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태우 ‘한국인문사회연구회’ 사무국장. ⓒ김태우

이별(離別)은 만남을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만남 없이 이별은 절대 성립하지 않는다. 이별 이전에 반드시 만남이 있어야 한다. 원래부터 다른 장소에 있었던 것들이 만났든 아니면 처음부터 하나였던 것이든 간에 이별 전에는 둘이 아니라 하나여야 한다. 또한 이별은 영영 이별일 수도 있으며 잠시 이별일 수도 있다. 아무도 미래를 장담할 수 없다. 절대로 보지 않을 것처럼 얘기한다 해도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눈이 멀어있지 않는 한 보이는 건 동그랗게, 세모로든 보일 거고, 귀를 막아도 들리는 건 어쨌거나 들리기 마련이다. 소로우의 말처럼 사람들은 백 년 전이나 오천 년 전이나 별거 아닌 뉴스에 귀를 쫑긋 세우고 사소한 일에 목숨을 건다. 때문에 이별의 당사자로서는 사별(死別)이 차라리 나을지도 모른다. 죽음이라는 강물을 건너면 더는 해 줄 것도 없으며 미련도 적다. 생이별은 살아있는 기억에 수의를 입혀 버려도 소식은 계속해서 들려온다. 듣고 싶지 않아도, 귀를 막아도 한 번 만났던 건 아무리 쓴 이별을 한다 해도 어딘가에서 예기치 않게 다시 만나기 마련이다.

그래서, 그래서 첫인상도 중요하다고 하지만 이별은 더욱 중요하다. 그래서 이별의 윤리학은 이렇게 쓰인다. 다시는 볼 수 없다 생각했던 것들을, 살아 있다면 이별했던 것들을 다시 볼 수 있지만 다시 볼 때 우리의 자세를 생각하는 거다. 그런데 이미 헤어진 무언가를 다시 본다는 건 새로운 시력이 필요한 일이다. 어쩌면 이별을 결심하는 일이, 또 이별을 체험한다는 일이 새로운 시력이 필요한 일이다. 그래서 출산도, 금연도 힘든 일이다. 열 달 동안 한 몸이었던 것과, 이십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중독된 것과 이별한다는 일은 쉽지 않다.
순한 양의 새해가 되면서 결코 순하지 않은 독한 일들이 하나둘 생겨나고 두 배로 오른 담배 하나 끊는 일도 쉽지 않다. 차라리 열배 백배로 올랐다면 금연이 쉬웠을까. 국민 건강을 생각해서 쉽게 이별하라고 가격을 대폭 인상했다고 하는데, 어째 담배 피울 일들만 쌓인다. 담배 말고 쉽게 여유를 찾을 일이 별로 없다는 일이 슬플 지경이다.

전영태의 ‘세금 이야기’(2005)엔 야곱의 아들 요셉이 이집트 땅을 국유화하는 과정이 나온다. 풍년이 드는 동안 요셉이 곡물을 싸게 사들여 이집트 곳곳의 창고에 보관했다가 기근이 계속되는 동안 비축해둔 곡물로 사원과 국유지가 아닌 모든 토지를 사들이고 그 땅을 파라오에게 바치고 소작인이 되어 세금을 바치게 했다는 세금의 역사. 세금의 역사는 땅의 주인이 땅과 멀어지게 만든 이별의 역사다. 이처럼 이별은 항상 아름답지만은 않다. 원래 내 것이었던 것과 멀어지고 결국 원래 내 것이었던 것의 노예가 되어버리는 일도 생겨버린다. 고고하고 아름답게 살아간다면 혹은 죽음을 택한다면 삶은 그다지 혐오스럽지 않을 거다. 하지만 살아있는 이유로 삶은 혐오스럽기도 하고 아름답기도 하다.
이별은 때로는 아름답고 때로는 혐오스럽다. 이 모든 일은 인간의 역사이고 만남의 역사다. 이별조차도 만남이 있고 나서야 생기는 일이므로. 어쩌면 이별의 윤리는 만남의 윤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어떤 만남의 자세를 가졌느냐에 따라 이별의 태도도 다르다. 한 손으로는 박수가 나지 않는다고 하는데, 만남은 둘로 되지 않아도 이별은 혼자 할 수 있는 일이라 참 쉽고도 어렵다. 짝, 소리에 심장이 아프다.

김태우  ‘한국인문사회연구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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