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인 등의 권리 및 자립 지원에 관한 법률」 제정을 앞두고 ‘거리 설명회’ 자리를 마련했다. 서울역 인근 공원에서 천막을 치고, 사람들을 기다렸다.

하루하루 살아가는 분들이 법안에 관심이 있을지 알 수 없었다. 사람들이 얼마나 올지 적잖이 걱정되었다. 초봄이었는데 비가 와서 손이 시릴 만큼 쌀쌀한 날이었다.

이윽고 시간이 되자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작지 않은 천막 안이 쪽방에 거주하는 사람, 거리에서 생활하는 사람, 막 일을 끝내고 모자를 눌러쓰고 온 사람들로 가득 찼다.

정말로 법안 설명을 듣기 위해 온 분들이었다. 꽤 긴 발표를 조용히 귀 기울여 듣더니 설명이 끝나자 의견과 질문을 쏟았다. 뜨거운 열기에 마음도 뜨거워졌다. 내가 누구를 위해 일해야 하는지 분명했다. 국회의원 보좌관으로 일하던 때 이야기다.

2011년 법이 제정되기 전 노숙인 복지는 ‘부랑인과 노숙인’ 복지로 나뉘어 있었는데 그 기준이 모호했다. 노숙인은 일정한 주거 없이 상당한 기간 동안 거리에서 생활한 사람이고, 부랑인은 일정한 주거와 ‘생업수단 없이’ 상당한 기간 동안 거리에서 생활한 경우라고 구분하였다.

생업수단, 즉 ‘일자리’는 ‘있다 없다’하는 상황이 반복되기 때문에 부랑인과 노숙인의 구분은 불가능하다. 문제는 이에 따라 복지사업 주체가 달라진다는 점이다. 부랑인 복지사업은 중앙정부에서, 노숙인 복지사업은 지방정부에서 하도록 분리되어 있어 비체계적·비효율적이었을 뿐더러 책임 소재도 불분명하였다. 법 제정이 반드시 필요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 법은 법 제정 이상의 목표가 있었다. 그동안 법과 제도에서 배제되어 진정한 시민권을 갖지 못한 사람들이 정책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 말을 들은 사람들이 깜짝 놀라 물었다. “노숙인이 법 제정의 주체가 된다고?”

보건의료 관련법은 의사, 한의사, 간호사, 환자 단체 등이 개입한다. 사회복지 관련법은 사회복지종사자들이 관여한다. 노동 관련법은 노동조합의 의견이 중요하다. 그렇다면 노숙인 관련법은 노숙인이 주체가 되는 게 당연하지 않나? 그게 왜 깜짝 놀랄 일인가.

이런 목표가 있었기에 법을 제정하는 과정에서 당사자들의 의견을 직접 듣고 반영하기 위해 노력했다. 늦추위가 매섭던 그해 2월, 노숙인 단체와 함께 ‘홈리스 지원법 제정을 위한 홈리스 1,000인 서명운동’을 진행했다. (홈리스는 주거 불안정 계층 전체를 일컫는 말로 노숙인보다 넓은 개념이다.)

이 청원 서명엔 거리·쪽방·시설·고시원·여관·여인숙 등지에서 실제 생활하는 홈리스 당사자 1531명이 참여했다. 불과 2주 만에 목표를 훌쩍 넘었다. 서명을 받던 우리가 놀랄 정도였다.

3월3일, 국회 앞에서 <홈리스지원법 제정 청원인(홈리스 당사자) 대회>를 열었는데 서명했던 분들 중 80여 명이 참석했다. 상상해 보시라. 우리 사회에서 보이지 않는, 또는 보이지 않도록 격리해야 할 투명인간 취급을 받았던 사람들이 ‘제대로 된 법’을 만들어 달라고 국회 앞에 모여 발언하는 광경을. 큰 단체의 행사에 참여하는 수만 명에 비교한다면 80명은 무척 적은 숫자이지만, 필자의 눈에는 그 어느 단체보다 소중하고, 그 누구보다 아름다웠다.

또, 「국민기초생활보장법」 개정을 준비하면서 실태조사를 위해 쪽방촌을 갔던 적도 있다. 비가 억수같이 퍼붓는 날이었는데 빗방울이 어찌나 거센지 신발과 옷이 완전히 젖었다. 비오는 날이라 일용직 일을 나가지 못하고 집에 계신 분들이 많았다.

방문한 쪽방은 한 층에 15가구가 생활하는 5층 건물 형태로, 화장실과 세면실은 한층 전체가 공동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1평 남짓한 쪽방은 두 사람이 앉아있기도 비좁았는데, 창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방값이 차이가 많이 난다고 했다. 방이 작으니 창문도 작은데, 창문이 없으면 햇빛이 들지 않아 완전히 캄캄한 굴 속이나 다름없었다. 햇빛의 값이 그렇게 비싼 줄 그때 알았다.

만난 분들은 기본적인 생활을 꾸려나가기 조차 어려운 현실과 함께, 일을 하고 싶어도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는 상황에 대해 이야기하였다. 이 의견을 모아 ‘빈곤층 권리보장을 위한’ 법 개정안을 발의하였다. 지금도 그 분들의 말이 생생하다.

“능력은 안 되고, 살 길은 막막하고, 가슴은 답답하다.”

“지금 내가 버는 돈하고, 수급비 받는 거하고 한 50만원 되는데 방값 15만원 내고, 35만원으로 산다. 한 20만원만 더 벌면 저축해서 집을 옮겨가고 싶다.”

“갓난아이가 숨을 안 쉬어서 병원에 갔다. 아이 병원비가 없어서 긴급지원을 받았는데 1년에 한번 밖에 못 받는다고 한다. 또 아프면 어떻게 할지 막막하다.”

‘쪽방촌’이라는 공간은, 누군가에게는 재개발이 필요한 금싸라기 땅이겠지만, 누군가에게는 적은 비용으로 살아갈 수 있는 도심지 유일한 주거지다.

쪽방촌의 주거 환경은 문제가 많지만 지금처럼 대책 없이 철거되는 것도 문제다. 서울시 영등포역 일대의 쪽방촌이 철거된 후 한 언론에서 쪽방촌 거주민들이 어디로 갔는지 추적조사를 한 적이 있었다.

놀랍게도(어쩌면 당연하게도) 많은 이들이 철거된 쪽방촌 근방에 머물고 있었다. 살던 곳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다. 경제적인 이유이기도 하고, 일자리 문제이기도 하고, 이웃과 관계의 문제이기도 했다. 어쨌든 멀리 떠나지 않았다.

서울연구원의 ‘노숙인 분석과 정책과제’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노숙생활을 하게 된 사회적 영향은 3D업종·저임금 일자리, 경제요인에 의한 불안정한 생활, 실직·사업실패 등이었다. 개인적·사회적 위기에 직면했을 때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사람이나 조직이 없으면 결국 노숙에 이르게 된다는 말이다. 노숙인 시설에 처음 입소하는 연령대는 주로 50대(30.4%)와 40대(30.2%)로 저렴한 비용으로 머물 수 있는 주거정책을 가장 필요로 했다.

누구나 원하는 곳에서 삶을 영위할 수 있어야 한다. 주거는 안정적 삶을 위한 최소한의 기반이다. 쪽방촌 이후의 주거정책을 묻고 싶다.

얼마 전 1960년대 멕시코시티 빈민가의 가족이야기 <산체스네 아이들>을 읽었다. 오십대의 아버지와 네 명의 자식들이 털어놓는 생애사다. 일종의 집단 자서전이다. 각자의 시각에서 살아온 이야기를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이들이 사는 곳은 멕시코시티 중심가에 위치한 까사그란데라는 커다란 단층연립주택으로 된 베씬다드(빈민가)다. 쪽방이 떠올랐다. 아버지는 아이들에게 ‘방 하나씩’이라도 물려주고 싶은 것이 소원이다.

“조그만 집을 지어 방을 두세 칸 들여서, 애들마다 제 방에서 살림을 차리고, 그 집에 모여 살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중략) 나는 하느님에게 내가 그 작은 집을 지을 때까지는 죽지 않고 기를 쓰며 살아갈 수 있도록 힘을 달라고 기도한다. 그 애들이 밀려나지만 않을 정도로, 웬만한 집이면 된다.”

아버지는 일평생 노력하지만, 개인의 노력으로 모두의 빈곤을 해결할 수는 없었다. 빈곤의 덫에 빠져 옴짝달싹 못한다. 정부, 정치, 노동조합이 제 역할을 하지 않으니 삶은 제자리걸음이다.

심지어 더 나빠질 것이 없어 보이는 데 더 나빠진다. 빈곤은 사회구조적 문제다. 평생 가볼 것 같지 않은 나라 멕시코의 60년대 이야기에서 2015년 한국사회를 떠올리는 이유다.

이 책의 역자는 “내년이면 이 책을 번역해서 낸지 20년이 된다. 그동안 세상은 얼마나 달라졌는가. (중략) 전 세계적 보수화의 물결 속에 자꾸만 감춰지고 움츠러들 뿐 빈곤의 문제가 해결됐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없을 것이다. (중략) 가난을 선택한 적도 없고 가난을 투쟁의 대상으로 삼지도 못하는 사람들의 형편은 다시금 조명돼야 한다.” 역자후기가 쓰인 날짜는 ‘1997년 6월’이다. 이 책은 번역 된지 거의 40년이 되었지만 이 말은 여전히 유효하다.

「노숙인 등의 복지 및 자립지원에 관한 법률」 은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노숙 등을 예방하고, 노숙인 등의 권익을 보장하며, 보호와 재활 및 자활을 지원하기 위한 정책을 마련하여 노숙인 등의 사회복귀 및 복지를 향상시킬 책임을 진다”고 한다.

「사회보장기본법」도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모든 국민의 인간다운 생활과 자립, 사회 참여, 자아실현 등을 지원하여 삶의 질이 향상될 수 있도록 사회서비스에 관한 시책을 마련하여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법과 제도는 사회복지에 대한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책임을 규정하고 있지만 공적시스템은 이와 차이가 있다.

복지국가와 복지국가가 아닌 나라의 차이가 뭘까? 삶의 책임을 개인에게 떠넘기느냐 아니냐의 차이다. 국가가 책임을 지느냐 안 지느냐의 차이다. 이것이 복지국가를 나누는 기준이다. 우리나라는 주거, 의료, 교육, 노후 모든 책임을 개인에게 넘기고 있다.

개인과 가족이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하며, 정부는 잔여적 서비스를 제공할 뿐이다. 우애 깊은 가족관계를 위해서도, 즐거운 명절을 위해서도 사회보장이 강화되어야 한다. 우리는 언제든, 누구든 실패할 수 있다. 한 번 실패했다고 인생 전체가 실패는 아니다. 개인이 넘어서기 어려운 사회적 장벽이 있을 수 있다. 그때 다시 한 번 기회를 제공하는 게 복지제도여야 한다.

그것이 복지국가다.

박선민(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기획위원)  mail@newstow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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