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필리핀 의료봉사 참가자들. ⓒ권혁용 원장

추석 연휴를 이용해 6박 7일간(2013.9.17~9.23) 필리핀에 있는 iloilo city로 의료봉사를 다녀왔다. 천주교 수원교구 평택대리구에서 주최한 해외 의료봉사단의 일원으로 참여한 의료봉사활동이었다. 5월부터 8월까지 다섯 번의 준비모임을 통하여 소아과와 치과 2개의 진료팀이 구성되었고, 지도신부를 비롯하여 의사, 치과의사, 약사, 간호사, 자원봉사 학생들을 포함해 총 9명으로 이뤄진 자원봉사단이 꾸려졌다. 평택대리구에서 진료에 필요한 의약품과 의료기구, 잇솔질 교육에 필요한 칫솔과 치약, 현지 아이들에게 찍어줄 즉석인화 카메라와 필름, 숙소와 식사 등을 준비하는데 전반적인 지원이 있었고, 필리핀을 오가는데 필요한 왕복 항공권은 참여한 개인들이 부담하였다.

첫째 날 (9.17)
새벽 4시에 오산을 출발하여 인천공항에서 아침 8시 비행기를 탔다. 필리핀 manila 공항에 낮 12시가 넘어 도착하였으나 마닐라에서 다시 iloilo city로 가기 위해선 국내선 공항으로 이동해야 한다. 우리는 환승하기 위해 공항에서 무려 5시간을 넘게 기다려야만 했다. 참으로 지루하고 힘든 시간이었다.

저녁 8시가 넘어서야 일로일로 공항에 도착하여 숙소로 정해진 “천사의모후 수녀원”에 도착했다. 수녀원에는 벨기에 수녀님, 프랑스수녀님, 한국수녀님 세분의 수녀님들이 계셨다. 수녀님들의 안내에 따라 방이 정해지고, 짐을 풀고, 저녁식사를 맛있게 하였다. 세 분 수녀님들의 극진한 환대에 고단했던 하루의 노고가 깨끗이 사라져 버렸다.

둘째, 셋째날 (9.18~9.19)
새벽 5시 30분에 일어나 하루 일과 준비를 시작하였다. 첫 번째 진료장소는 일로일로 시티에서 배를 타고 들어가는 기마라스(gimarras)라는 작은 섬에 위치한 학교였다. 학교에 도착을 하여 보니 그곳은 초등학교와 고등학교가 함께 있었다. 건물과 시설들이 낡고 누추해 보였지만 손길이 많이 간 따뜻하고 정감 있는 곳이었고, 창문을 통해 기웃거리는 아이들의 호기심 가득한 해맑은 모습은 우리의 마음을 설레게 했다.

이틀 동안 이곳 학교에서 의료봉사를 했다. 소아과는 192명, 치과는 64명의 환자들을 진료했다. 잘 하지도 못하는 영어로 대화하면서 소통의 어려움이 조금 있었고,,, 진료 중간에 잠깐씩 전기도 나가고,,, 숙소에서 가져간 약포지가 모자라 봉투도 직접 만들어 쓰고,,, 치과의 경우는 환자 전용의자도 없었고 기구와 재료의 제한으로 충치치료, 신경치료, 발치 등의 진료만 할 수 밖에 없어서 아쉬움이 컸지만 따뜻한 마음과 긍정적인 자세로 진료를 진행하였다.

19일에는 진료를 마치고 준비해간 제기를 나눠주고 아이들과 함께 제기차기 게임도 했다. 나는 그곳에서 제기를 가장 잘 차는 아이와 제기차기 시합을 했다. 승부 근성이 발동해서일까 내가 이기고 말았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던 아이들의 표정이 모두 시무룩해진다. 동료 친구가 이기길 내심 바랐나보다.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

학교에서의 일정을 모두 마치고 떠나오는 날. 학교 아이들은 ‘good bye’, ‘salamat po’(고맙습니다) 하면서 교문 밖까지 우리를 배웅해주었다. 우리를 태운 차가 교문을 멀리 떠났는데도 손을 계속 흔들며 진심으로 환송해주는 아이들의 순수한 마음과 행동들은 아직도 기억에서 지울 수가 없다.

▲ 권혁용 원장이 필리핀 아이들의 치아상태를 살펴보고 있다. ⓒ권혁용 원장

넷째, 다섯째날 (9.20~21)
학교를 마치고 우리가 옮긴 진료장소는 iloilo city의 외곽에 위치한 소옥 마을(so-oc baranggy)이었다. 우리나라 마을회관 역할의 공소(chapel)에 진료소가 준비되었다. 20일에는 주로 성인들을 대상으로 진료를 하였고, 21일에는 어린이와 성인을 함께 진료하였다. 진료 중간에 소낙비가 너무 세차게 내려 유리문이 없는 창문을 통해 진료소 안으로 비가 들어왔다. 진료는 중단되었고 비닐로 창문을 가리는 작업을 통해 들어오는 비를 막는 소동이 잠시 있었다. 필리핀의 9월은 우기철로 매일 많은 비가 내렸다. 어려운 여건이었지만 이틀 동안 소아과에서는 199명, 치과는 52명의 환자들을 진료했다.

소옥 마을(so-oc baranggy)에서는 어린이를 대상으로 잇솔질 교육프로그램도 진행했다. 준비해 간 칫솔과 치약을 나눠주고 잇솔질하는 방법과 잇솔질의 중요성에 대해 설명을 하고 난 후에 아이들에게 직접 잇솔질을 하게 했다. 다행스럽게도 아이들은 집중하면서 잇솔질 방법에 대한 설명을 들었고 열심히 치아를 닦았다. 아이들의 예쁜 모습을 보면서 나는 얼굴에서 미소를 떨칠 수가 없었다. 또한 어린이와 가족들을 대상으로 폴라로이드 사진기로 즉석에서 사진을 찍어 주었는데 모두들 너무나 좋아했다. 준비해간 필름 200개는 순식간에 동이 났다. 폴라로이드 사진 찍기는 가장 인기 있는 프로그램이었다.

여섯째날 (9.22)
마지막 22일에는 소옥 마을(so-oc baranggy)에서 거동이 불편한 환자들을 위해 가정방문활동을 했다. 현지 수녀님을 선두로 신부님과 의료진이 12세대를 차례로 방문하였다.

허리가 아파 항상 누워계시는 분, 맹인으로 앞을 보지 못하는 분, 다리가 굽어 잘 걷지 못하는 분, 할아버지 할머니 부부가 모두 누워계시는 가정 등,,, 모두가 어렵고 힘든 여건 속에서 살고 계셨지만 우리를 진심어린 마음으로 환대해주었다. 하지만 우리는 그들을 위해 해줄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았다. 그저 준비해간 비타민과 빵을 건네고, 서툰 영어로 위로의 말을 전하며 그들이 주님의 은총 안에서 빨리 쾌유되기를 기도했다.

가정방문 활동을 할 때 어제 나누어준 칫솔을 가지고 양치질 하는 아이들도 간혹 볼 수 있었다. 골목길을 지나가는 나를 보고는 반갑게 손을 흔들어 준다. 참으로 보람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어떤 어르신은 가정방문이 끝날 때까지 우리 일행을 따라 다니며 길을 인도해주었으며 가정방문활동을 마치고 헤어지는 시간이 되자 눈물을 글썽이며 잡은 손을 쉽사리 놓지 못했다.

마지막 날 (9.23)
오전 7시에 아침식사를 마치고 서둘러 iloilo 공항으로 출발했다. 수녀님들과 아쉬운 이별을 뒤로하고 서둘러 공항으로 들어가 탑승수속을 마치고 비행기를 기다렸지만 비행기가 1시간 연착될 것이라는 안내 방송이 들렸다. manila 공항에서도 마찬가지로 비행기는 1시간 넘게 연착되어 우리는 밤 10시가 넘어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함께 참여한 단원들이 아쉬운 작별의 인사를 나누고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면서 우리는 1주일간의 여정을 마무리 할 수 있었다.

매일 새벽 5시 30분에 기상하여 하루의 일과가 시작되면서 육체적으로 힘들었지만 나를 성장시키는 새로운 경험이 되었고,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추억을 만들어준 시간이 되었다. 또한 나에게 주어진 삶이 얼마나 아름답고 고마운 것인지 되새기게 되는 소중한 기회가 되었다.

▲ 자원봉사 참가자와 아이들과의 기념 촬영. ⓒ권혁용 원장

권혁용  열린치과 원장, 나누며 사는 오산사람들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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