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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명의(名醫), 『동의보감』을 저술한 허준 선생의 묘경기도의 역사와 문화를 찾아서
김희태 기자 | 승인 2021.01.07 08:11

오늘날에도 한의학에 있어 바이블로 평가되는 책이라면 단연 『동의보감』이다. 동의보감은 구암 허준 선생이 저술한 서적으로, 조선을 비롯해 중국과 일본 등에서도 사랑을 받은 지금으로 치면 베스트셀러였다. 이러한 동의보감을 쓴 허준은 당대의 명의로 이름이 높았던 인물로, 허준을 주제로 다룬 소설과 사극 등이 큰 인기를 얻기도 했다.

파주 허준 선생 묘(경기도 기념물 제128호)

지난 2000년에 방영된 사극 『허준』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이러한 허준 선생의 묘가 경기도 파주시 진동면 하포리에 있는데, 민통선 내에 자리하고 있다. 최근 민통선 내 대표적인 관광지로, 주변 정비도 이루어지고 있다. 다만 위치상 접근성의 제약이 있는데다 허준 선생의 묘가 발견된 것 역시 비교적 근래의 일이라는 점에서 명성에 비해 묘의 존재는 생각처럼 잘 알려진 편은 아니다.

■ 사극과는 다른 허준 선생의 생애, 허준 선생의 역작인 『동의보감』

아마 대부분 허준 선생을 떠올리면 소설이나 사극에서 만난 허준 선생의 생애를 떠올리기 쉬울 것이다. 가령 사극 『허준』에서는 허준의 스승으로 유의태가 나오는데, 정작 유의태는 실존인물이 아니다. 이름이 비슷한 유이태라는 인물이 있기는 하지만 허준 보다 이후의 사람이다. 따라서 사극 속에서 허준이 유의태에게 의술을 배운 것이나 훗날 허준이 스승의 배를 갈랐던 장면은 창작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 허준이 누구에게 의술을 배운 것인지는 기록이 없어 알기가 어렵다. 다만 『선조실록』에는 1575년(선조 8년)에 허준이 선조를 진료한 것을 시작으로, 허준에 대한 기록이 확인된다.

허준 선생 묘로 가는 길
허준 선생 묘에 세워진 재실
전면에서 바라본 허준 선생 묘

허준은 1591년(선조 24년)에 왕자의 병을 고친 것을 계기로 당상관으로 가자(加資: 정3품 이상, 당상관으로 품계를 올릴 때 쓰는 용어)되었고, 임진왜란으로 선조가 파천할 당시 선조를 따라 처음부터 끝까지 떠나지 않았다. 이에 1604년(선조 37년) 호성공신 3등으로 책록되었고, 1606년에는 양평군(陽平君)에 봉해졌다. 이와 함께 정1품의 품계를 주려고 하자 대신들이 반발하기도 했다. 이는 의관으로서 허준의 승진이 매우 이례적이었기 때문이다. 이후 선조가 승하하면서 유배를 가게 된다. 허준은 유배 과정에서도 『동의보감』의 편찬에 매진했고, 그 결과 1610년(광해 2년)에 완성된 『동의보감』을 광해군에게 올리게 된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양평군(陽平君) 허준(許浚)은 일찍이 선조(先朝) 때 의방(醫方)을 찬집(撰集)하라는 명을 특별히 받들고 몇 년 동안 자료를 수집하였는데, 심지어는 유배되어 옮겨 다니고 유리(流離)하는 가운데서도 그 일을 쉬지 않고 하여 이제 비로소 책으로 엮어 올렸다. 이어 생각건대, 선왕께서 찬집하라고 명하신 책이 과인이 계승한 뒤에 완성을 보게 되었으니, 내가 비감한 마음을 금치 못하겠다. 허준에게 숙마(熟馬) 1 필을 직접 주어 그 공에 보답하고, 이 방서(方書)를 내의원으로 하여금 국(局)을 설치해 속히 인출(印出)케 한 다음 중외에 널리 배포토록 하라.”

- 『광해군일기』 광해(1610년) 2년 8월 6일 기사 중

『동의보감』은 총 25권으로, 가장 먼저 목차(2권)를 시작으로 내경편(4권, 내과), 외경편(4권, 외과), 잡병편(11권, 내・외과 이외의 과), 탕액편(3권, 약물처방), 침구편(1권, 침・뜸)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동의보감』은 목차에서 병의 증상을 찾아 해당 처방 편을 찾으면 되는데, 일종의 처방과 관련한 백과사전인 동시에 실용적인 측면에서 동 시기의 다른 의서와는 비교가 되었다. 때문에 당대 중국이나 일본에서도 『동의보감』의 인기는 대단했고, 지금도 한의학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의서로서 명성을 쌓을 수 있었다. 현재 『동의보감』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인 동시에 국보 319호로 지정되어 있다.

■ 실전되었던 허준 선생의 묘, 비석을 통해 존재가 확인되다.

이처럼 『동의보감』을 편찬했던 조선의 명의(名醫)였던 허준 선생의 묘는 그간 실전된 채 행방을 알 수가 없었다. 허준 선생의 묘가 발견이 된 건 지난 1991년 9월에 민통선 내 파주시 진동면 하포리에서 허준 선생의 묘가 확인되었다. KBS 뉴스의 영상자료에도 남아 있는 허준 선생 묘의 발견은 이곳에서 확인된 묘비가 결정적이었다. 당시 허준 선생의 묘는 문인석이 엎어진 채 쓰러진 상태였고, 봉분은 이미 도굴된 상태였다. 이러한 허준 선생 묘의 조사 과정에서 묘비가 확인되었던 것이다. 묘비의 앞은 반 이상은 훼손이 된 상태로, 그 아래에 있는 ‘양평□/□성공신/ □준(陽平□/□聖功臣/□浚)’의 명문을 통해 허준 선생의 묘가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허준 선생 묘의 묘비
묘비에 새겨진 양평□(陽平□)
허준 선생 묘의 문인석
배면에서 바라본 허준 선생 묘

양평□(陽平□)은 허준 선생의 군호로, □성공신(□聖功臣)은 1604년에 책록된 호성공신으로 추정된다. 마지막으로 □준(□浚)은 허준 선생의 이름으로 추정되는데, 이 6자의 명문이 맞아 떨어지는 인물은 허준 선생 밖에 없다. 이처럼 허준 선생의 묘로 고증이 되면서 현재 파주 허준 선생 묘는 경기도 기념물 제128호로 지정되었다. 현재 허준 선생의 묘는 쌍분으로, 가운데 묘비와 상석, 향로석이 배치되어 있고, 좌우로 문인석이 1쌍 자리하고 있다. 허준 선생 묘 위쪽에도 묘가 1기 있는데, 허준 선생의 어머니 묘로 보기도 한다. 한편 묘역 내에 재실을 설치하고, 묘비와 문인석, 봉분 등의 정비되었다. 또한 이정표와 안내문, 주차공간과 화장실 등의 편의시설이 설치된 상태다. 허준 선생의 묘는 나름 민통선 내 역사유적지 가운데 관광자원의 가능성이 높은 곳으로, 향후 민통선 내 관광을 계획하신다면 허준 선생의 묘를 한번 주목해보실 것을 권해드린다. 

김희태 기자  mail@newstow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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