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산시 00 지구에서 김지혜 의원이
26세의 나이로 시의원에 당선됐습니다."
<오산시의회 김지혜 의원의 자전적 이야기 제1편>

2010년 6월2일, 선거 개표 방송이 진행되고 있었다. 가슴이 조마조마해서 차마 TV를 볼 수 없었다. 내가 누구를 선택해보기는 했어도, 내가 시민의 선택을 받아야 하는 입장, 방송이 진행될수록 호흡이 가빠졌다.

이래저래 불안한 마음을 달래려고 방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이불을 펴고 누웠다. 아버지를 통해 한나라당 사람들과 만나고, 인사하고 자신 있게 선거에 임하겠다고 말했던 용기는 선거당일 한없이 작아지고 초라해졌다. 목이 쉬도록 열심히 해 보겠다던 열정도 오늘이 지나면 그 결과가 나온다.

그동안의 피곤이 겹쳤는지 눈을 떠보니 다음날 아침이었다. 가족들의 표정은 변화가 없다. 나도 모르게 TV를 켰다

“대한민국 최연소 시의원이 오산에서 탄생했습니다. 오산시 00 지구에서 김지혜 의원이 26세의 나이로 시의원에 당선됐습니다.”

바로 내 이야기가 방송에서 나왔다. 그 순간 나는 한 시간이 넘도록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될 수 있다는 자신감에 시작했지만 정말 시의원이 된 것이다. 마치 공중에 붕 떠 있는 느낌 이었다. 가족들 모두가 축하해줬다. 특히 아버지가 많은 축하를 해 주었다. 평소에 정치에 관심이 많으셨던 분이었는데 마치 자신의 일처럼 좋아하셨다.

우리 가족은 형제가 많다. 오남매나 되는 대가족이고 그중 나는 장녀이기 때문에 나에게 거는 기대가 컸었던 어른들은 앞으로 더 잘할 수 있을 것이라며 거듭 축하를 하며 시작도 못한 시의원 생활에 대해 미리 걱정을 해주셨다.

며칠 뒤에 당선증을 교부 받고 난생처음 오산시의회에 들어갔다. 말로만 듣던 의회다. 정갈하고 무게가 느껴지는 건물에 들어설 때 정말 내가 시의원이 됐다는 실감이 났다. 속에서 “잘해보자, 잘해보자”는 다짐이 나도 모르게 되새김 질 됐다.

전체 7명의 의원 중 한나라당은 나를 포함해 두 명이었으며 나머지는 민주당이었다. 전국에서 제일 작은 시답게, 의원들의 숫자도 단촐 하기에 당이라는 것에 큰 의미를 두지는 않았다. 다른 의원들도 모두 잘해보자는 말을 서로 건넸다. 당선자 중에 제일 어린 나에게 다른 의원들은 “장하네, 앞으로 당을 떠나 협력해서 열심히 일해보자”는 말을 건넸다. 그때는 그것을 진심으로 여겼다. 그러나 그 말이 인사치레라는 것을 오래가지 않아 알 수가 있었다.

아직 얼굴과 이름도 제대로 익히지 못한 상황에서 열린 첫 의회, 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사실 아는 것이 있어야 뭐 발언을 하지, 나는 너무 무지했었다. 발언 이라고 해봤자 그저 모르는 것을 공무원에게 물어보는 수준이었다. 남에게 말은 안했지만 속으로는 얼굴이 백번도 넘게 불거졌다.

덕분에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공부를 해야 했다. 적어도 시의원인데 무식하다는 소리는 듣기 싫었다. 모르는 행정에 대해 꼼꼼히 체킹을 해가며 열공모드에 돌입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였다.

모르는 행정용어가 너무 많고, 공문서의 형식이 어려웠기 때문에 금세 한계에 부디 쳤다. 이쯤이면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할 듯 했다. 그런데 행정 전문가가 아무 곳에서 튀어나올 수 없는 것이 현실........, 약간의 절망

그렇다고 해서 포기는 하지 않았다. 행정공부를 하면서 언뜻 깨달은 것이 있다. 일반인이 시청을 찾아와 민원을 제기할 때, 공무원들이 어려운 행정용어를 써가며 말을 하면 “민원인들이 정말 원하는 것을 얻어가기 어렵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만도 큰 수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약간의 자기만족일 것이다.

제일 먼저 한일은 의회가 열리기전에 관련 서류를 꼼꼼히 읽어보고 해석하고, 한국말을 해석해 본다는 것이 조금 우스꽝스런 상황이지만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그래서 남들보다 일찍 의회에 출근하는 것이 습관이 됐다. 남들은 나보고 부지런하다고 말을 하지만 사실 행정공부를 하러 의회에 오는 것이다.

그러던 중 불쾌한 일을 격은 적도 있었다. 아직 공무원의 얼굴과 이름을 잘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어떤 공무원이 악수를 하며 손장난을 쳤다. 성적으로 충분히 모욕감을 느꼈다고 생각이 되는 짓궂은 장난이었다. 아무리 내가 아직 스물여섯이고 어리다고 해도 이런 식의 성적인 장난은 불쾌할 수밖에 없었지만 참기로 했다. 일단 한 번은 참아보자는 속으로의 다짐은 나중에 큰 덕이 됐다.

열공과 분위기 덕에 의회에서 의원의 할 일을 조금씩 익혀가고 있을 때쯤 의원들끼리의 연찬회에 참석할 수 있었다. 연찬회라는 것도 처음이지만 연찬회가 끝나고 다들 한잔씩 하자는 제의에 약간의 술을 나누기로 했다.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에게 배운 주도가 있기 때문에 많이 마시는 남성들만큼은 아니지만 버틸 정도는 된다는 자신감에 술자리를 함께했다. 이런 저런 이야기가 오가고 있는 와중에 취중 진심이 나왔다. “돈이 들어가는 예산은 왜 민주당 사람들만 따로 모여서 회의를 하나, 우리 함께 같이 잘 해보기로 했으면서”라고 말하자 갑자기 분위기가 쏴 해졌다.

좋은 분위기의 판은 그렇게 깨졌다. 소수정당의 한계라는 것이 있다는 것을 제대로 실감하고 끝난 연찬회에서 집으로 길에 나는 욕을 했다. “야! 이 나쁜 패거리 정치하는 놈들아 그렇게 살자마라”

전경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