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성씨(姓氏)도 물려줄 수 있어요
새로운 신분등록제 『가족관계등록(부)』 시행의 의미

“너는 월성 석(昔)씨 66대손이다.” 어릴 때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아버지한테 듣던 말이다. 그때는 정말 내가 그 대단한 왕족의 혈통과 가문의 대를 이어가는 영광스러운 자손인줄 알았다. 그러나 알고 보니 내 뿌리는 반쪽의 역사만 담고 있는 것이었다. 아버지의 아버지, 그리고 그 아버지의 아버지의 역사, 수많은 딸들은 역사에서 홀연히 어디로 사라져 버린 것일까?

1958년 민법 제정 이래 50년이라는 긴긴 세월동안 여성들은 민주적이고 평등한 가족제도를 위해 호주제 페지를 주장했었다. 수많은 논쟁과 협의 끝에 드디어 2005년 3월 31일 호주제를 전제로 한 호주승계제도, 입적·복적·일가창립 및 분가 제도 등이 모두 폐지되었다. 그리고 2년의 유예기간을 지나 2008년 1월 1일 새로운 민법과 신분등록제인 가족관계등록볍이 시행 되고 있다.

가족의 범위가 넓어졌다.
개정 전 민법은 그 가(家)에 입적한 자를 가족으로 하지만, 이제는 배우자, 직계혈족 및 형제자매 그리고 생계를 같이하는 직계혈족의 배우자, 배우자의 직계혈족과 형제자매 그리고 생계를 같이하는 직계혈족의 배우자, 배우자의 직계혈족, 배우자의 형제자매로 그 범위가 확대됐다. 이제 생계를 같이하는 경우에는 며느리와 사위, 장인, 장모, 시아버지, 시어머니, 처남, 처제까지 가족에 포함된 것이다.

어머니의 성을 물려줄 수 있다.
자녀는 아버지의 성과 본을 따르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부부가 누구의 성을 따를 것인지 협의하고 혼인신고시 협의서를 제출하면 어머니의 성과 본을 따를 수 있도록 하여 부성불변의원칙이 사라졌다.

또한 비혼모가 자녀를 키우다가 친아버지의 인지신고로 자녀의 호적이 옮겨지고 성이 바뀌던 불합리함을 제거하고 부모 협의로 어머니 성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자녀의 복리를 위해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경우 법원의 심판을 통해 자녀의 성을 변경할 수 있다.(폭력가정, 재혼가정의 자녀 등)
동성동본금혼제도를 폐지하고 근친혼금지제도로 전환되었고 여성에 대한 재혼금지기간 규정이 삭제됐다.

한편 재혼가정의 자녀는 친양자 입양이 되면 재혼가정의 성과 본을 따를 수 있게 되었다.

친양자 제도가 도입되었다.
혼인기간 1년 이상 된 재혼부부가 배우자의 전혼자녀를 친양자로 입양하게 되면 그 자녀는 새 성을 따를 뿐만 아니라 발급되는 신분등록부에도 친자로 공시된다. 친양자제도의 적용을 받게 되는 자녀 나이는 15세 미만자이고 친생부모가 친양자 입양에 동의해야 하며 친양자로 되면 친생부모와는 모든 법적인 관계가 소멸한다. 또한 친양자 제도는 재혼가정 뿐만 아니라, 혼인기간 3년 이상 된 부부로써 입양하는 경우에도 해당된다.

호적 초본대신 새로운 신분등록부(가족관계등록부)를 사용한다.
각 개인은 신분등록부의 주인이 된다. 새로운 신분등록부에는 호주를 기록하는 난이 없어지고 호주 대신에 본인을 기준으로 하여 출생, 입양, 혼인, 이혼, 사망등 출생부터 사망할 때까지의 변동 사항이 기록된다.

결혼하더라도 아내가 남편의 호적에 입적하는 대신에 자신의 신분등록부에 배우자의 인적사항을 기재할 뿐이며, 자녀 역시 아버지의 호적에 들어가는 대신에 자신의 신분등록부에 부모의 인적사항을 기재하게 된다. 또한 신분변동사항은 본인의 것만 기재되고, 부모 등 가족의 신분변동사항은 기재되지 아니한다. 따라서 부모의 이혼, 재혼 등 사실 여부가 기재되지 않는다.

목적별 다양한 증명서 발급
가족관계등록법은 증명하려는 목적에 따라 가족관계증명, 기본증명, 혼인관계증명, 입양관계증명, 친양자입양관계증명 등 다양한 증명서를 발급받을 수 있도록 하되, 증명서 교부신청은 원칙적으로 본인 또는 본인의 배우자·직계혈족·형제자매만이 할 수 있도록 하고, 친양자 입양증명은 친양자가 성년이 되어 신청하는 경우 등 한정적으로만 인정하여 발급 요건을 강화하였다.

그러나 현행 민법과 가족관계등록부는 긍정적 변화에도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첫째, 혼인 시 협의에 의해 성을 결정하게 하지 않고 기본을 아버지의 성으로 규정한 것, 어머니의 성을 따르려면 혼인신고 시와 출생신고 시 두 번에 걸쳐 신고하게 하는 등 번잡한 절차를 두어 부계혈통주의를 완화하고자 한 입법의 목적에 반한다.

둘째, 자녀가 미성년일 때에는 부모의 합의로 성을 정하였으나 자녀가 성년이 된 후에는 자녀의 의견을 따르도록 하여 자녀가 성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도 주어져야 한다.

셋째, 개인별 신분등록편제방식을 따를 경우 신분등록상 혼인 중 및 혼인외 출생자를 구별할 필요가 없음에도 출생 신고 시 신고서에 ‘자녀의 혼인중 또는 혼인외의 출생자의 구별’사항을 기재하도록 하고 있는 것도 삭제되어야 할 것이다.

넷째, 개인별 신분증명제도라는 기본 원칙이 무색하게 “가족관계등록부”라는 용어를 사용함으로써 개인별 신분등록의 취지와 맞지 않는 혼동을 초래한다.

다섯째, 본적을 대신하는 ‘등록기준지’를 도입하여 이를 편제 기준으로 정하고 있어 사실상 현행 호적제도와 똑같은 형식을 유지하고 있다.

여섯째, 동성동본 금혼제도 역시 폐지된 상황에서 ‘본(本)’은 더 이상 어떠한 법률적인의미를 갖지 않음에도 ‘본(本)을 기록하게 하여 부계혈통 중심을 유지하고 있다.

일곱째, 여전히 가족의 주민등록번호를 모두 기재하고 있어 불필요한 정보를 노출하고 있다

호주제 폐지의 근본 취지는 부계우선혈통주의와 남성 우월의식, 여성의 예속적 존재 규정을 불식하고 부부의 평등권과 여성의 부모로서의 권리를 박탈하는 성차별적 사회문화의 개선에 있다.

수평적인 가족관계는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이 지고 있는 무거운 짐을 나누는 동반자적 사회를 만드는 힘이다. 또한 한부모가족, 비혼부모가족 등 다양한 가족형태를 비정상사족으로 보는 편견을 제거 하고 국민의 정보를 보호하며 개인의 인권을 존중할 수 있는 새로운 사회 질서를 향한 변화의 길이다.

이제 한걸음 나간 평등하고 민주적인 가족제도의 기반을 딛고 쟁점이 되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여 기본을 갖추는 진일보한 사회가 속히 오길 기대한다.

석윤진희(昔尹眞喜), 필명 유유(悠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