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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17일 경제관계장관회의를 개최하고 ‘노동시장개혁 1차 추진방안’(이하 ‘방안’)을 발표했다. ‘방안’에서 주목되는 것은 모든 공공기관에 임금피크제를 도입하고 이후 30대 대기업 및 조선·금융 등 6개 선도업종에 임금피크제 도입을 지원한다는 것이다.

원래적 의미의 임금피크제는 고령 노동자의 임금을 삭감하고 대신 정년까지 고용을 보장하는 제도이다. 그러나 정부는 임금피크제의 도입 취지로 고령 노동자의 임금을 삭감해 청년 노동자의 고용을 창출하겠다는 의지를 더욱 강하게 표출하고 있다. 기업이 임금피크제를 도입하고 청년 채용을 확대할 경우 임금피크제 대상자와 청년 취업자 '한쌍'에 대해 연간 1080만 원을 지원할 계획이다.

정부의 임금피크제 도입 배경은 우리 사회의 심각한 고용 현실에 기반한다.
지난 5월 기준 청년 실업률은 9.3%, 3월 기준 비정규직은 약 6백만 명에 달한다.
경총이 최근 377개 기업을 조사한 결과 ‘4곳 중 1곳이 올해 채용 계획을 결정하지 않았거나 유동적이라고 답변했다’는 결과 역시 고용 문제의 심각성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그러나 '세대 간 상생' '정규·비정규직 간 상생'이라고 달콤한 말로 포장돼도 임금피크제는 고용불안의 책임을 노동자에게 전가하고 노노 갈등을 조장하는 제도일 뿐이다. 노사관계의 자율성을 침해하고 산업현장에 분쟁의 불씨만 제공하는 개악으로밖엔 보이지 않는다.

재벌 및 기업이 채용을 하지 않는 것이 임금피크제를 도입하지 않아서인지, 이 제도를 도입하면 고용이 창출될지 의문이다. 기업이 투자를 하지 않는 건 엔저, 미국 금리인상, 그리스발 세계경제 위기, 1100조가 넘는 가계부채, 메르스 사태 및 가뭄 등 경제 환경의 불확실성에 기인한다. 또한 전 세계적 과잉투자는 기업으로 하여금 더 이상 투자처를 찾지 못하게 하는 요소이다. 임금피크제 도입 여부가 신규 투자와 고용창출에 큰 변수가 아니라는 것은 경제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상식이다.

환경노동위원회에서 활동하는 은수미 새정치민주엽합 의원 역시 “임금피크제는 충성심과 생산성이 떨어져 도입에 신중해야 한다”면서 “이 제도를 이미 도입한 기업에서는 청년고용이 늘지 않았다. 기업이 임금피크제로 절감한 인건비를 투자나 고용으로 돌리지 않는다”며 비슷한 견해를 밝히고 있다.

재벌닷컴에 따르면, 지난해 10대 재벌 상장계열사의 사내유보금은 504조원이다. 이것은 1년 전보다 37조원이 늘어난 액수이다. 재벌은 주체 없이 돈을 벌어들이지만 임금상승이나 신규투자, 고용안정에는 인색하다. 작년 3월 기준 10대 재벌 소속 노동자 120만 명 중 비정규직은 43만명에 달했다. 세 명 중 한명이 비정규직인 셈이다.

이와 관련,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노동시장 양극화(고용불안정, 소득불평등)는 '정규직 과보호'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재벌 과보호'에서 비롯된 것이다"면서 "사내유보금의 0.8%만 투자해도 43만개의 좋은 일자리 창출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채용, 인사, 처우, 해고 등의 내용을 담고 있는 취업규칙은 현재 근로기준법상 노동자에게 불리하게 변경하고자 할 경우 노조나 노동자 과반수의 동의를 받도록 되어 있다. 임금피크제 등 임금체계를 개편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취업규칙에 따라 노조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그러나 정부는 임금피크제를 추진하면서 ‘사회 통념에 비춰 합리성이 있으면 노조 동의 없이도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을) 예외적으로 인정한다’는 대법원 판례를 근거로 노동자의 동의 없이 임금피크제를 도입할 수 있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누가 봐도 정부의 추는 기업 측으로 기울어져 있다. 정부의 편파적인 정책 추진으로 노동조건 저하 위기에 직면한 노동자가 반발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민주노총은 당장 “정부 방침은 임금·단체협약 협상 시기에 사업장별 임금체계를 개악하겠다는 것”이라며 총파업을 예고했다. 한국노총 역시 조합원 총회를 거쳐 7월 총파업 방침을 밝혔다.

메르스 사태와 심각한 가뭄의 와중에 추진되는 정부의 편파적인 노동시장 구조 개선과 임금피크제 정책으로 우리 사회는 7, 8월 한여름까지 불안과 시름 속에 놓이게 될 것 같다. 세월호, 메르스 사태에 이어 국민은 계속해서 국가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지 묻게 될 것이다.

한국사회의 정상화, 경제의 재도약, 고용안정 등은 노동자에 대한 일방적인 양보 강요가 아니라 재벌개혁과 경제민주화가 진행됐을 때 가능한 일이다.

조백현 발행인  mail@newstow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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