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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년 <관광의 고도, 수원> 지도 속 수원은 어떤 모습일까?경기도의 역사와 문화를 찾아서
김희태 기자 | 승인 2021.05.24 00:39

경기도의 대표적인 수부도시(首府都市)인 수원은 1793년(정조 17)에 수원유수부(水原留守府)로 승격되었으며, 1796년(정조 20) 수원 화성이 축성되면서 현재까지 수원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문화재로 남아 있다. 이러한 수원의 모습 가운데 일제강점기인 1936년 수원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지도가 있어 눈길을 끄는데, 바로 1936년에 제작된 <관광의 고도, 수원> 지도다. 해당 지도는 수원의 관광 안내 지도로, 채색이 된 지도 위에 여러 장소들이 그려져 있다. 가령 수원 구 부국원처럼 지금도 남아 있는 장소가 있는가 하면 화성행궁이 사라진 뒤의 모습도 자세히 그려져 있어 당시의 수원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 일제강점기 때의 수원, 훼손과 변화의 모습을 볼 수 있는 1936년 <관광의 고도, 수원> 지도

해당 지도를 보면 당시 훼손된 수원 화성과 화성행궁의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성벽의 경우 팔달문(八達文)에서 남수문 방향으로 성벽이 훼손된 것을 볼 수 있는데, 남암문(南暗門)과 남공심돈(南空心墩)이 있던 자리다. 이 구간은 현재 팔달문의 미복원 구간으로, 팔달문 시장이 들어서 있다. 해당 구간의 경우 향후 성곽 복원 공사가 계획되어 있다. 이와 함께 남수문(南水門)의 경우 지도에서는 표기가 안 되어 있는데, 이는 이전 홍수로 유실되었기 때문이다. 남수문의 경우 지난 2012년 복원이 된 상태다. 반면 팔달문에서 남포루(南砲樓) 방향으로는 지금과 달리 성벽이 잔존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1936년 <관광의 고도, 수원> 지도 속 팔달문. 남수문 방향으로 성벽이 훼손된 모습이다.
수원 화성의 남문인 팔달문
훼손된 화성행궁
화성행궁의 현재 모습

수원 화성의 경우 상대적으로 성벽의 보존 상태는 나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이나 특징적인 장소들의 훼손은 피하지 못했다. 가령 팔달산 아래 화성행궁이 있던 자리는 병원과 경찰서, 학교 등이 들어서며 흔적도 없이 사라진 모습을 보여준다. 가장 심하게 훼손된 구역 중 하나로, 현재 화성행궁은 복원 과정에 있으며, 신풍초등학교 자리에 있었던 객사 건물인 우화관(于華館)과 주차장 쪽의 별주 건물의 복원이 마무리 되면 화성행궁의 복원도 마무리될 예정이다. 이와 함께 해당 지도에는 정조의 어진이 봉안되었던 화령전(華寧殿)의 모습이 온전하게 남아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신작로. 수원향교와 수원신사의 위치
수원향교의 대성전

한편 수원의 근대문화거리인 향교로 일대의 변화 역시 주목해볼만한데, 수원향교는 문묘(文廟)로 표기되어 있으며, 그 위쪽에 수원신사(水原神社)가 자리한 모습이다. 수원신사의 위치는 현 수원문화원과 수원시립중앙도서관 사이다. 특히 수원신사의 위치가 괴상하기 짝이 없는데, 일본의 신을 모신 수원신사가 조선의 정신이라고 할 수 있는 수원향교를 내려다보는 형태다. 당시의 시대가 일제강점기인 것을 감안하면 서글픈 역사의 현장이라고 할 수 있는 셈이다. 때문에 해방 이후 수원신사는 철거가 되었고, 현재 수원향교의 대성전은 최근 보물 제2090호로 지정되었다.

■ 수원의 새로운 길, 신작로와 수원천에 남겨진 흔적

교통의 측면에서 보면 수원역을 중심으로 팔달문까지 이어진 수원의 새로운 길을 볼 수 있는데, 바로 신작로(新作路)다. 한자 뜻 그대로 새로운 길을 의미하는데, 이를 보여주듯 신작로를 중심으로 건물들이 빼곡히 늘어선 모습을 보여준다. 지금은 교동 인쇄거리 혹은 근대문화거리로 불리고 있으며, 지도 속 신작로 길 가운데 눈에 띄는 건물이 하나 있는데 바로 수원 구 부국원이다. 수원 구 부국원(등록문화재 제698호)은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진 건물로, 종자와 종묘를 판매하던 회사였다.

교동 인쇄거리. 근대문화거리로도 불리며, 지도 속 건물 중 수원 구 부국원은 지금도 남아 있다.
수원 구 부국원

해당 건물은 해방 이후로도 여러 용도로 이용이 되었고, 지난 2015년 수원시에서 매입해 지금은 근대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한 곳이다. 이와 함께 팔달문 바깥의 신작로 방향에 있는 마을인 산루리를 주목해야 하는데, 이곳은 수원의 독립운동에 있어 산실로 평가되는 곳이다. 실제 수원의 비밀결사 조직인 구국민단(救國民團)의 단장인 박선태 선생과 독립운동가인 김노적 선생, 수원의 유관순으로 평가되는 이선경과 그의 언니인 이현경 자매 등이 산루리의 출신이다.

수원천. 방화수류정 옆으로 노구치 순사 순직비가 그려져 있고, 수원천을 따라 삼일학교와 삼일여학교가 있다.
수원천에서 바라본 방화수류정
삼일중학교와 아담스 기념관. 삼일학교는 1920년 구국민단의 회합 장소였다.

한편 수원천을 따라 삼일여학교와 삼일학교가 있는데, 삼일여학교는 신여성의 대표 인물인 나혜석과 구국민단에서 활동한 차인재 선생이 졸업한 학교다. 지금도 매향여자정보고등학교의 교정에는 삼일여학교의 교장을 지낸 밀러 교장 기념비가 남아 있다. 이와 함께 삼일학교는 현 삼일중학교가 있던 자리로, 1902년 수원 종로교회(수원교회)에서 시작했다. 특히 삼일학교는 1920년에 구국민단의 회원들이 회합한 장소다. 지금도 삼일중학교의 교정 내에는 아담스 기념관이 남아 있는데, 이름이 아담스 기념관인 이유는 1923년 미국의 아담스 교회로부터 건립 기금을 후원받아 지었기 때문이다. 또한 수원의 대표적인 독립운동가인 필동 임면수 선생이 토지를 기부하고, 교장으로 근무하기도 했던 학교라는 점에서 수원의 독립운동에 있어 중요하게 바라볼 현장이다.

지도 속에 그려진 서호저수지
축만제 표석과 서호저수지. 뒤로 보이는 산은 여기산이다.

마지막으로 방화수류정의 옆에 비석이 하나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해당 비석은 노구치 순사 순직비다. 해당 비석은 1919년에 있었던 사강 지역의 3.1운동을 진압하다가 죽었던 노구치 순사의 순직을 기리는 비로, 우리의 입장에서 꽤나 불쾌한 장소라고 할 수 있다. 그랬기에 해방 이후 비석은 대한민국독립기념비로 바뀌었고, 지금은 팔달산 정상에 옮겨져 있다. 이와 함께 서호저수지의 모습이 그려져 있는데, 지금에 비해 그 규모가 컸음을 볼 수 있다. 또한 수원에서 의왕으로 이어진 길 등 1936년 수원의 모습을 생생하게 볼 수 있다. 이처럼 시간이 지나면서 역사의 현장은 변하거나 사라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1936년 <관광의 고도, 수원> 지도를 통해 당시의 수원이 어떠했는지를 알 수 있어, 지금은 사라진 과거의 모습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이를 통해 옛 수원의 모습을 되새겨볼 수 있다는 점에서 해당 지도의 가치는 결코 작지 않다고 할 것이다.

 

김희태 기자  mail@newstow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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