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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 원각사(圓覺寺)에 선화대사 부도와 부도비가 있는 이유는?경기도의 역사와 문화를 찾아서
김희태 기자 | 승인 2022.04.19 07:29

화성시 동탄에는 원각사(圓覺寺)라는 이름의 사찰이 있는데, 경기도 화성시 신동 148번지에 위치하고 있다. 사찰 입구 쪽에는 우암 송시열 선생 화성 무봉산 유적지가 있고, 주변에 골프장이 있어 초행길일 경우 찾기가 쉽지는 않은 곳이다. 이러한 원각사는 우암 송시열 선생 화성 무봉산 유적지와 서로 관련이 있어 주목된다.

원각사(圓覺寺). 옛 만의사지로, 이곳에 선화대사 부도와 부도비가 있다.
만의사(萬儀寺). 최초 원각사가 있던 곳이 옛 만의사였으나, 이후 현 위치로 옮겨졌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원각사가 최초 만의사(萬儀寺)가 있던 곳임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만의사는 무봉산에 있는 사찰로, <신증동국여지승람> 수원도호부 편 기록에는 만의사를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만의사(萬義寺) 무봉산(舞鳳山)에 있다... 신우(辛禑) 때에 우리 태조(太祖)가 의주(義州)로부터 의거(義擧)를 일으켜 회군할 때에, 중 신조(神照)가 휘하에 있으면서 큰 계책을 정하는 데 참여하였다. 공양왕(恭讓王)이 특별히 공패(功牌)를 주어서, 이 절을 맡게 하고 인하여 노비와 토지를 주어서 법손(法孫)에게 전하게 하였다.”

- <신증동국여지승람> 제9권, 경기, 수원도호부 편 중 불우

이러한 만의사와 관련해 주목해 볼 부분은 크게 두 가지로, 첫 번째는 현 수원박물관에 있는 팔달문 동종의 원래 위치가 만의사였다는 점이다. 두 번째는 현 만의사의 위치가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나온 만의사가 아니라는 점이다. 애초 만의사는 현 원각사 자리에 있었는데, 어떤 이유에 의해 만의사는 현 위치로 옮겨졌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떤 만의사는 어떤 이유 때문에 옮겨지게 된 것일까?

■ 만의사가 옮겨가고 조성된 우암 송시열 선생의 초장지

이를 알기 위해서는 우암 송시열 선생 화성 무봉산 유적지를 살펴봐야 한다.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유학자로 손꼽히는 우암 송시열(1607~1689, 이하 송시열)은 저마다의 시각에 따라 호불호와 평가가 엇갈리는 인물이다. 그럼에도 조선 후기의 정치와 붕당, 사상 등에 있어 영향을 미친 것은 틀림이 없다. 그렇다면 화성 무봉산과 송시열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 현 우암 송시열 선생 화성 무봉산 유적지는 송시열이 한양을 왕래할 때 제자들을 양성하고 강론했던 곳으로, 송시열의 문집에서도 언급되고 있다.

우암 송시열 선생 화성 무봉산 유적지
무봉산장
무봉재사
우암 송시열 선생 강학 유허비

이를 보여주듯 유적지에는 ▶무봉산장 ▶무봉재사 ▶우암 송시열 선생 강학 유허비 ▶우암 송시열 선생 초장지 등이 남아 있으며, 아들 송기태(宋基泰)를 비롯한 후손들의 묘가 자리하고 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1669년(현종 10)에 송시열은 자신의 묘를 만의사가 있는 곳으로 정했다고 한다. 그 결과 만의사는 현 위치로 옮겨갔고, 옛 만의사지는 폐허로 남았다. 이후 만의사가 있던 자리에 원각사가 들어서면서 지금처럼 원각사와 우암 송시열 선생 화성 무봉산 유적지가 자리하게 된 것이다.

■ 옛 만의사지와 선화대사 부도와 부도비

이러한 옛 만의사 터에 세워진 원각사에는 주목해 볼 문화재가 있는데, 바로 선화대사 부도와 부도비다. 찾아가는 길은 원각사 내부를 지나 산길을 따라 올라가다 갈림길에서 우측 방향으로 조금 더 올라가면 멀리 부도와 부도비가 나란히 세워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현재 선화대사 부도와 부도비는 비지정 문화재이나 충분히 문화재로 지정할 수 있을 만큼 불교사적 의의와 보존 상태가 좋은 편이다. 부도비에 언급된 선화대사(禪華大師, 1566~1644)는 광주 출신으로, 성은 이(李) 이름은 경목(敬沐)이다. 서산대사(西山大師)의 제자로, 1644년(인조 22)에 만의사에서 수행 중 입적했다. 즉 선화대사 부도와 부도비의 존재는 과거 이곳이 만의사였음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선화대사 부도와 부도비
선화대사 부도와 부도비의 안내문
선화대사 부도비
선화대사 부도
선화대사 부도비 중, 무봉산 만의사(舞鳳山 萬儀寺)

부도비의 구성은 머리에 해당하는 용과 와운문이 새겨져 있는 이수(螭首)와 몸체에 해당하는 비신(碑身)이 하나로 되어 있으며, 비좌(碑座)는 확인되고 있지 않다. 특히 부도비의 전면에 선화대사의 출신과 행적 등이 기록되어 있어 불교사에 있어 나름 중요하게 바라볼 지점이다. 이와 함께 부도비의 옆에는 선화대사 부도가 자리하고 있는데, 부도(浮屠)란 승려의 사리를 봉안한 탑이다. 선화대사 부도의 형태는 석종형(石鍾型, 종의 형태를 닮은 모습)으로, 지난 2006년 발간된 <문화유적분포지도: 화성시>에는 선화대사 부도 이외에 7기의 부도도 함께 있었다고 한다. 다만 7기의 부도는 1992년에 홍수로 인해 매몰되었다가 2000년에 3기가 재발견되어 현재 원각사 극락전(極樂殿) 앞쪽으로 옮겨졌다.

3기의 부도. 홍수로 사라졌던 것을 2000년에 다시 발견해 현 위치로 옮겼다고 한다.
원각사 안내문. 옛 만의사지와 선화대사 부도와 부도비 등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처럼 원각사에 선화대사 부도와 부도비가 자리한 이유는 과거 이곳이 만의사가 있던 곳이기 때문이다. 이후 송시열의 초장지가 들어서는 과정에서 만의사가 현 위치로 옮겨가면서 폐허로 남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다 옛 만의사 터 위에 원각사가 들어서면서 지금처럼 원각사와 우암 송시열 선생 화성 무봉산 유적지가 서로 인접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역사적 흐름과 맥락을 잘 보여주는 문화재가 바로 선화대사 부도와 부도비라는 점에서 주목해야 할 화성시의 비지정 문화재라고 할 수 있다.

김희태 기자  mail@newstow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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