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왕국 신라의 보물 상주 견훤산성

방어와 관찰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요새

신라 천년을 무너뜨린 장본인 중 하나인 견훤은 지금의 문경시 가은읍에 해당하는 경상북도 상주에서 농민의 아들로 태어나 자랐다.

신라의 비장으로 이름을 떨쳤던 견훤은 신라 효공와 4년에 완산주(현 전주)에 후백제를 세워 기세를 떨쳤던 인물이다. 비교적 경주와 가까운 상주에 ‘견훤성’이라는 이름 붙은 성이 있는 것은 견훤의 출신지가 상주이기 때문이다.

▲ 견훤성 가는 길

견훤성은 경북 상주의 장바위산 꼭대기에 있는 전형적인 삼국시대의 산성이다. 해발 약 600m 높이의 정상부에 성이 만들어졌다. 수원에서 약 3시간 거리에 있는 견훤성은 모든 테뫼식 산성이 그러하듯 전략적 요충지에 세워져 있다.

산성의 정상부까지 올라가는 길은 비교적 정리가 잘되어 있다. 경사가 급한 장바위산 정상으로 올라가는 초입은 토사가 무너지지 않도록 계단으로 만들어져 있으며, 100여 미터의 나무 계단이 끝나면 가파른 오솔길을 따라 올라가야 한다.

백두대간의 산세가 주로 화강암으로 이루어져 있듯 이곳도 화강암들이 지천에 널려있다. 다만 풍화작용으로 인한 침식에 의해 화강암들이 잘게 쪼개져 있어 오솔길 자체가 매우 미끄러웠다. 길 자체의 미끄러움을 방지하기 위해 산성정상부까지 이어진 길에는 밧줄이 설치되어 방문자들의 미끄럼 방지를 도와주고 있다.

도로에서부터 30여분 정도 걸어가야 하는 길이지만 매우 미끄럽고 경사가 급해 반드시 등산화를 착용하고 올라가는 것이 좋다. 소백산 중심부에 위치한 만큼 걸어가는 동안 주변을 둘러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소백산의 산세가 줄줄이 이어지고 멀어지며 만든 풍경은 산수화를 절로 떠올리게 한다.

▲ 견훤성의 정문 입구

▲ 정문에서 내려다 본 상주

▲ 견훤성의 배수구

땀범벅이 되어 30여분 만에 도착한 산성의 입구는 비교적 좁은 편이다. 문의 너비는 약 2.5m 정도로순천의 왜성 입구보다 작은 편이며, 오산의 독산성과 비슷한 규모이다. 그러나 문루의 규모는 왜성과 비슷하게 넓어 이 성도 방어와 관찰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요새임을 알 수 있었다.

성의 입구를 정면으로 바라볼 때 왼편에 쌓여진 성벽은 커다란 바위를 기단삼아 쌓아 올렸다. 지형지물을 적절히 활용해 성을 축성한 것이 견훤성의 특징처럼 보였다. 성의 왼편으로 10여 미터를 더 올라가면 상주의 남쪽 계곡이 한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망대 또는 ‘치’라고 볼 수 있는 시설이 보인다. 아직 복구가 되 되지 않아 허물어진 치의 옆모습은 독산성의 치와 거의 흡사한 모습이다.

특별한 이름이 없어 ‘남서일치’라고 이름을 붙였다. 남서일치에서 바라본 속리산 문장대의 모습은 절경이다. 남서일치에서 서문방향으로 길을 걸으면 마치 동양화속에서 튀어나온 듯한 소나무가 한그루 서있다. 소나무 뒤로 비치는 햇살이 일품이다. 산의 정상에서서 고고한 모습으로 산을 지키는 소나무는 ‘내가 견훤성의 주인이다“라고 말하는 것처럼 우리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 서남일치

▲ 서남이치

▲ 서남일치와 이치 사이의 소나무

전설의 고향에서나 등장하는 소나무 옆으로는 또 하나의 치가 서북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자연석 위에 작은 돌을 쌓아 만든 치에서 내려다보는 아래는 까마득한 낭떠러지를 형성하고 있어 적군이 이리로 올라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 보였다. 우리는 이것을 ‘남서이치’라고 명명했다

서문에 해당하는 문의 입구는 반파되어 아직 복원의 손길이 미치지 못했는지 흉한 모습을 드러냈다. 서문 아래로 가는 길은 아예 보이지 않아 복원이 시급해 보였다. 서문에서 북쪽으로 이어진 길에는 내내 부서진 성벽과 이를 뒤덮은 잔나무가지들이 길을 만들어주고 있었다. 바깥쪽의 풍경이 보이지 않는 관계로 성벽을 따라 이동을 계속했다.

북쪽 성벽들은 대체로 보존이 잘되어 있었지만 지반의 침하로 인해 흉한 몰골들이 곳곳에 노출되어 있어 지반침하와 풍화를 막기 위한 긴급조치가 필요한 듯했다. 그럼에도 북쪽에서 다시 동쪽으로 이어진 길은 또 다른 급경사를 이루고 있다. 순천의 왜성이 지반 전체를 인위적 평평하게 깎고 성을 쌓았다면 독산성과 견훤성은 성안의 자연지물을 그대로 보존하면서 성을 쌓았다는 것을 일수 있다.

동쪽 성벽으로 이어진 길이 급경사를 이루었기 때문에 내려가는 길이 쉽지 않았다. 오래전에 만들어진 계단은 삭을 대로 삭아서 조심스러운 발걸음을 걸을 수밖에 없었다. 동쪽의 성벽 안쪽은 해를 많이 받지 못했는지 성벽 자체에 고즈넉한 이끼가 붙어 있었다.

▲ 견훤성의 성벽 모습

오래된 영화를 보는 것처럼 넋을 놓고 이끼와 성벽의 조화를 감상했다. 사람의 손길이 미치지 못한 오래된 고성에서 묻어나는 이끼의 향연 그리고 그 끝자락에서 발견한 ‘치’는 다 허물어져 형태조차 쉽게 발견하기 어려웠지만 그것이 적군의 동태를 감시하던 ‘망루’이었음을 알 수는 있었다.

성의 출발점에 다시 돌아오니 한편으로 무덤이 보인다. 누구의 무덤인지 알 수는 없으나 해가 떠오르는 명당에 자리 잡고, 남녘의 해가 속리산 속으로 사라질 때 까지 바라볼 수 있는 자리에서 오랜 시간을 지켜왔던 것처럼 보였다.

전체적으로 견훤성을 한 바퀴 돌아보는 시간은 40분이면 충분했다. 아직 복원이 다 되지 못하는 것은 상주시의 예산문제와 연관이 있는 것도 있으며 지리적으로 사람이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점도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늘 사람이 북적이는 독산성과 비슷한 형태의 견훤성이지만 사람의 방문은 독산성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한적한 상주의 견훤성은 우리가 가진 또 하나의 보물이었다.

전경만 기자 jkmcom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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