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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남부 편 - 동탄에 자리한 반남 박씨 묘역과 박원도 묘경기도의 역사와 문화를 찾아서
김희태 기자 | 승인 2021.04.06 02:21

화성시의 동부에 해당하는 동탄에는 여러 유적들이 있는데, 이 가운데 반남 박씨와 관련한 여러 묘역들이 남아 있다. 반남 박씨 묘역은 경기도 화성시 석우동 45-3번지에 있는데, 문화재의 재분류로 인해 현재 화성시 기념물 제3호로 지정되어 있다. 여기서 반남 박씨(潘南 朴氏)는 전라남도 나주시 반남면이 본관으로, 시조는 고려 때의 인물인 박응주(朴應珠)다.

반남 박씨 묘역의 전경

반남 박씨는 조선 시대의 대표적인 명문 가문으로 대표적인 인물은 문묘에 배향된 박세채(朴世采, 1631~1695)를 비롯해 <열하일기>로 유명한 박지원(朴趾源, 1737~1805)과 구한말의 인물인 박규수(朴珪壽, 1807~1877) 등이 있고, 인종의 왕비인 인성왕후 박씨와 선조의 왕비였던 의인왕후 박씨, 순조의 어머니인 수빈 박씨 역시 반남 박씨였을 만큼 조선시대에 번창했던 가문이었다.

박주, 박려, 박대하의 묘
박대하의 묘갈

이 가운데 화성시에 소재한 반남 박씨 묘역은 창신교위공파로, 시조로부터 11세인 창신교위공 박주(朴澍, 1530~1592)-승지공 박려(朴黎, 1549~1587)-감정공 박대하(朴大夏, 1577~1623)-승지공 박욱(朴稶, 1598~1676)-첨추공 박원경(朴元慶, 1622~1705)으로 가계가 이어진다. 지금도 이들 묘역이 잘 남아 있는데, 이 가운데 박주는 선조 때 창신교위(彰信校尉)를 지냈으며, 박려는 승정원 좌승지로 증직(贈職)되었다. 박려의 아들인 박대하는 선조와 광해군 대에 활약했던 문신으로, 군자감정(軍資監正)과 춘추관 편수관을 겸직하는 등 여러 관직을 지냈다.

박욱, 박원경과 후손들의 묘
박욱의 묘표. 비문은 박세채가 찬했고, 윤덕준(尹德駿)이 썼다.

박욱은 생원 진사로 이후 통정대부 승정원 겸 경연참찬관 좌승지로 증직되었다. 박원경은 통정대부 첨지중추부사로, 과의교위(果毅校尉)를 지냈다. 한편 묘역의 배치는 사당을 기준으로, 좌, 우로 구분되는데, 좌측에는 박주와 박려, 박대하의 묘가 차례대로 있고, 우측에는 상단부터 박욱과 박원경 및 후손들의 묘가 배치되어 있다. 특히 해당 묘역의 경우 옛 석물인 상석과 향로석, 동자석, 묘표 등의 석물이 비교적 온전하게 남아 있다.

현재 반남 박씨 묘역의 주변은 동탄 신도시의 개발과 함께 많은 변화가 이루어졌다. 이에 따라 반남 박씨 묘역은 도심 속의 공원처럼 변모한 상태로, 해당 묘역을 통해 당시의 시대상을 읽어볼 수 있다는 측면에서 주목해볼 역사의 현장이다.

■ 동탄에 있는 또 하나의 반남 박씨 묘역, 죽창공 박원도의 묘

석우동에 있는 반남 박씨 묘역과 함께 동탄에는 주목해볼 반남 박씨 묘가 하나 더 있다. 바로 죽창공 박원도(朴元度, 1626~1690)의 묘다. 해당 묘역의 위치는 경기도 화성시 오산동 산88-93번지로, 왕배산 자락에 위치하고 있다. 박원도는 박욱의 아들로, 숙종 시기에 활약했던 문신이다. 특히 박원도의 생애는 숙종 시기의 환국 정치의 시대상을 잘 보여준다. 여기서 환국(換局)이란 일종의 정권 교체로, 서인과 남인이 번갈아가면서 집권했던 시기를 말한다. 그리고 이러한 환국 정치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인물이 바로 희빈 장씨와 인현왕후 민씨인 것이다.

박원도 묘의 전경
박원도의 묘표

박원도는 1663년(현종 4) 문과에 급제한 이후 사섬시 직장을 시작으로, 의금부도사, 공조좌랑 등 여러 관직을 역임했다. 특히 박원도는 1675년(숙종 1) 제2차 예송논쟁의 여파로 남인의 탄핵을 받은 우암 송시열을 변호하다가 좌천되는데, 이때 정국은 서인에서 남인 세력으로 대거 교체되었다. 또한 붕당의 시각에서 보면 박원도는 서인에 속했던 인물로, 이후 숙종 시기에 있었던 환국 정치에 따라 박원도의 행적은 엇갈린다. 우선 1680년(숙종 6) 경신환국으로 서인이 집권하자 박원도는 다시 관직에 나섰지만 1689년(숙종 15) 희빈 장씨 소생의 왕자 윤의 세자 책봉을 두고 이에 반대했던 서인은 기사환국으로 실각하고 남인이 집권하자 박원도는 스스로 벼슬을 버리고 낙향했다.

측면에서 바라본 모습. 뒤쪽은 박원도의 묘, 앞쪽은 아들인 박휘등의 묘다.

이러한 박원도의 묘가 동탄에 자리하고 있는데, 박원도의 묘역은 가운데 봉분이 있고, 상석과 향로석, 좌우로 망주석과 문인석 각 1쌍과 묘표와 묘갈 등의 석물이 배치되어 있다. 또한 박원도의 묘 앞쪽으로 묘가 하나 더 있는데, 해당 묘는 박원도의 아들인 박휘등의 묘다. 어떻게 보면 박원도의 묘를 통해 숙종 시대의 환국 정치와 붕당 정치를 한번 생각해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나름 주목해볼 역사의 현장으로, 석우동에 있는 반남 박씨 묘역과 함께 관심 있게 바라볼 화성시의 문화재다.

김희태 기자  mail@newstow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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