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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가 와도 노인들의 일상은 계속된다
이소영 기자 | 승인 2020.09.12 09:47

이십대 초반 아들 셋, 딸 하나를 낳았다. 막내딸이 두 살 되었을 즈음 남편은 병으로 죽었다. 시어머니를 모시며 아이를 키우느라 죽기 살기로 살았다. 새마을운동 붐이 일어날 때 마을 부녀회장으로 나서 10년 넘게 활동도 했다. 세월이 흘러 어느덧 아흔을 바라보는 나이. 이제는 그저 하루하루가 지치고 힘이 부친다. 산다는 게 뭔가 싶다.

필자의 시할머니 이야기다.

사실 그녀는 나에게 명절 때마다 ‘불편함’을 선물로 주는 존재였다. 며느리들에게 꼬장꼬장 잔소리를 늘어놓고 주방일에 반대표를 던지는 그녀를 볼 때마다 내 얼굴 근육은 굳어갔다. 노인‧꼰대 등의 ‘대명사’로 다가왔던 그녀가 하나의 살아있는 ‘존재(한 여성의 일생)’로 여겨졌던 건 딱히 특별한 일이 있던 건 아니었다. 굳이 이유를 꼽자면 코로나19라는 바이러스?

홀로 사는 이 노인은 바이러스 앞에 처참히 부서져갔다. 파업으로 인해 병원 한 번 마음 놓고 못 갔다. 진짜인지 가짜인지 모르겠지만 자식들 앞에서 ‘배고프다’는 소리도 자주 했다. 밥 먹은지 얼마 안 됐음에도. 마음에 허기가 졌을 지도. 몇 년 전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에서 꼰대들이 했던 말, “삶은 막장이야!”라는 말이 떠올랐다. “늙으면 죽어야지”라는 새빨간 거짓말을 하면서도 굶지 않고 끼니를 이어가는 모양새. 그제야 시할머니가 살아온 인생의 족적이 머릿속에서 그려졌다.

그리하여 며칠 전 나는 대형마트 앱에 들어가 이것저것 식재료를 주문했다. 다행히 중심가와 떨어진 시골임에도 배달이 됐다. “밖에서 누가 나를 자꾸 부르더라고. 잘 받았어. 고맙습니다.” 휴대 전화 너머로 진심이 전해졌다. 장을 배달해 준 배달원은 그녀에게 낯선 자이면서도 반가운 이었던 것이다. 바이러스 앞 ‘구매 난민’에 놓였던 그녀를 보면서 난 그녀가 ‘존엄의 대상’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누군가 시켜주지 않으면 노인들은 전혀 모르는 우리 민족의 정체성 ‘배달의 민족’. 그녀가 진정으로 원했던 것은 소외의 영역에서 보살핌의 대상으로 건져주는 것이었을 수도.

문득, 고독사 현장을 전문적으로 치워주는 청소업체 대표가 어느 언론과 한 인터뷰가 떠올랐다. “정부에 부탁합니다. 제발 전기와 수도는 끊지 않았으면 합니다.” 늙지 않으면, 그 상황에 처해지지 않으면 헤아릴 수 없는 세계. 그 세계를 들여다보는 노력을 어느 누구라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찍이 고령화 사회가 된 일본에는 고령사회에 대처하는 서비스업이 성행하고 있다고 한다. 독거노인에게 집을 빌려주는 임대업자를 대상으로 하는 ‘고독사 보험’, ‘빈집 관리 전문 서비스’, 택배업체가 고령자에게 전화로 물건 주문을 받고 배달해주는 서비스, 사후에 반려동물을 책임지는 ‘펫신탁’ 같은 것들이 그 예다. 팩트는 이것이다. 늙어도 일상은 계속된다는 것. 늙으면 늙는 게 아니고, 늙으면 죽는 게 아니고.

얼마전 작년에 내 글쓰기수업을 들었던 선생님께 연락이 왔다. 정년퇴직 후 횡성에서 ‘글쓰기’로 제2의 인생을 사시는 선생님은 객원기자로 활동하는 가하면 글쓰기 관련 공모전에서 수상기도 하셨다. ‘글’이라는 매개체는 선생님에게 새로운 생명을 불어 넣어준 것이다. 일상에서 ‘글감’을 찾는 여행을 떠날 테니 말이다. 그러면 눈빛부터가 달라진다. 새로운 삶. 새로운 일상은 어쩌면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닐 지도 모른다.

패션잡지 보그 코리아는 9월호 커버를 ‘희망’으로 꾸미면서 순창‧구례‧곡성‧담양에 사시는 100세 전후 할머니들을 사진에 담았다. 사진작가 왈, 희망은 할머니의 얼굴이었단다. “할머니 얼굴이 제일 예쁘니까요. 젊은 것들이 할머니 얼굴을 보면요, 마음이 좋아져요.” 보톡스와 필러로 주름을 없앤 연예인 사진보다도 아름답다고 사람들은 극찬했다.

바로 이런 것이 희망이다. 온기를 나눠주는 것. 코로나 시대에 필요한 덕목이 아닐까. ‘사회적 거리두기’와 별개로 ‘마음은 붙어있기’는 이런 것이 아닐까.

이소영 기자  mail@newstow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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