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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가 남긴 흔적, 남양주 광전리 태실과 포천 주원리 태실경기도의 역사와 문화를 찾아서
김희태 기자 | 승인 2021.04.06 02:39

보통 문화재에 대한 답사 및 조사를 진행하게 되면 해당 문화재에 대한 사전 조사를 진행하고, 이를 통해 문화재와의 상관관계를 풀어본 뒤 현장을 방문한다. 가령 파주의 허준 선생 묘를 답사한다고 했을 때 기존에 언급된 허준 선생 관련 기록을 한번 체크한 뒤 현장과의 연결성을 찾는 방식을 취하는 것이다.

남양주 광전리 태실이 있는 태봉의 원경

반면 잘 알려지지 않은 문화재의 경우는 상황이 다른데, 사전에 얻을 수 있는 정보가 한정되어 있고, 실체 역시 불분명한 경우 어쩔 수 없이 현장의 관점으로 접근할 수밖에 없다. 이 경우 지역주민의 인터뷰 같은 것이 많은 도움이 된다. 대개의 경우 알려진 문화재는 조사에 큰 어려움이 없는 편이나 문제는 잘 알려지지 않은 문화재를 찾을 때다. 이 경우 예측이 되지 않기에 돌발 상황 같은 것이 생기기도 하는데, 가령 태실 조사 같은 경우가 대표적이다.

■ 그 자리에 있었지만, 이제야 그 가치를 찾은 남양주 광전리 태실과 포천 주원리 태실

최근 경기도에 있는 태실 가운데 두 곳에 대한 답사를 진행했는데, 바로 남양주 광전리 태실과 포천 주원리 태실이다. 이 가운데 남양주 광전리 태실의 경우 본지에서 소개한 바 있는 ▶안성 배태리 태실 ▶파주 정자리 태실 등과 함께 홍치 6년에 입비한 태실로 주목했던 곳이다. 해당 태실은 그동안 위치를 특정하지 못해 찾지 못했던 장소로, 포천 주원리 태실과 함께 작년 경기문화재연구원에서 진행했던 태실 조사를 통해 그 위치가 고증이 된 경우다. 분명 그 자리에 있었지만, 모르고 지나쳤던 그곳에 태실 유적이 있는 것이다.

남양주 광전리 태실지. 태봉의 정상에는 파헤쳐진 구덩이가 있다.
태함. 구덩이 안쪽으로 태함의 함신과 개석이 노출되어 있다.
태함의 개석

남양주 광전리 태실의 경우 『조선의 태실(1999)』에서 언급이 된 바 있는데, 당시 사진을 보면 태함의 함신과 개석이 노출되어 있었다. 특히 주목되는 부분은 1942년 조선총독부에서 발행한 『조선보물고적조사자료(朝鮮寶物古蹟調査資料)』에 태실비의 명문이 기록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를 통해 홍치 6년인 1493년(성종 24) 초4일에 입비한 성종의 왕자 태실인 것이 확인되었고, 그렇기에 ▶안성 배태리 태실 ▶파주 정자리 태실과의 연관성이 더욱 주목되는 것이다.

없는 길을 만들어 태봉으로 향해야 했던 이날의 답사

이러한 남양주 광전리 태실을 찾아가는 길은 마치 미지의 장소를 찾는 것과 다르지 않다. 해당 장소가 표기된 지도를 보면서, 또 마을 주민에게 길을 물어가면서 태봉을 찾고, 별도로 올라가는 길이 없기에 산을 가로질러 없는 길을 찾아 올라가야 했다. 우여곡절 끝에 태봉의 정상에 도착하게 한 뒤 태실지의 흔적과 지상에 노출된 태함을 확인한 후에야 이곳이 태실이라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었다.

포천 주원리 태실이 있는 태봉의 원경
정상부에 남아 있는 태함의 함신

이는 포천 주원리 태실도 마찬가지였다. 처음 찾아가는 길인데다 지도로 볼 때와는 꽤 달라 보이는 지형에 처음에는 적지 않게 당황했다. 이후 태봉으로 추정되는 장소로 올라가면서, 정상에 못 미쳐 지상에 노출된 태함의 함신을 보면서 이곳이 태실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특히 함신에는 배수와 습기 제거를 위한 구멍이 있어 태실 관련 석물인 것을 한눈에 알 수 있는데, 함신의 옆면은 훼손이 된 상태다. 다만 군 참호가 들어서면서 태실지의 정확한 위치는 알 수가 없으며, 태실비와 태지석 등은 확인되지 않아 태주가 누구인지는 알기가 어렵다.

태함의 함신
배수와 습기 제거를 위한 구멍. 태함에서 보이는 특징이다.
태봉의 정상. 지금은 정상 주변으로 군 참호가 들어서 있다.

한편 두 태실에 대한 답사를 마친 뒤 내려오는 길에 곰곰이 생각해 보니 우리가 찾기 이전부터 이미 태실은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심지어 ‘태봉’이라는 지명의 유래를 남기면서 말이다.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지만, 정작 태실 유적이 있는지도 모르고 무심히 지나쳤다. 어떻게 보면 이제야 그 가치를 찾는 과정에 있는지도 모를 일로, 알려지지 않은 장소를 찾는다는 건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이렇게 잊힌 역사의 현장을 알릴 수 있다는 것도 나름 의미 있는 일일 것이다.

김희태 기자  mail@newstow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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