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표적인 봄나물 냉이. ⓒ조은주 시민기자

요 며칠 들어 산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경쾌해지고 드높아졌다. 겨울 동안 ‘솔’음으로 노래했다면 요즘은 높은 ‘도’음이다. 부산스레 나무에서 나무로 옮겨 다니느라 작은 발이 쉴 틈이 없어 보인다. “할 일이 많아 바빠요” 하며 참견하지 말고 할 일 하란 듯이 근처에 사람이 있는데도 못 본 척이다. 연신 무언가 물어 나르느라 보기에 안쓰러울 정도다. 새로 집도 짓고 짝도 짓도 알도 낳고 새끼를 키울 준비를 하려니 바쁠 수밖에. 사람이나 동물이나 일생의 삶이 늘 바쁘기는 매한가지이다.

‘겨울’이란 말은 황량한 겨울 풍경처럼 사뭇 무겁고 칙칙하고 우울하다. 반면에 ‘봄’이란 말을 소리 내어 보면 화사한 봄옷처럼 밝고 가볍고 명랑한 느낌이 든다. 봄은 꽁꽁 얼어붙었던 대지를 녹이면서 내 마음까지도 녹여주고 있는가 보다. 봄이 되면서 서로 데면데면하던, 앞집에 새로 이사 오신 아주머니와 마음을 텄으니 말이다. 실은 그분은 이미 마음을 활짝 열고 계셨는데 바쁘다는 핑계로 나는 오늘에서야 내 마음을 열어 드렸다.

꽃을 좋아하신다는 그분께 황매화를 뽑아 드렸더니 무척 반가워하신다. 고백하건대 화단을 새로 정리하느라 뽑아놓긴 했는데 마땅히 심을 곳을 정하지 못해 내심 어째야 하나 고민 중이었다. 그분 집은 비어있는 공간이 많고 꽃을 좋아하시니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또 앞집에 황매화가 피면 나도 늘 볼 수 있어 아쉬운 마음을 달랠 수 있게 되었으니 일석이조이다. 앞집에 시집 간 황매화가 뿌리를 잘 내리고 꽃을 활짝 피우기를 빌어본다. 조금 미안한 마음에 우리 집에서보다 더 잘 살기를 바라본다.

겨우내 팽개쳐 두었던 화단을 정리하다 보니 죽은 것처럼 초라하던 으아리 넝쿨 마디마디에 꽃봉오리가 맺혀 올라오고 있었다. 조심조심 주위의 마른 검불을 치우고 햇볕이 잘 드는 곳으로 이식을 해 주었다. 올해는 의젓하고 당당하게, 넓고 환한 자리에서 흰 꽃을 우아하게 피울 수 있을 것이다. 작년에 꽃이 피면서 벌레가 꽃잎을 갉아먹었던 일이 생각났다. 예쁜 꽃 모양이 엉망이 되어 안타까웠지만 꽃잎 스스로 자신의 몸을 벌레에게 보시하는 중이겠거니, 슬쩍 눈감아 주었다.

낙엽을 살짝 들추어보니 작약의 새순이 빨갛게 올라오고 있다. 꽃샘추위에 움츠러들었던 매화꽃봉오리도 바람이 잔잔한 오늘은 조금 들떠있는 것 같다. 날을 골라 ‘펑’ 봉우리를 터뜨릴 날을 기다리며 매화나무 가지를 살짝 잡아당겨 코끝에 대고 심호흡을 해 본다. 햇볕이 잘 드는 곳에 심어진 작은 꽃 수선화는 꽃대를 밀어올리고 있는 중이다. 진노란 꽃이 작고 앙증맞아 귀여운 개구쟁이 같은 느낌이다. 그늘진 곳에 심어진 큰 꽃 수선화는 이제야 새끼손가락만큼 새순이 올라오고 있다. 수수한 연노랑 원피스를 입은 열여덟 처녀 같은 자태로 꽃을 피운다.

삼지구엽초도 낙엽 속에서 붉은 새순을 준비하고 있었다. 삼지구엽초는 잎과 줄기가 ‘음양곽’이란 이름의 한약재로 쓰이는데 잎도 예쁘지만 아리아리한 연노랑으로 피는 꽃이 더없이 예뻐 내가 좋아하는 꽃밭의 꽃 중 하나다. 제각각 자신의 자리에서 춥고 긴 겨울을 견뎌내고 뾰족이 얼굴을 내밀고 있는 꽃들이 참으로 대견스럽다. 겨우내 얼마나 추웠을까? 얼마나 무서웠을까?

봄이라 그런지 몸이 나른하다. 봄, 하면 떠오르는 것이 또 하나 있다. 바로 봄나물이다. 텃밭에는 이미 냉이가 여기저기서 불쑥불쑥 올라오고 있다. 잎이 넓적하게 자란 냉이를 골라 캐어 나물을 무쳐 먹기로 했다. 내가 가꾸는 텃밭은 비닐을 씌우지 않는다. 비닐을 씌워 농사를 지으면 봄철에 냉이를 캘 수가 없다. 냉이 씨가 땅에 떨어져 흙 속에 묻혀야 자랄 수 있는데 비닐을 덮어놓으면 씨앗이 흙 속에 묻힐 수가 없기 때문에 비닐을 씌운 밭에는 냉이가 자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비닐을 씌우면 흙이 햇볕을 쬘 수가 없다. 흙이 건강하려면 흙도 햇볕에 일광욕을 해야 한다. 건강한 흙에서 자란 것들이 건강한 법이다.

냉이 잎이 단풍 든 나뭇잎처럼 붉은빛을 띠고 있다. 텃밭에 쪼그리고 앉아 냉이를 캐고 있는데 텃밭 옆 산에서 ‘딱, 딱, 딱, 딱’ 소리가 들린다. 한참을 두리번거리다가 눈길이 멈춘 곳은 죽은 소나무다. 죽은 소나무에 새가 날아와 앉아 부리로 소나무 껍질을 쪼아내서는 밑으로 떨어뜨리기를 한참 동안 반복하고 있다. 떼어낸 곳이 대강 눈짐작으로 50여 센티쯤은 되어 보인다. 딱따구리인가 싶었지만 자세히 볼 수가 없어 아쉬웠다. 냉이를 캐는 내내 옆에서 응원해주는 것 같아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해가 저물녘까지 ‘딱, 딱, 딱, 딱’ 소리는 계속되었다.

작년 가을에 시금치 씨를 뿌려놓은 밭고랑에 가뭄에 콩 나 듯 시금치 싹이 텄었다. 해묵은 씨앗을 뿌린 것이 발아가 안 된 이유였기로 짐작이 갔다. 묵정밭처럼 잡초가 빼곡한 사이사이 냉이가 많이도 자라나고 있다. 바구니에 냉이를 캐 넣다가 겨울을 견디고 난 시금치 몇 포기도 캐 넣었다. 양지바른 쪽에 자란 민들레도 한 뿌리, 이파리가 소담스러운 소루쟁이도 몇 잎 뜯어 넣고, 새 순이 막 올라온 씀바귀도 몇 뿌리 캐어 넣다 보니 바구니가 수북해졌다.

뿌리에 붙은 흙을 씻고 하나하나 깨끗하게 손질하고 끓는 물에 아주 살짝 데쳐내어 양념으로 무쳐 맛을 보니 정말 ‘이 맛이야’. 금방 몸이 건강해지는 것 같은 느낌이 충만했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대로 양념을 한다. 왜냐하면 내가 먹을 거니까! 고추장과 된장을 2대 1로 섞고 오미자 액을 넣고 들깨가루, 파 조금, 고춧가루 조금, 식초 조금, 마늘은 넣지 않았다. 된장을 넣는 음식을 할 때에는 나는 항상 마늘을 뺀다. 맛있는 봄나물과 함께 저녁을 먹다 보니 좋은 사람들이 생각났다. 좋은 음식을 먹을 때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는 건 또 다른 행복이다. 행복은 일상에서 가장 큰 에너지이다. 에너지가 있어야 일을 할 수가 있다. 모두가 행복한 봄이 되었으면 좋겠다. 큰 행복일수록 정말 작은 것에서 온다. 우리가 찾는다면...

▲ 봄에 입맛을 돋우는 음식 냉이 무침. ⓒ조은주 시민기자

조은주 시민기자  mail@os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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