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행 정당공천제 하에서 의원들은 끊임없이 정쟁을 벌였다. 사진은 본 기사와 직접적 관련이 없음. ⓒ조백현 기자

내년 6월 4일 실시되는 지방선거를 앞두고 기초단체장과 기초의원에 대한 정당공천제 폐지여부가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지난 대선에서 새누리당, 민주당, 안철수 측이 모두 정당공천제 폐지를 내 걸은 가운데 민주당은 지난달 25일 진행한 전당원 투표에서 기초선거 정당공천 폐지안을 가결시켰다.

정당공천제 폐지여부는 정치인들의 이해관계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고, 지역 정치와 행정에도 크게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사안이다.

출마여부, 당선가능성, 정당활동, 시민 삶의 질 등 전방위적으로 엄청난 영향을 미칠 정당공천제에 대한 지역 정치인들의 입장은 제각각이다.

본지가 지역의 주요 정치인이나 정치지망생들을 직접 만나 확인해 본 결과, 같은 정당 소속이라도 각자 처해있는 조건이나 이해관계에 따라 생각이 달랐다.

특히 이들에겐 정당에서 공천을 받을 가능성이나 당선가능성에 대한 판단이 정당공천제 폐지여부에 대한 판단의 주요한 근거인 듯 했다.

예컨대 인지도가 높은 현역 정치인들이나 정당공천 가능성이 없는 정치인들은 상대적으로 정당공천제 폐지에 대한 견해가 강했다.

정당공천제에 대한 비판의 근거: 정당의 지나친 간섭으로 인한 지방자치 위협, 공천과정에서의 비리와 비민주성

일반적으로 정당공천제가 폐지되면 여성이나 장애인 등 취약계층에게 불리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여성 시의원들의 경우 오히려 정당공천제 폐지에 대한 찬성입장이 강했다.

최인혜 의원(민주당)은 “정당공천제 폐지에 찬성한다. 3년동안 의정활동을 경험해보니 정당공천제의 폐해를 절감했다. 보육, 교육 등 의정활동을 해 나가는데 있어 소신껏 활동하고 싶은데 시시비비를 따지지 못하고 항상 정당의 입장에 매이게 된다. 최소한 기초의원 지방선거는 정당공천제를 배제하거나 정당공천제의 폐해에 대한 제도적 개선책을 마련하든가 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지혜 의원(새누리당) 역시 “장애여성 강제추행 사건이나 곽 시장 골프물의 때 정당하게 활동을 해도 상대당에서 정치적으로 몰아붙였다. 언젠가는 민주당의 한 의원이 전날 합의한 사안에 대해 다음날 와서 뒤집는 경우도 있었다. 국회의원이 너무 의회활동을 좌지우지한다”며 정당공천제에 대한 부정적 생각을 밝혔다.

김 의원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시 마크 색깔이나 내용이 바뀌는 등 예산낭비가 심하다. 이기하 전 시장 때의 ‘푸른활력 오산’이 곽 시장 때 ‘프레쉬 에너지 오산’으로 바뀌었는데 버스 스티커 광고비만으로 8천만원의 예산이 사용됐다. 최근엔 ‘교육도시 오산’으로 바뀌었다. 임기가 보장된 사회단체의 사람을 쫓아내고 자기 정당 사람으로 심어 넣는다. 또한 소수당 소속이다보니 조례안을 내도 채택이 되지 않더라. 정당 간 경쟁으로 정쟁이 너무 심하고 불필요한 예산, 시간낭비가 많다”고 주장했다.

최 의원과 김 의원은 지난 지방선거에서 여성으로서의 혜택을 받아 민주당 비례대표 1번과 지역구에서 당선가능성이 유력한 가번을 각각 배정받은 바 있다.

그런 두 정치인들이 3년간의 의정활동 결과 정당공천제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표명하는 것은 그동안 정당이 얼마나 의회활동 과정에서 부적절하게 개입했는지를 보여주는 산 증거이다.

지역에서 최웅수 시의회 의장은 정당공천제 폐지에 대해 가장 적극적인 정치인이다.

최 의장은 안민석 의원의 도움으로 시의원이 되었지만 후반기 시의회 의장 선거 이후 안 의원의 견제에 맞서 사사건건 안 의원과 충돌하는 인물이다.

최 의장은 “국회의원이 지나치게 의회활동에 개입한다. 의원들이 시민을 위한 정치를 해야 하는데 다음 선거 공천권을 따내기 위해 국회의원, 정당을 위한 정치만 한다. 의정활동을 국회의원에게 보고하고 허락받아야 한다. 정당에서 공천심사위를 만든다고 하지만 국회의원이 자기 입맛에 맞는 사람만 데려다 놓는다. 지난 선거에서 곽 시장과 이종상 시설관리공단 이사장간 시장후보 경쟁도 말이 많지 않았는가. 정당공천제로 인해 지방자치가 중앙정치에 예속 된다”고 말했다.

최 의장이 대변인을 맡고 있는 경기도시군의회의장협의회는 성명서 발표뿐만 아니라 30여개의 시민단체 등과 함께 정당공천제 폐지 시민행동 출범식 및 결의대회까지 여는 등 정당공천제 폐지에 매우 적극적이다.

정당공천제 폐지에 대한 비판의 근거: 후보자 난립과 무책임한 정치, 토호세력 득세와 사회적 약자의 정치적 진출 난망

그러나 현재의 많은 문제에도 불구하고 정당공천제 유지를 주장하는 정치인들도 적지 않다.

선거는 기본적으로 정당의 참여하에 진행돼야 하며 민주주의는 정당의 책임정치에서 비롯된다는 것이 이들의 입장이다.

손정환(민주당) 시의원은 “정당이 선거에서 공약을 제기하고 집행하고 평가받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당원이기 때문에 당론에 따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난 지방선거 때 무상급식, 혁신교육, 보육 등에 대한 공약을 제시했다. 그동안 교육에 대해 지역민들에게 인식을 심어준 것만 해도 성과라고 생각한다. 전체적인 교육의 질을 높였다고 생각한다”며 정당공천제의 의미에 대해 강조했다.

박동우(민주당) 도의원은 “정당공천제가 문제가 있지만 폐지하는 건 더 큰 문제를 야기한다”면서 “과거 정당공천제가 없던 때가 있었는데 그 폐해가 정당공천제 있었을 때보다 훨씬 심했다. 국민들이 과거의 폐해를 잊어버린 것 같다”고 말했다.

박 도의원은 “정당공천제가 폐지되면 여성이나 사회적 약자는 설 자리가 없어진다. 또한 시장이 혼자 무책임한 행정을 하게 된다. 현역 시장이 아무리 잘못하고 능력이 없어도 인지도와 기득권이 있어 계속 당선된다. 새로운 정치신인은 자신을 알릴 방법도, 평가할 근거도 없다. 공정한 공천 경쟁 및 제도개선만 되면 정당공천제가 맞다고 본다”고 말했다.

문영근 보좌관(민주당) 역시 “정당공천제 폐지는 민주주의의 후퇴다. 시장 후보자가 정당공천을 받지 않고 나오면 검증되지 않은 후보가 난립한다. 정당공천제가 폐지되면 평상시 정당활동에 대한 의미나 검증이 없어진다. 정당공천제의 부작용보다, 폐지했을 때의 폐해가 더 크다”고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대선에서 정당의 기득권을 내려놓고 정치개혁을 이룬다는 명분하에 정당공천제 폐지를 선거 공약으로 내 걸은 바 있다.

새누리당 시장 후보를 꿈꾸는 한 인사는 위로부터의 낙점, 공공연한 비밀인 정치헌금의 문제 등 정당공천제의 폐해를 지적하면서도 정당공천을 받아야 당선에 유리하다는 속내를 드러냈다.

그는 “정당공천제가 있어야 후보자나 정당 입장에서 유리하다. 그럼에도 당론이나 국민여론이 폐지로 모아지면 폐지여부에 대해 연연하지 않는다. 문제점을 보완해서 국회에서 결론을 내려줬으면 좋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는 또한 “일반적으로 정당공천제가 폐지되면 현역 시장이 제일 유리할 것으로 말한다. 그러나 역대 선거 결과를 보면 시장이 교체된 적이 많았다. 시장이 올바로 활동을 하고 지지받았느냐가 중요하다. 선거는 구도가 중요하다. 민주당 성향의 후보가 난립할 수 있다. 정당공천이 폐지된다 해도 이번 선거에는 당성, 당색깔이 주요하게 작용할 것으로 본다. 현재 구도는 새누리당이 민주당보다 유리하다”며 정당공천제 폐지 여부에 상관없이 현역 시장과의 경쟁에 대한 강한 자신감을 표출했다.

새누리당 시장 후보 캠프에 깊이 관여해 왔던 양모 씨는 “정당공천제가 폐지되면 선거는 이슈 싸움이 아니라 돈, 조직 싸움이다. 이전투구의 장이 된다. 토호세력이 득세할 수밖에 없다. 너무 인물이 난립하고 투표자는 누가 누구인지 알지도 못한 채 투표하게 된다”면서 “정당공천시 여과장치(범법자,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는 사람들 배제, 정당 공천 과정에서 면접이나 당활동 등을 통한 검증 등)라도 있지만, 폐지되면 후보자의 자질이 문제가 된다. 현재의 민주당으로서는 선거 승리 가능성이 없으니까 민주당 기간당원들이 정당공천제 폐지를 결정한 것으로 생각한다”며 정당공천제 폐지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를 밝혔다.

그러나 그는 “정당공천제 역시 영, 호남 등의 지역에선 한 당이 싹쓸이 할 수 있다. 또한 시장과 시의회 의원들이 당이 다르면 허구헌날 쌈박질만 한다”며 정당정치의 폐해도 동시에 지적했다.

양 씨는 “생활정치에 당이 무슨 소용있나. 그러나 자치단체장은 책임 있는 정치, 행정하기 위해 정당공천을 해야 한다”며 “광역단체장, 기초단체장은 정당공천제를 하고 광역의원, 기초의원은 정당공천제를 폐지해야 한다”는 대안을 제시했다.

지방자치, 정당정치를 공부한 민주당 당적의 김희웅 박사는 “정당공천을 하지 않다가, 그 폐해가 너무 심각해 2006년 지방 의원에 대한 정당공천이 도입됐다. 정당공천제를 없애는 건 과거로 퇴행하는 것이며 현행 정당공천제의 한계를 개선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며 “시민단체, 제3영역에서 공천심사위에 대한 참여를 대폭 늘려 공천의 투명성, 민주성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정당공천제를 보완해야 한다. 민주주의는 정당정치이다. 정당에서 훈련하고 검증된 사람이 출마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당공천제에 대한 지역 정가의 견해는 이렇듯 정당을 넘나들며 자신들이 처해 있는 조건과 이해관계, 정치적 신념에 따라 다르게 나타났다.

그렇다면 정당공천제 폐지여부에 대해 중요한 영향을 미칠 국민여론이나 국회의원들의 생각은 어떠할까?

지난 2일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 응답자 10명중 6명은 정당공천제 폐지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동안 각 정당들의 정치활동에 대한 국민들의 부정적인 평가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국민들 입장에서는 정당인들이 이권을 독점하고 권력쟁취를 위한 이전투구만 벌이는 모습에 환멸이 날 법도 하다.

그러나 정당공천제 폐지여부는 최종 입법 권한을 가지고 있는 국회의원들의 손에 달려있다. 이들이 자신들의 기득권을 놓게 될 정당공천제 폐지에 동의할 지는 미지수이다. 따라서 정당공천제 폐지여부가 어떠한 결론으로 귀결될지 현재로선 알 수 없다.

지방선거에서 정당공천제 폐지가 정치개혁과 바람직한 현실의 변화를 가져올 지, 아니면 그 반대의 결과를 야기할 지 자신있게 얘기할 사람은 드물다.

다만 현행 정당공천제에서 지역위원장들의 전횡, 공천과정에서의 비리와 비민주성, 정당의 부적절한 행정에의 개입 등으로 인한 지방자치의 위기에 대한 극복방안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점에 대해선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돼 있는 상태이다.

더욱 문제를 야기할 수 있는 정당공천제 폐지를 추진해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국회의원 등 기득권 세력들의 전횡을 막을 뾰족한 방법도 없으면서 정당공천제를 유지해야 하는 것인지, 누구라도 해답을 찾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조백현 기자  jbh@os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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