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두수선이라는 사양길로 접어든 일을 오랫동안 해 온 지체장애인 이재근 씨는 공부를 많이 한 것도 아니고, 학벌이 썩 좋은 것도 아니다. 어떻게 보면 끊임없이 자신의 삶을 개척해나가고자 한 의지력 하나만으로 지금껏 살아왔다. 아침 9시부터 밤 9시까지 약 2평도 안되는 작은 공간에서 하루 종일 일을 한다. 구두수선, 열쇠, 도장을 하고 있는데 간혹 수선할 다양한 물건들을 갖고 사람들이 찾아온다. 한 자리에서 오랫동안 장사를 하고 있기 때문에 단골도 있지만 이제는 구두를 수선해가면서 신는 사람들이 적어지면서 매출은 점점 줄고 있다.

구두수선일을 하기 전에는 산전수전을 다 겪어냈다. 장애를 둔 자식을 부끄러워 한 부모는 자신을 집에 가두고 못 나가게 했으며 열두 살에 학교에 들어갔다. 열여덟 살에 초등학교를 마친 후 서울로 도망치듯 떠나서 형님의 도움으로 전자기술을 배우는 학원에 6개월 다니면서 TV수리 기술을 배웠다. 기술을 배우는 것이 장애인이 살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기술은 배웠지만 취업은 쉽지 않았다. 학원에서 일자리를 알선해 주어도 취업으로 연결되지 않았다. 힘들게 버스를 타고 걸어서 면접을 보러 가면 번번이 퇴짜를 놓았다. 장애에 대한 편견이 심하던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노력 끝에 취업한 곳은 삼육재활원이었다. 그곳에서 전자 제품을 만들고, 수리하는 일을 했다. 첫 월급은 45000원이었고, 퇴직할 무렵 65000원까지 올랐다.

그렇지만 집에 돈 부쳐드리고, 생활하다 보면 하나도 남지 않았다. 돈을 더 벌 수 있는 길을 찾고 싶었는데, 아는 친구가 장사하는 법을 가르쳐주면서 같이 해보자고 했다. 리어카에 물건을 싣고 다니면서 전국 팔도 장을 찾아다니는 것이었다. 장사 수완이 좋았는지 아니면 열심히 일을 한 덕인지 전자회사 한 달 월급에 해당하는 돈을 하루에 벌었을 정도로 벌이가 좋았다.

그 이후 스스로 ‘신아자립회’라는 장애인 자립단체를 만들어 지금의 협동조합 형태로 사업을 함께 한 적도 있다. 그렇지만 쉽게 되지 않았고 어려움을 겪고 빚을 크게 진 적도 있다. 다방을 운영한 적도 있고 다단계 사업에 손을 댄 적도 있다. 그렇게 살다가 아내 김성의 씨를 만나 결혼 후 단란한 가정도 꾸렸다. 별로 아이를 원치 않은 본인과는 달리 아내는 “장애인이지만 남들 하는 거 다 하고 살아야 한다”라면서 아이를 낳길 원했다. 딸과 아들은 지금 모두 장성해서 성인으로서 제 몫을 잘하고 산다.

구두수선을 한 것은 10년이 안 되었다. 손재주가 있으니 뭘 배워도 금방 익혀서 수선집을 한 것이다. 처음에는 매교동에서 하다가 권선동으로 이동했다. 매일 손님들과 만나는 일은 즐거움보다 하루하루 생존을 위한 일이라고 생각하면서 산다. 자기와의 약속, 책임감 때문이다. 같은 자리에서 한결같이 일하는 것. 많이 벌지는 못하지만 이제 돈을 쓸데도 없다. 예전보다는 형편이 많이 나아졌다. 집에서 일터까지 장애인용 전동 스쿠터를 타고 온다. 여행가고 노는 것보다 일하는 것이 마음 편하다. 구두 수선이 전문인데 온갖 물건들을 사람들이 가져오면서 고쳐 달라고 한다. 그럴 때마다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궁리한다.

‘궁하면 통한다’는 말은 인생 전반에 걸쳐 적용되는 것 같다. 내 앞에 놓여진 사건, 고장난 것들을 보면서 고민하고 생각하다 보면 어느 순간 답을 찾게 된다. 앞으로도 그렇게 살 수 있을 것이다. 구둣방 공간이 좁다 보니 효율적으로 공간을 이용하기 위해서 재봉틀을 위 아래로 움직일 수 있도록 만들었다. 몸이 불편해서 이동하기 힘드니 의자를 뒤로 앞으로 옮길 수 있도록 만들었다. 손을 뻗는 모든 곳에 컴퓨터, 프린터기, 생수통, 선반 위 물품 보관함 등을 만들었다.

모든 것은 머릿속에 다 있다. 좁은 세상 속에 산다고 생각마저 좁은 건 아니다. 세상 돌아가는 모든 시스템을 통달하고, 문제해결을 해 나가면서 살아가고 있다. 삶의 철학은 바로 일상에서 모두 통달한 것일 뿐이다. 책 속에 길이 있는 것이 아니라, 살아내는 인생 속에서 길을 만들어가는 것. 이재근 씨가 육십 평생 살아낸 인생이다. 

김소라 기자  mail@newstow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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