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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의 태실 - 혜정옹주의 태실인 연천 동막리 태실경기도의 역사와 문화를 찾아서
김희태 기자 | 승인 2020.04.19 18:35

현재까지 연천에서 확인된 태실은 크게 ▲연천 유촌리 태실 ▲연천 동막리 태실이 있다. 이 가운데 연천 동막리 태실은 동막 1리에 있는데, 마을회관 옆에 있는 봉우리 정상에 자리하고 있다. 해당 봉우리는 성산(城山)으로 가는 등산로가 이어져 있는데, 성산은 여러 봉우리와 제법 굴곡이 있는 산으로, 평소에도 많은 등산객들이 찾고 있는 곳이다. 또한 산의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성산은 성령산성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동막 1리에서 바라본 연천 성산. 마을회관 옆 봉우리 정상에 동막리 태실이 자리하고 있다.
연천 동막리 태실의 원경

연천 동막리 태실의 정확한 주소는 경기도 연천군 연천읍 동막리 산 55-2번지로, 동막 1리 마을회관에서 봉우리 정상까지 대략 10분 정도면 올라갈 수 있을 만큼 접근성이 나쁘지 않다. 현재 연천 동막리 태실의 현황은 태함의 개석이 일부 노출이 되어 있는 상태로, 바로 뒤에 동막리 태실과 관련한 내용을 적은 표석이 세워져 있다. 또한 태실 주변으로 군사용 진지가 자리하고 있으며, 성산의 정상으로 가는 등산로가 조성되어 있다. 이러한 연천 동막리 태실은 과연 누구의 태실일까?

■ 태지석을 통해 중종과 경빈 박씨 소생의 혜정옹주 태실로 확인된 연천 동막리 태실

현재 동막리 태실의 경우 태실비는 사라진 상태지만, 다행히 태함에서 태지석이 출토가 되었기에 태주를 특정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태지석에는 ‘황명정덕구년십월초십일묘시생왕녀옹주석환아지씨태/정덕구년십이월이십육일축시장(皇明正德九年十月初十日卯時生王女翁主石環阿只氏胎/正德九年十二月二十六日丑時藏)’이 새겨져 있다. 여기서 정덕은 명나라 황제인 무종(=정덕제)의 연호로, 정덕 9년을 환산해보면 1514년(=중종 9년)이다. 이를 통해 동막리 태실의 태주는 1514년에 태어난 옹주라는 점과 아명이 석환(石環)이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장태일자와 관련해 태실의 조성이 출생일로부터 3개월 뒤인 것을 알 수 있는데, <태봉등록>에서 언급한 장태법을 보면 왕녀의 경우 3개월 뒤에 태실을 조성했음을 알 수 있다.

연천 동막리 태실. 현재 태함의 개석이 노출된 모습으로, 태실비는 확인이 되고 있지 않다.
연천 동막리 태실의 안내 표석. 개석의 바로 뒤에 자리하고 있다.
연천 동막리 태실의 태함

여기서 태주의 출생연도인 1514년은 중종이 재위한 시기로, 중종의 왕녀 가운데 이에 부합하는 인물은 혜정옹주(1514~1580)가 유일하기 때문에, 연천 동막리 태실의 태주는 중종과 경빈 박씨 소생의 혜정옹주의 태실로 밝혀졌다. 혜정옹주는 홍서주의 아들인 홍여와 혼인을 했는데, 홍여는 부마가 되면서 당성위(唐城尉)의 위호를 받았다. 정혜옹주의 어머니는 경빈 박씨로 중중과의 사이에 복성군과 혜순옹주, 혜정옹주 등 1남 2녀를 두었다. 그런데 쥐를 이용해 세자를 비방했다는 이른바 ‘작서의 변(1527)’ 사건으로 모함을 받으며, 어머니 경빈 박씨와 오빠인 복성군, 언니인 혜순옹주를 포함해 혜정옹주까지 모든 가족이 비극을 겪게 된다. 우선 경빈 박씨와 복성군은 폐서인 된 이후 사사되었고, 혜순옹주와 혜정옹주는 직첩을 빼앗기고, 폐서인이 되었다. 또한 혜순옹주의 경우 경상도 상주로 유배 되었으며, 혜정옹주의 남편인 홍여의 경우 이 사건으로 죽임을 당하는 등 그야말로 가족의 비극이었던 셈이다.

연천 동막리 태실. 중종과 경빈 박씨 소생의 혜정옹주의 태실로 확인되다.

연천 동막리 태실은 앞서 본지에서도 소개한 바 있는 연천 유촌리 태실과 함께 연천 지역에서 확인되는 두 기의 태실로, 태지석을 통해 태주가 특정되었다는 점과 태함이 온전히 남아 있어 경기도의 태실 가운데 비교적 잘 보존된 경우에 속한다. 여기에 나름의 상징성까지 갖추고 있으니, 연천 동막리 태실이 가지는 의미는 남다르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동막리 태실은 비지정 문화재로, 그간 성산을 등산하는 사람들에 의해 존재가 알려져 왔다. 한편 경기도에서는 올해 초 보도자료를 통해 경기도 내 태실의 보호와 관리에 신경을 쓰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또한 현재 남아 있는 경기도의 태실 가운데 태주가 특정되고, 현장이 잘 남아 있는 사례는 생각처럼 많지가 않다는 점에서 연천 동막리 태실에 대한 관심 역시 필요한 대목이다. 이를 통해 성산과 성령산성, 재인폭포 등과 함께 새로운 문화 관광자원으로 연천 동막리 태실의 변화를 기대해본다.

김희태 기자  mail@newstow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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