. 오염된 식수와 콜레라의 발병관계 안에 정치권력의 부패와 횡포, 음모와 테러, 허위로 가득 찬 종교집단의 광기와 협박 등이 있다는 것을 그린다. 단순한 전염병과 죽음을 넘어. 영국이 아닌 대한민국, 2020년 현실로 돌아온 지금. 콜레라가 아닌 코로나, 옛 당명의 작명에 얽힌 주장, 시계의 진위 여부가 언론에서 들끓는다. 소설보다 더 소설적인 현실, 영화보다 우위를 점하는 현실일지도 모르겠다.

최근 TV의 한 프로그램에서 독립운동가를 수감했던 서대무형무소 방문기가 나왔다. ‘빼앗긴 조국과 앞날에 대한 희망’과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와의 싸움’을 비견하기엔 억지가 있지만, ‘막막함’은 손톱만큼이야 비슷할지 모르겠다는 짐작을 했다. 당시 똥통이 끓는 감옥 안에서 소설가 심훈은 어머니에게 편지를 보낸다. 그는 “밤이면 빈대 벼룩이 다투어가며 진물을 살살 뜯습니다”라면서도 편지 말미에 “생지옥 속에 있으면서 하나도 괴로워하는 사람이 없고 눈은 샛별과 같이 빛나고 있습니다”라고 마침표를 찍었다.

​‘눈 만큼은 샛별처럼 빛났더라.’

이름조차 남기지 못하고 생을 마친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을 생각하니, 한 달 넘게 병원에서 풍찬노숙하며 애쓰는 의료진, 수많은 자원봉사자들이 겹쳐 보이는 듯하다. 나는 천마스크를 제작하고, 임대료를 인하하고, 저금통에 있던 돈을 기부하는 A노선인지, ‘이게 나라’냐며 투정하거나 ‘확진자 카운팅’에만 관심 있는 B노선인지 생각하다 못내 부끄러워진다. 쉽게 구하기 힘든 마스크, 자유롭게 나가지 못하는 일상, 알고 보면 조그만 일에만 ‘분개’하며 쫌생이가 되어 가지는 않았는지.

현대사, 인간이 인간에게 행하는 야만은 ‘고문’이라는 행위였다. 앙드레 말로는 ‘고문’보다도 ‘모욕’이 더 치욕스럽다고 했다. ‘고문’이든 ‘모욕’이든 당하지 않으면 모를 후유증이 남는다. 자다가도 고문기술자들에게 고문을 당하는 꿈을 꾼다고 고백한 이들도 적잖다. 육체적 고문 행위는 사라졌지만, 가슴에 시커먼 멍이 남지 않기 위해서는 지금이 중요하다.

폐질환, 병 그 자체의 ‘코로나’를 넘어 산자들에게 더 큰 신음을 내게 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육신을 넘어 정신에 가해진 고문의 흔적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서로가 서로의 가치를 능욕하고, 박탈하지 않고, 인간다움, 존엄을 지키는 일을 떠올려야 한다. 덧붙여 자신의 ‘증상’과 ‘증상과 얽힌 종교행위’를 묵인하는 것은 국가를 향한 폭력 묵인과 같다는 걸 잊어선 안 된다. 몇 십 년 후 지금 이 순간이 ‘어두운 과거’로 남지 않기 위해. 그 길 위에 ‘코로나 사태’가 지금 말문을 열고 있다.

이소영 기자  mail@newstower.co.kr

<저작권자 © 뉴스타워,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소영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16310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정조로 966(조원동)  |  대표전화 : 031)373-8770  |  팩스 : 031)373-8445
등록번호 : 경기, 다01040  |  발행인 : 조백현  |  편집인 : 조백현  |  청소년보호책임자 : 조백현 대표   |  이메일 : mail@newstower.co.kr
Copyright © 2020 뉴스타워. All rights reserved.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