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영원한 자랑이자 자부심인 비틀즈(beatles)는 자신들이 자라난 리버풀을 노래했다. 리버풀시의 한 작은 동네 ‘페니’의 소로를 노래로 만든 것이 그 유명한 ‘페니래인’이다. 이 노래는 리버풀의 자랑이자 비틀즈의 자랑이 됐다.

스트리트가 아닌 작은 골목길, 마치 거미줄 같은 동네의 소로에서 삶의 재미를 찾아낸 비틀즈가 수원의 한 마을에 온다면 깜짝 놀랄 것이다. 수원의 북수문에서 남수문까지의 소로들을 돌아본다면, 그들은 페니래인 대신에 수원래인 이라는 노래를 만들었을 것이다.

수원 북수문에서 남수문까지의 작은 도로들은 세계문화유산이라는 규제 덕분에 1960년대 한국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곳이 많다. 굳이 박물관에 가지 않아도 될 만한 우리시대의 편린들이 아직 살아 있는 곳이 이 지역이다.

북수문에 도착하면 제일먼저 눈에 띠는 것은 바로 ‘여유’라는 의미의 단어다. 오래전부터 조성된 잔디밭에 남녀노소들이 어울려 담소를 나누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가끔 약주를 드시는 분들도 있지만 그것도 여유라는 의미에서 본다면 그다지 흉은 아니다.

세계문화유산이라는 우산이 만들어낸 풍경은 이것뿐만이 아니다. 서울에서는 불가능한 사적 만져보기, 역사적 유물 안에서 누워보기 등이 이곳에서는 그저 일상이 됐다. 북수문을 지난 골목 안으로 들어서면 개발이 더딘 자연도로 들이 곳곳에서 사람을 반긴다.

골목의 담장 곳곳에는 벽화들이 그려져 있다. 개발제한으로 인해 증개축이 어려운 사정을 감안해 이 지역 주민들과 시가 합심해서 도로의 담벼락에 이야기를 담았다고 한다. 일종의 스토리텔링 같은 것이다.

도로를 따라 더 들어가면 이제는 여기가 아니면 다시는 볼 수 없을 것 같은 건물들이 나온다. 마치 오래된 영화에서나 볼 수 있을법한 건물들, 여관, 나무가 있는 집, 자전거 수리점 등이 줄지어 서서 시간을 과거의 어느 한 시점으로 끌고 간다. 정말 21세기의 수원의 마을 이라고 보기 어려운 풍경들이 정감 있게 펼쳐져 있다.

그렇게 골목길을 따라 100여 미터를 더 내려가면 문구 도매점들이 모여 있는 팔부자 거리에 도착하게 된다. 중심가의 대형 문구도매점들보다 떠 싸게 물건을 팔기로 유명한 이곳 문구도매점들은 수원에서보다 수원 밖에서 더 유명한 곳이기도 한다.

수요일 한 낯임에도 문구점들을 찾는 손님들은 북적거린다. 다만 손님들이 좁은 골목길 까지 차를 몰고 오는 바람에 간혹 실랑이가 벌어지기는 하지만 그것도 재미있는 풍경이다. 수원시가 이 도매점들을 찾는 손님들을 위해 별도의 주차시설과 운반 시설만 지원해 준다면 시내 중심가의 대형 도매점들이 문을 닫을지도 모를 만큼 이곳 도매점의 활기와 생명력은 대단해 보인다.

팔부자 거리에 이어 골목길을 조금 더 따라 내려가면 작은 시장이 나온다. 언제부터 인지 이곳 시장은 활기를 잃어버렸지만 딱 한집만은 예외라고 한다. 바로 칼국수 집이다. 양도 푸짐하고 가격도 저렴한 칼국수의 맛은 수원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지금은 외지인들이 이집의 칼국수 맛을 보기 위해 찾아온다고 한다.

칼국수 집 뒤쪽으로는 천주교 수원성지가 엄숙하지만 자애로운 모습으로 남아 있다. 조선 천주교 박해 때 이곳에서 숨진 신자들이 80여명에 이르러 천주교에서는 이 지역을 성지로 정했다고 한다. 수원에서도 이 지역을 성지로 인정하고, 수원화성의 복원과는 별도의 건물로 인정하고 있다.

천주교성지에서 그 옛날의 참화를 생각해보고 발길을 더 남쪽으로 옮기면 세상어디에도 없는 통닭거리가 나온다. 10여개 치킨집들이 모여 있는 거리는 밤이면 손님들로 불야성을 이룬다. 수원시의 어느 공무원이 “법규를 조금 위반하면 어떠냐!, 인도에 테이블을 깔고 장사할 수 있도록 하면 더 많은 관광객들이 이곳에서 수원을 살찌울 것이다”라며 장사를 권했던 이 거리는 어느새 명물이 됐다.

통닭거리는 정확히 남수문까지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복원한 남수문은 북수문과는 다른 형태다. 과거와 똑같이 복원한 것이라고는 하지만 아치의 형태가 우리 조상들이 만들어낸 그런 아치가 아니고 서양의 건축물을 보는 듯한 그런 인상을 풍긴다. 남수문을 가로 질러 다시 수원천을 따라 북수문으로 발길을 돌리면 오른쪽에는 노점들이 보인다.

남수문 아래 지동시장에 입점하지 못한 노점들은 봄나물을 비롯해 갖은 잡동사니를 풀어놓고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지방으로 갈수록 호족화 된 공무원들의 위세에 노점을 하기가 정말 어려운 것이 현실인 점을 감안한다면, 이곳 노점들도 언제까지 장사를 할 수 있을지 의문이 가지만 아직 이곳 노점들은 잘 버티고 있는 셈이다.

북수문과 남수문을 잇고 있는 하천을 수원천이라고 한다. 수원천은 광교산에서 발원한 천으로 하천이라고 거창하게 표현하기보다는 개울에 가깝다. 아이러니하게도 수원사람들은 이 수원천을 큰 하천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수원천의 폭은 길게 잡아봐야 10여 미터 정도 이고, 실제 하천은 그보다 훨씬 작은 편이다. 그럼에도 수원 사람들은 수원천을 꼭 서울의 청계천과 비교하길 좋아한다.

지난해 염태영 수원시장은 수원천 복원공사를 마무리하고 기자들과 만나 브리핑을 하면서 “서울의 청계천이 콘크리트로 복원 됐다고 하지만 우리 수원천은 자연형 하천으로 복원됐다”며 자랑스럽게 말 한 적이 있으나 지금 수원천을 자랑스럽게 말하기는 조금 곤란할 만큼 깨끗한 편은 아니다.

그래도 하천에는 잉어들이 넘쳐나고 청둥오리들이 자기들 집인 양 바위사이를 오가며 자맥질을 하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다.

천변을 따라 올라가면 마치 그림 같은 건물이 하나 사람을 반긴다. 수원화성박물관이다. 사적3호이자 세계문화유산인 수원화성에 대한 사료집 들을 정리해 전시하는 이곳에 가면 다산 정약용이 조선 22대 임금인 정조의 명을 받아 제작했다는 거중기를 볼 수 있다. 지금의 기중기 같은 것으로 4개의 도르래를 이용해 무거운 물건을 들 수 있도록 제작된 것이 바로 거중기이다. 이 거중기 덕분에 수원화성 성벽 공사는 10년이나 걸릴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2년 7개월 만에 끝났다고들 하니 당시에는 대단한 물건이었던 모양이다.

박물관 뒤편으로는 다시 시계를 거꾸로 돌린 듯한 건물들이 줄지어 있다. 수원시 전체적으로 높은 건물이 없는 것은 비행고도 때문이기도 하지만 특히 이 지역에 단층 건물들이 많은 것은 문화제 보호구역으로 묶여 있어 개발행위가 제한 받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덕분에 시선을 어디에 두어도 맑은 하늘이 시원스럽게 보인다. 빌딩으로 가로막힌 부분이 없이 탁 트인 시야는 유일하게 높아 보이는 학교 건물로 향하게 한다. 어려웠던 시절에 미국의 선교사들에 의해 세워진 매향중고등학교가 보인다. 이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은 세계문화유산안에서 조상들의 얼과 함께 자라며 배우고 있다. 굳이 돈을 내지 않고도 만져볼 수 잇는 문화유산들이 지천에 널려 있으며 학교 정문 앞에는 개울이 흐르고, 개울 가운데는 돌다리가 있다. 학생들 정서상 이보다 더 좋은 환경은 없을 거라 생각하며 걸음은 다시 북수문으로 향했다.

북수문에 다가서면 한눈에 시선을 사로잡는 건물이 있다. 바로 방화수류정이다. 정조가 어머니 혜경궁 홍씨를 위해 지었다는 이 건물은 수원화성의 꽃으로 불릴 만큼 아름다운 건물이다. 보통 정자를 지을 때는 맞배지붕을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 이지만 방화수류정은 팔작지붕 형태를 갖추었다. 팔작지붕은 왕실의 건물에 주로 사용했던 건축형태로 알려져 있다.

방화수류정에 오르면 수원이 멀리까지 보인다. 수원화성의 성벽들이 길게 늘어져 봄기운에 취해 춤을 추는 듯, 관광객들을 유혹하고 있다. 이곳을 한 바퀴 돌다보면 방화수류정의 정취를 결코 잊을 수 없게 된다.

처음 탐방의 시작지 이었던 북수문은 7개의 아치형 수문에서 작은 물들이 포말을 그리며 아래고 흘러가고 있다. 이곳에서 사진을 찍겠다고 해마다 수많은 사람들이 북수문을 찾고 있지만 정작 사진은 북수문 주변에서 여유를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에 감추어지고야 만다.

전경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