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길순 시인. ⓒ양길순

슬픈 블라인드

양길순(시인)


날마다 멈추지 않는 싸움이 
나를 잔인한 일상으로 몰고 갔다
그들은 녹녹한 습기를 즐기며 
마음대로 거실과 주방을 행보했다
'몸길이 1~1.5센치 둥글고 납작하며 황갈색 몸빛 
야행성이므로 어둠 속에서 잘 서식하며 음식물에 
해 끼침'
놈들은 밤이 되면 불을 켬과 동시에 
날렵한 동작으로 몸을 숨기는데...
한 마리가 미동도 없이 죽은 체 하며 
내 눈치를 보고 있다
간이 배 밖으로 나온 바퀴벌레 놈 
화가 치밀어 분사기를 품으려는데 갑자기, 
슬픈 발성이 밥물처럼 목젖을 흔든다 
밤마다 내가 행한 응징으로 휴지조각에 
문장처럼 찍혀있는 잔인한 얼룩들 
그들의 슬픈 죽음에 대하여 
늦은  밤 고해하듯 마음 털어놓고 잠시, 
검은 블라인드 내린다.


◆ 양길순약력

- 1958년 3월25일생, 충남 부여 출신
- 1996년 「문예사조」 등단
- 한국문인협회, 오산시문학회, 오산시인협회 소속
- 시집〈꽃의 연대기, 2012, 애플북스〉
- 물향기 문학상, 시혼문학상 외 다수 수상

양길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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