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상희 시민기자. ⓒ이상희

“윽, 이거 뭔 냄새예요?”
나갔다가 들어오던 큰 녀석이 엄마한테 인사를 하기도 전에 코를 틀어쥐며 오만상을 찡그린다.
“청국장 끓인다, 왜?”
“이거 나 싫어하는데, 왜 냄새나게 청국장을 끓여요?”
“너만, 입이냐?, 엄마 입도 입이거든!”
녀석의 말이 서운하게 기운을 뺀다.
나는 그동안 나를 위해 밥상을 차려본 적이 없다.
부모님이 계실 때는 부모님 입맛에 맞춰드렸고, 아이들이 크면서는 아이들이 좋아할만한 것들로 밥상을 차렸다. 입맛이 비슷하면 문제 될 것이 없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린 입맛이 너무 달랐다. 얼큰한 것을 좋아하는 시댁 식구들과는 달리 나는 담백한 것을 좋아했으니까. 그렇다고 애들이 좋아하는 떡갈비나 햄버거를 즐겨 먹지도 않는다. 예전엔 고기를 무척 좋아했는데 건강이 나빠지면서 소화를 못 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내 입맛에 맞는 밥상을 차리면 다른 가족들이 부실한 식사를 해야 하는 것을. 며느리는, 아내는, 엄마는 맛있게 먹어주는 가족들을 보면 그보다 흐뭇할 수가 없다. 지지고 볶으며 애쓴 보람을 가족들 숟가락질에서 찾는 나는 어쩔 수 없는 주부였다.
그래서 나를 포기하기로 했다. 입맛을 하루아침에 바꿀 수는 없는 노릇이었기에 물에 말아먹는 날이 다반사였다. 더구나 가족들이 밥을 다 먹고 난 다음에 남은 것을 처리하는 것은 나의 일상이 되었다. 가끔은 버리고 싶을 때도 있었지만 낭비라는 생각에 꾸역꾸역 한 끼를 때우곤 했다. 나 혼자 먹겠다고 음식을 만들 부지런도 떨지 않았다. 수술을 하고 돌아왔을 때도 내 몸보신보다는 가족들의 입맛이 우선이었으니까. 그럴수록 살은 디룩디룩 쪄가고 먹는 즐거움은 점차 잊혀져갔다. 결혼을 하기 전에는 맛집만 쫓아다니면서 이러쿵 저러쿵 맛평을 늘어놓곤 했는데.
그렇게 내가 나를 하찮게 여기니 가족들도 당연한 듯 내 존재를 가볍게 여기는 눈치였다. 하지만 그것을 서러워하기엔 내 잘못이 너무 큰 것 같다. 내게도 좋아하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지 않았으니까. 그들에게 난 한 사람이기 이전에 며느리요 아내요 엄마였으니까.
그래서 이제부터라도 나를 사랑해 주기로 했다.
설령 먹다가 버리는 한이 있어도, 혼자 외롭게 먹어야 하더라도, 시간과 정성을 쏟아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하더라도 가끔은 나를 위한 밥상을 차리려고 한다.
쇠뿔도 단 김에 빼랬다고 오늘 저녁은 내가 좋아하는 반찬을 상위에 올리기로 했다.
김장김치를 쫑쫑 썰어서 청국장을 넣고 찌개를 끓이고, 취나물과 시래기는 조물조물 무쳐서 볶아내었다. 작두콩과 울타리콩을 듬뿍 넣어서 밥을 짓고 고등어 한 마리를 구워 놓으니 침 넘어가는 소리가 집안을 가득 채운다.
이런 날 남편이 일찍 들어오면 함께 먹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을 텐데... 아쉽지만 아이들을 불러 모아놓고 밥상 앞에 앉았다. 침이 꼴깍꼴깍 기분 좋게 목구멍을 타고 흐른다.
“엄마, 난 뭐 먹어?”
아이들이 콩을 골라내며 투정을 부린다.
“그냥 드셔. 먹기 싫으면 말고”
막내가 시래기나물 하나를 집어 들더니 떨떠름한 표정으로 입에 넣는다.
“괜찮네...”
낯설다고 시도도 해보지 않던 녀석이 크긴 컸나 보다. 한 번 맛을 들이니 시래기나물로 밥 한 공기를 다 먹는다. 엄마의 반란에 동참해준 막내가 눈물 나게 고마워 윙크를 해주었다.
아파트 정원엔 눈꽃이 피고 우리 집 밥상 위엔 웃음꽃이 피었다.

이상희 시민기자  mail@os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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