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이산가족의 꿈같은 재회 모습. Ⓒ 금강산/사진공동취재단

이토록 기가 막히고 비극적인 일이 또 있을 수 있을까? 한국 현대사의 비극 앞에서 슬픔을 넘어 분노가 인다. 누가 하늘이 맺어준 혈육의 정을 끊고 평생을 그리움과 한을 안고 살아가게 만든단 말인가.

60여 년 만에 만난 아빠의 목소리를 잊지 않기 위해 68살의 딸 이정숙 씨가 88살의 노인에게 노래를 청했다. 얼마나 더 살지 모르는 늙은 아빠 리홍종(88) 씨는 젊은 시절 자주 부르던 ‘백마강’을 부르며 딸을 위로한다.

북측의 리한식(87) 씨는 “형님이 보고 싶을 때마다 꺼내 보게 그림을 그려 달라”는 어린 동생의 부탁을 받고 흰 종이에 연필로 자신이 어머니와 함께 살았던 초가집의 기둥과 담벼락, 마루 무늬, 댓돌까지 생생하게 그려냈다.

뱃속에 자식을 임신한 채 신혼 6개월 만에 남편과 헤어졌던 남측의 이순규(85) 할머니와 아버지의 얼굴도 못 본 채 장성한 아들은 주름 가득한 북측의 오인세(85) 할아버지를 만나 겨우 이틀간 총 5번, 10시간의 기가 막힌 가족 상봉의 시간을 가졌다.

지난 20일부터 2박 3일의 일정으로 진행된 제20차 남북 이산가족 1차 상봉 행사가 짧은 만남과 기약 없는 이별로 눈물바다를 이루며 마무리됐다. 북측 가족 141명과 남측 상봉단 389명은 평생 쌓인 한을 일시적으로 풀었지만 또 다른 그리움과 회한을 안고 남은 인생을 살아가게 될 것이다.

7월 말 현재 상봉 신청을 위해 정부에 등록한 이산가족 수는 12만9698명이다. 이 가운데 6만3406명(48.9%)이 이미 세상을 떠났고, 생존자 6만6292명의 절반 이상은 80세가 넘었다.

2000년 이후 지난 20년간 상봉 신청자 13만여 명 가운데 북측 가족을 만난 남측 가족은 3%에 불과한 4000여 명이다. 현재와 같이 100가족 이하의 규모로 이루어지는 상봉으로는 이산가족 다수가 살아서는 가족을 만나지 못한다. 이번에 상봉 기회를 얻은 사람들도 663 대 1의 경쟁을 거쳤다. 이산가족 상봉이 로또 당첨보다 어렵다는 말이 나올 정도이다.

시간이 없다. 남북 당국은 이미 논의됐던 사안들, 즉 전면적인 이산가족 생사 확인을 시작으로 서신 교환, 화상 상봉, 고향 방문, 상봉 정례화 등에 대해 정치적 의도를 배제하고 인도적인 차원의 접근 노력을 보여야 한다.

이념 대립으로 인한 1950년 남북 전쟁은 이 땅에 너무 큰 상처를 남겼다. 산업시설은 붕괴됐고, 이념과 상관없는 셀 수 없는 무고한 사람들이 숨지거나 부상으로 고통을 겪었다. 외세가 개입하고 삼팔선이 그어졌고, 왕래가 단절되면서 123만여명(1974년 추계)의 이산가족이 발생했다.

남북 당국과 정치인들은 역사적으로 자신들의 권력유지를 위한 수단으로 분단을 이용해 왔다. 1972년 겨레에게 이산가족 상봉과 평화통일의 희망을 안겨줬던 7.4남북공동성명도 결국은 박정희 유신체제와 김일성의 장기집권을 위한 불순한 의도로 끝났다.

김대중 정부에 대한 평가는 다양하지만 햇볕 정책으로 인한 이산가족 상봉, 개성공단 및 금강산 관광 경제 교류 등 남북 간 화해 분위기 조성은 높이 평가할 만 하다. 그러나 이명박, 박근혜 정부 들어와 조성된 대북 강경 대응과 대립적인 분위기는 연평도 포격 등의 일촉즉발의 긴장 상태를 낳으며 냉전 시대의 민족사적 비극으로 되돌아갔다.

이번 20차 이산가족 상봉은 북한의 목함지뢰 도발로 인한 전쟁 위기 국면을 딛고 어렵사리 8·25 고위급 회담 합의의 결과로 1년 8개월 만에 열린 것이다. 툭하면 정치적 목적과 자존심을 이유로 회담장을 박차고 나갔던 북한이 이번에는 몇 가지 위기 분위기에서도 판을 깨지 않았다.

이산가족 상봉 문제는 남북관계나 한반도를 둘러싼 정치적 환경과는 별도로 인도적 차원에서 다루어져야 한다. 정치적 흥정의 대상이 아니다. 이후 진행될 당국자 회담이 이산가족과 민족에게 희망을 줄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10여년 만에 극적으로 조성된 현재의 화해 분위기를 이어가기 위해 정부는 금강산관광, 5·24 대북 조치에 대한 전향적인 자세를 보일 필요가 있다. 일부 탈북민의 북한을 자극하는 대북 전단지 발송을 관리하고, 강경 냉전 보수 세력에 휘둘려 남북 관계가 파행으로 가지 않도록 해야 한다. 북한 역시 핵실험, 미사일 도발을 통한 한반도 긴장조성을 더 이상 진행하면 안 된다.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통일은 남북 정부와 국민들의 인내와 성숙함에 달려있다.

조백현 발행인  mail@newstow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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