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에서 올레길을 걸었다. 일주일 정도 계획하고 제주 여행을 하게 되었는데, 여행 첫날 ‘올레패스’부터 구입했다. 뭐든 시작은 야심차야 좋다는 생각 때문이다. 올레패스 구입은 올레공식판매소나 제주공항, 올레코스별로 운영되는 작은 안내소에서도 살 수 있다. 패스포트는 20,000원. 굳이 올레패스까지 사서 스탬프 도장을 찍으면서 인증하듯이 걸어야 할까 싶지만 막상 걸어 보니 그렇지 않았다. 아이처럼 도장을 찍을 때의 성취감이 생긴다. 도장 하나 꾹 찍고 나면 또다시 걸을 힘까지 생기니 말이다.

어떤 이들은 관광지나 핫플레이스 위주로 찍고 보는 여행을 좋아할지 모른다. 사진으로 찰칵 남기면 꽤 근사한 곳만 다녀도 충분하니까. 하지만 제주도 올레길은 구석구석 작은 것까지 살펴보는 여행이다. 하염없이 걷다가 가슴이 뻥 뚫리는 풍광을 만날 수도 있다. 예상치 못한 근사한 곳도 찾게 된다. 길을 잃은 것 같다가도 올레길 리본을 만났을 때의 안도감과 기쁨도 느낀다. 오감을 충분히 느끼게 한다.

코로나로 인해 해외여행을 갈 수 없는 시국인지라 제주도로 관광객이 몰린다는 뉴스를 듣고 슬쩍 겁이 났다. 제주도 역시 코로나로부터 안전한 곳은 아니겠구나. 하지만 웬걸. 올레길에서는 사람을 만나보기 힘들 정도로 조용하고 한적했다. 올레 10코스를 걷는 동안은 비까지 내려서 마주치는 사람 한 명 없었다. 무서울 정도로 고요한 산길, 밭길, 바닷길을 걸었다. 올레14코스에서는 끝없이 펼쳐진 마늘밭을 걸으면서 향긋한 마늘향을 맡을 수 있었다. 역시나 사람들이 없었다. 공항에서 가까운 올레 17코스도 마을 안쪽 길을 찾는 사람들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올레길이 안전하지 않다는 몇 건의 뉴스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걸어보면 크게 위험한 곳은 별로 없다고 느껴진다. 오히려 제주의 진짜 옛길을 고스란히 보고, 걷고, 느낄 수 있는 길임을 알게 된다.

사단법인 제주올레에서 만든 ‘올레패스’는 걸어본 사람만이 느낄 정도로 자발적인 동기부여 효과가 있다. 시작점에서 도장 한 번 꾹 찍고, 중간지점에서 스탬프를 찍은 다음, 코스의 최종 목적지에서 도장을 찍는다. 올레길 인증으로 대단한 상을 주는 것도 아니지만 자기 자신과의 약속을 이뤄낸 보상 같다.

이번 여행에서 올레14코스에 있었던 안내소에서 만난 봉사자는 총 14번을 걸었다고 한다. 26개 코스 425km를 14번 걸었다고 하면 총 5950km를 걸은 셈이다. 올레길을 걷다가 부부가 아예 제주도로 이사를 왔을 정도니 얼마나 애정이 깊은지 알 수 있다. 올레길 14번을 걸은 흔적은 올레패스 14개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안내소를 찾는 사람들에게 자신이 걸은 흔적을 보여주시면서 자신의 인생을 바꾼 올레길 예찬을 끊임없이 했다.

행동심리학자 ‘BJ포그’는 “작은 행동과 축하로 구성된 습관 레시피를 통한 변화는 모든 것을 바꾼다”라고 말한 바 있다. 올레길 걷기라는 평범하고 작은 행동을 촉발시키는 ‘올레패스’는 스스로를 축하하는 촉진제가 된다. 그래서 패스에 도장을 찍는 축하를 통해 다음 행동을 이어나갈 수 있는 에너지가 된다. 걷기라는 행동은 변화의 동심원이 되어 삶의 다른 영역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올레길을 더 걷고 싶게 만드는 ‘올레패스’의 힘은 생각보다 대단하다. ‘티끌모아 태산’, ‘천리길도 한 걸음부터’라는 속담이 진리임을 알게 하는 올레길 걷기. 어쩌면 올레패스포트를 구입하는 것부터 걷는 인간으로 한 걸음 나아가는 시작이 될 것이다. 

김소라 기자  mail@newstower.co.kr

<저작권자 © 뉴스타워,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