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만의 주홍글씨>


한국 영화 ‘블라인드’는 시각 장애인이 살인을 목격하면서 시작되는 공포영화다. 보이지 않는 적에 대한 실체를 파악해 가는 과정을 그린 수작이다. 영화 속에서 차용된 공포는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두려움 이었다.

실체가 없는 존재는 사람들을 두려움에 떨게 한다. 언제 어디서 나타날지도 모른다는 공포는 사람들을 오그라들게 만들고 갈수록 위축되게 만든다. 그리고 두려움의 대상은 공포에 지친 사람들이 인지하지 못하는 장소에서 은밀하게 나타나기 마련이다.

그러나 두려움을 일으키는 대상에 대해 어느 정도 파악이 되면 대부분의 공포영화는 반전으로 바뀐다. 여전히 무섭고 사악하며 두려운 존재이지만 실체가 파악되면 인간은 이겨내기 위한 방법을 강구하고 실천에 옮겨 나간다.

알 수 없는 것이 어디에 위치하는지 또 무엇인지 모를 때와 두려운 존재 이지만 그것이 어디에 있으며 어떻게 활동하는지 알았을 때 사람의 행동방식은 바뀐다. 두려운 존재에 대해 알게 되면서 사람들은 이겨낼 수 있다는 방법을 강구하는 것이 지금까지 인류가 보여준 행동의 패턴이며 대부분의 공포영화 스토리이기도 하다.

최근 중동호흡기증후군인 메르스에 대한 정부의 비밀주의는 일반 시민들에게 공포를 주기에 딱 좋은 소재가 됐다. 발병의 장소도 모르며 누가 감염됐는지, 어디를 가야하고 말아야 할지 전혀 알 수가 상태에서 국민들은 공포에 떨어야만 했다.

국민들이 정부에게 실체를 알려달라고 아우성쳐도 정부는 뚜렷한 이유 없이 실체를 공개할 경우 혼란이 야기 된다는 이유를 들어 대한민국을 공포 속으로 몰아넣었다. 그런데 3일 박원순 서울 시장이 실체의 일부를 공개했다. 서울로 메르스가 잠입했다는 것과 이것이 서울 시민을 아프게 할 수 있기 때문에 전쟁에 준하는 대처를 하겠다는 것이다.

국민의 리더에 해당하는 서울시장이 직접 전쟁을 수행하는 마음가짐으로 메르스와 싸우겠다는 소식에 많은 시민들이 안도의 한 숨을 내쉬었다. 공포의 대상을 숨긴 것이 아니고 적극적으로 드러내놓고 싸우겠다고 하니 오히려 박수를 치고 있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공포 대신에 실체를 드러낸 괴물과 싸우겠다는 의지에 갈채를 보내는 것은 사람이면 당연한 일이다. 이제 서울 시민은 가야할 곳과 가지 말아야 할 곳을 인지할 수 있으며, 스스로 위험지역과 비위험 지역에 대해 대처하면서 서울시 당국의 조치에 적극적인 협력을 할겠다는 의지를 보태며 시스템을 만들어 가고 있다.

메르스가 발병 한지 보름이 지나 전국으로 공포의 대상이 확산 될 때까지 쉬쉬하면서 국민들의 협조조차 구하지 못해 절절매던 정부도 서울시처럼 알릴 것은 적극적으로 알려 국민의 자발적 협조를 구해야 한다. 감염병 대처에 협조해 달라는데 마다할 국민은 없다. 단순히 숨김으로써 국민들을 숨어들게만 하는 것이 정부의 할 도리는 아니다. 사람들은 위기 앞에 뭉치게 되어 있으며 정보는 공유할수록 두려움과 공포에 대해 대처할 수 있는 경우의 수가 늘어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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