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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 육계토성, 한성백제 초기의 비밀을 풀 열쇠가 될 수 있을까?경기도의 역사와 문화를 찾아서
김희태 기자 | 승인 2023.03.13 14:40

임진강이 맞닿아 있는 파주시 적성면 주월리 385-1번지 일원에는 장타원형의 토성이 있는데, 바로 육계토성(六溪土城, 경기도 기념물)이다. 성은 내성과 외성이 있는 구조로, 강을 해자(垓字)로 삼은 형태다. 그 외형이 서울 풍납동토성(風納洞土城)과 닮았는데, 실제 육계토성에서는 ‘呂’자 형태 건물지와 주거지와 초기 백제 시기의 유물이 확인되었다. 또한, 고구려 토기와 철모, 찰갑 등이 확인된 부분 역시 눈길을 끈다. 이는 최초 백제가 이 성을 쌓은 뒤 일정 시간이 지나 고구려가 이곳을 차지하고 사용했음을 보여주는 흔적이다. <광개토대왕릉비>를 보면 고구려가 백제의 58개 성(城)을 점령했는데, 육계토성은 이 가운데 하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렇다면 육계토성은 백제의 역사에 있어 어떤 의미일까?

■ 육계토성은 하북 위례성?

육계토성과 관련한 기록은 <대동지지(大東地志)>와 <여도비지(輿圖備誌)>에서 확인되는데, 육계성(六溪城)이 현의 서쪽 7리에 있으며, 규모가 7,692척(尺) 표로탄고루(瓢蘆灘古壘)와 강을 두고 바라보고 있다고 했다. 여기서 표로탄은 호로탄(瓠蘆灘)을 이야기하는데,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호로탄이 장단도호부의 동쪽 30리에 있으며, 당의 유인궤가 칠중성을 공격하기 위해 건넌 곳임을 알 수 있다. 현재 이곳에는 고구려 성인 호로고루(瓠蘆古壘)가 자리하고 있다.

파주 육계토성. 장타원형의 토성이다.
연천 호로고루. 임진강의 북쪽에 자리한 고구려 성이다.
호로고루에서 바라본 임진강. 여울이 얕아 배를 타지 않고도 건널 수 있는 요충지다.

육계토성이 주목되는 이유는 이곳을 하북위례성(河北慰禮城)으로 보는 연구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삼국사기>를 보면 최초 온조왕 시기 백제의 도읍이 한강 이북에 있었음을 알 수 있는데, 기원전 6년(온조왕 13) 5월에 온조가 한강 이남으로 도읍을 옮긴 것을 알 수 있다. 옮긴 배경은 낙랑과 말갈이 국경을 침범하고, 여러 징조와 함께 어머니(=소서노)마저 죽어 형세가 불안한 것을 이유로 들고 있다. 때문에 온조가 순시해 보니 한강의 남쪽 토지가 비옥해 이곳으로 도읍을 옮기겠다는 청사진을 그리고 있다. 마침내 7월에 한산(漢山) 아래에 목책을 세우고 위례성의 민가를 옮긴데 이어, 8월에는 마한에 사신을 보내 도읍을 옮긴 것을 알렸다고 기록하고 있다.

서울 풍납동토성. 하남위례성으로 유력하게 추정되는 곳이다.
발굴조사가 진행된 육계토성

이렇게 옮겨진 도읍이 하남위례성(河南慰禮城)으로, 지금의 서울 풍납동토성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경우 기존 도읍지인 하북위례성의 경우 도봉구 중랑천 일대 혹은 북한산성 일대로 보는 견해가 있었다. 다만 위의 견해는 낙랑과 말갈의 침입을 피해 도읍을 옮겼다는 기록과는 배치되는 데다, 관련 유적이 확인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떨어진다. 그렇기에 임진강 유역에 자리한 육계토성이 주목되는데, 그 외형이 서울 풍납동토성과 닮아있고, 백제 초기 유적과 유물이 확인된 점 때문이다. 육계토성을 하북위례성으로 볼 경우 낙랑과 말갈의 침입을 피해 도읍을 옮겼다는 기록과도 어느 정도 부합하는데, 지리적으로 임진강과 한강 사이에는 촘촘한 방어선이 형성되었다. 우선 강을 사이에 두고 1차 방어선이 형성되고, 육계토성의 배후에는 감악산과 칠중성(七重城) 등이 자리하고 있다. 2차 방어선까지 통과해야 서울로 진입할 수 있는데, 설령 이곳까지 오더라도 하남위례성은 한강을 해자로 삼은 남쪽에 있기에 방어적인 측면에서 큰 이점을 취할 수 있다.

■ 육계토성 인근에서 확인되는 적석총을 주목하자!

육계토성에서 직선으로 4km가량 떨어진 경기 연천군 백학면 학곡리 20-1번지에는 연천 학곡리 적석총(경기도 기념물)이 자리하고 있다. 이 무덤은 임진강변에 자리하고 있으며, 발굴조사 결과 4기의 묘곽이 확인되었다. 무덤의 외형은 강가에 있는 돌을 활용해 만든 적석총으로, 본래 지금보다는 더 큰 규모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연천 지역에는 학곡리 이외에도 ▶연천 횡산리 적석총 ▶연천 삼곶리 적석총 ▶연천 삼거리 적석총 ▶연천 우정리 적석총 ▶연천 동이리 적석총 등도 확인되고 있으며, 출토된 유물과 시기, 인근 육계토성의 위치를 고려할 때 연천 학곡리 적석총은 백제 초기의 역사와 관련이 있는 장소로 추정된다.

연천 학곡리 적석총

적석총(積石塚)이 중요한 이유는 백제의 건국과 초기 역사를 이해하는 데 있어 중요한 지표 자료이기 때문이다. 적석총은 돌무지무덤으로도 불리는데, 동시기 한반도 남부에서 확인되는 옹관묘(甕棺墓), 목관묘(木棺墓), 목곽묘(木槨墓) 등의 무덤 양식과는 차이를 보인다. 반면, 적석총은 고구려의 무덤 양식으로, 지금도 옛 고구려의 수도인 중국 지안시(吉安市) 일대에는 많은 수의 적석총이 남아 있다. 적석총은 시기에 따라 시기에 따라 그 형태도 달랐는데, 최초 시신 위에 자갈을 쌓아 올리는 형태에서 점차 기단을 만들고 그 위에 돌을 덮는 방식으로 변화했다. 적석총으로 가장 후기에 만들어진 고분이 바로 장군총(將軍塚)이다.

장군총. 후기에 만들어진 적석총의 형태다. (사진 제공 = 홍지선)

이러한 적석총은 백제 지역에서도 확인되는데, 바로 서울 석촌동 고분군(사적)이다. 본래 송파구 석촌동과 가락동 방이동 일원에는 많은 수의 적석총이 있었으나 강남 개발 과정에서 상당수가 사라져 현재 서울 석촌동 고분군만 남아 있다. 이 가운데 주목되는 고분은 3기의 적석총으로, 3호분의 경우 넓이로는 장군총보다 더 넓은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때문에 일부에서는 이 고분은 근초고왕의 능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이처럼 백제에서 적석총이 확인되는 건 백제가 고구려에서 갈라져 나왔기 때문이다.

서울 석촌동 고분군. 3호분의 경우 근초고왕의 능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고구려를 건국한 주몽은 부여를 탈출해 기원전 37년에 졸본 땅에서 고구려를 건국했다. 지금의 중국 환인(桓仁)에 위치한 오녀산성(五女山城)이다. 주몽은 졸본에서 한 여인을 만나게 되는데, 바로 소서노(召西奴)였다. <삼국사기> 시조 온조왕 조 기록을 보면 본래 졸본 땅에 졸본부여(卒本扶餘)라는 나라가 있었는데, 그곳의 왕은 딸만 셋이 있었다. 이때 왕은 주몽에게 둘째 딸을 시집보냈는데, 이후 왕이 죽고 주몽이 왕위를 이은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주몽과 소서노 사이에는 두 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비류와 온조였다.

북한산 백운대에서 바라본 인수봉과 서울. 온조와 비류가 올랐다는 부아악을 북한산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그런데 부여에서 주몽과 첫째 부인인 예씨 부인 소생의 유리(琉璃, 고구려 유리왕)가 고구려로 찾아오면서 상황이 돌변했다. 주몽은 유리를 태자로 책봉했고, 그렇게 비류와 온조는 유리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을 걱정해 어머니 소서노와 함께 고구려를 떠나 남하하게 된다. 이유는 비류와 온조는 주몽의 친아들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삼국사기>는 북부여의 왕 해부루의 서손인 우태(優台)와 소서노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 비류와 온조라고 기록하고 있다. 즉, 주몽은 자신의 핏줄인 유리를 태자로 삼았고, 때문에 온조와 비류는 어머니 소서노와 함께 남하해 새로운 나라 백제를 건국하게 된 것이다. 이 같은 친연성 때문에 고구려와 백제 지역에서 적석총이 확인되고 있고, 같은 무덤 양식을 공유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또한, 백제는 수도 인근에 고분을 조성했는데, ▶서울 풍납동토성=석촌동 고분군(한성백제) ▶공주 공산성=송산리 고분군(웅진백제) ▶부여 사비성=능산리 고분군(사비백제) 등이 대표적이다. 따라서 이러한 도성과 왕릉의 배치를 고려하면 육계토성 인근에서 확인되는 연천 지역의 적석총은 백제의 건국과 초기 역사를 이해하는 데 있어 중요한 자료일 것이다.

김희태 기자  mail@newstow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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