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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남부 편 - 남이 장군의 묘는 왜 두 곳일까?경기도의 역사와 문화를 찾아서
김희태 기자 | 승인 2021.01.07 08:30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문화재 가운데 무덤이 있다. 무덤은 신분과 규모, 형태 등에 따라 능(陵), 원(圓), 묘(墓), 총(塚), 분(墳) 등으로 불린다. 특히 무덤의 경우 필연적으로 장례 의식이 수반되는데, 이는 인간의 진화 과정에서도 매우 중요하게 인식된다. 즉 죽음과 사후세계라는 것을 인지했다는 이야기가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무덤 가운데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고인돌이 있다. 일반적으로 고인돌이라고 하면 청동기 시대의 대표적인 지표 유물이자 무덤으로 보는데, 고인돌의 형태와 규모에 따라 북방식인지 남방식인지 구분한다. 또한 고인돌의 규모가 크면 클수록 피장자가 가진 권력이 컸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즉 이 때의 무덤은 자신의 권력을 보여주는 상징성이라고 할 수 있다.

강화 부근리 지석묘. 남한에서 가장 큰 규모의 북방식 고인돌이다.
마립간 시기의 대표적인 고분인 경주 황남대총
경주 傳 진흥왕릉. 무덤의 규모 변화를 주목해보자!

반면 마립간 시기의 신라에서는 덩치 큰 적석목곽분(돌무지덧널무덤)들이 경주 시내에 집중적으로 조성되었다. 그리고 이들 무덤에서는 공통적으로 금관으로 대표되는 황금 유물이 출토되었다. 반면 마립간 시기를 지나 법흥왕 때에 이르면 신라의 무덤은 적석목곽분에서 석실분으로 변화하고, 위치 역시 경주 시내가 아닌 산으로 올라가는 경향을 보인다. 이때 무덤의 규모가 축소되고, 부장품 역시 이전의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다. 기존의 경우 무덤의 크기를 통해 자신의 권력과 기반을 과시한 것으로 본다면 법흥왕 이후 권력은 단순히 무덤의 규모나 부장품이 아닌 현실적인 권위, 즉 율령과 불교로 대표되는 법과 종교를 통해 공인이 되었다. 바로 이러한 차이점으로 인해 무덤의 조성 방식이 큰 차이를 보이는 것이다.

■ 묘가 들려주는 이야기, 그 곳의 묘는 왜 두 곳일까?

이러한 무덤과 관련된 유적 가운데 무덤이 하나가 아닌 둘인 경우가 있다. 보통 묘는 한 곳이거나 혹은 아예 실전이 되는 것이 일반적이기에 무덤이 둘 이상인 사례는 분명 그 만한 사연을 담고 있다는 것이 된다. 그 대표적인 사례 중 한 곳이 남이 장군의 묘다. 보통 남이 장군 묘를 떠올리면 가평/춘천 남이섬을 생각하기 쉽다. 실제로 남이섬의 지명은 그곳에 있는 남이 장군의 묘로 인해 붙여진 지명이다. 하지만 남이 장군의 묘는 남이섬 이외에도 경기도 화성시 비봉면 남전리 산 145번지에도 있는데, 남이 장군의 묘는 어째서 두 곳일까?

화성 남이 장군 묘(경기도 기념물 제13호)
남이섬에 있는 傳 남이 장군 묘

남이 장군(1441~1468)은 조선 세조 때 활약했던 무신으로, 아버지는 남빈, 어머니는 남양 홍씨다. 할아버지인 의산군 남휘는 태종의 딸인 정선공주와 혼인했는데, 이 때문에 남이 장군은 태종의 외증손이 된다. 남이 장군은 세조 때 18살의 나이로 무과에 급제했고, 이후 이시애의 난과 여진족을 토벌하며 명성을 떨쳤다. 이때의 공으로 적개공신에 책록되고, 의산군에 봉해졌다. 이와 함께 26살에 최연소 병조판서를 역임하기도 했지만 예종이 즉위한 뒤 남이 장군은 유자광의 고변을 통해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된다. 권력 교체에 따른 숙청으로, 이때 남이가 받은 형벌은 거열형(車裂刑)이었다. 거열형이란 죄인의 목과 팔, 다리에 줄을 걸고, 말이나 소 등을 움직여 사지를 찢어 죽이는 형벌이다.

논산 성삼문의 묘. 성삼문의 한쪽 다리를 묻은 것이라 전한다.

보통은 거열형보다 능지처참으로 인식하고 있는 이 형벌은 반역죄나 그에 준하는 죄인을 대상으로 시행한 형벌이었다.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거열형을 집행한 대표적인 사례를 찾을 수 있는데, 바로 사육신과 남이 장군이었다. 사육신의 경우 전원에 대한 거열형이 집행되었는데, 박팽년과 유성원의 경우 형벌의 집행 전에 옥사・자살을 했음으로, 그 시신에 대해서도 거열형이 집행되었다. 이는 남이 장군도 예외가 아니었다. 보통의 경우 거열형이 집행되면 시신의 온전한 수습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이를 잘 보여주는 사례가 사육신 중 한 명인 성삼문의 묘다. 성상문의 묘는 현재 노량진과 논산 두 곳에 있는데, 논산 성삼문 묘의 경우 한쪽 다리를 묻은 것이라고 한다.

화성 남이 장군 묘의 문인석
화성 남이 장군 묘의 산신석

반면 남이 장군의 묘가 두 곳인 이유는 한 곳이 가묘인 까닭이다. 즉 전승의 관점에서 남이 장군의 묘로 전해져왔다는 것으로, 민병도가 남이섬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현재의 모습으로 묘역을 정비한 것이다. 따라서 남이섬의 남이 장군 묘는 가묘의 성격으로 이해하는 것이 맞다. 무덤이 두 곳인 이유 역시 거열형이라는 외부적 요인과 해당 인물의 생애・시대상 등을 전반적으로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 한편 남이 장군의 경우 백성들이 그의 억울한 죽음을 동정하게 되고, 장군신으로 모셔졌다. 또한 남이 장군과 관련한 흔적이 지금도 제법 남아 있는데, 가령 서울시 용산구 용문동에 있는 남이 장군의 사당에서는 지금도 남이 장군 사당제가 열리고 있다. 이와 함께 경상북도 영양군에는 남이 장군과 관련한 남이포(南怡浦)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영양군 남이포(南怡浦). 남이 장군과 관련한 설화가 전해진다.

이처럼 무덤이라고 해서 단순히 한 인물이 묻힌 곳만은 아니다. 무덤의 규모나 석물 혹은 무덤이 두 곳인 이유 등 여러 요인들이 무덤에 남기 마련이고, 이를 통해 당시의 시대상과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역사의 다른 면을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무덤을 바라볼 때는 무덤에 담긴 숨은 복선과 의미, 시대상 등을 함께 고려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김희태 기자  mail@newstow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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