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어린이집 1만4000곳이 소속돼 있는 한국민간어린이집 선생님들이 28일부터 30일까지 사흘간 연가휴가를 낸 채 아이들을 받지 않고 있다. 전국의 민간어린이집에 다니고 있는 영유아의 수는 70여만명에 이른다.

발단은 정부가 내년 영아반(0~2세) 보육료 지원 단가를 동결하고, 누리과정(만 3~5세) 보육료를 내년 예산에 전혀 반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에 앞서 21일 전국의 17개 시도교육감은 임시총회를 열고 “누리과정 예산은 법률적으로 교육감의 책임이 아닐 뿐만 아니라 현실적으로도 시·도 교육청의 재원으로는 편성 자체를 할 수 없는 실정”이라며 “내년도 누리과정 예산을 편성하지 않겠다”고 결의하면서 연례행사처럼 돼버린 누리과정을 둘러싼 갈등을 예고했다.

정부와 시도교육감 간 갈등, 여기에 민간어린이집 휴원이 추가되면서 어린 아이를 둔 학부모들만 가슴을 졸이고 있다.

누리과정은 만 3~5세 미취학 아동에게 공통적으로 제공하는 무상보육이다. 2012년 3월 5세를 대상으로 시행에 들어가 이듬해에 3~4세까지 확대됐다. 공립유치원은 1인당 월 11만원, 사립유치원과 어린이집은 운영지원비(22만원)와 방과후 활동비(7만원) 등 1인당 월 29만원을 지원한다. 내년도 예산은 올해와 비슷한 3조8668억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누리과정 무상보육은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대선 공약으로 내걸면서 진행되는 사업이다. 그러나 대통령과 여당이 예산마련에 대한 면밀한 검토도 없이 공약으로 내걸었다가 당선 이후엔 재정부담을 시도교육청에 떠넘기면서 해마다 파행을 일으키고 있다.

작년 11월 누리과정 예산을 둘러싼 갈등으로 올해 보육대란이 우려되자 황우여 교육부장관과 여야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간사는 5600억원을 국고에서 지원하고 나머지는 지방채로 메우기로 극적으로 합의한 바 있다.

그러나 올해 정부는 더욱 무책임하게 내년도 55조7299억원의 교육부 예산을 편성하면서 누리과정 예산 약 3조9천만원을 한 푼도 반영하지 않았다. 교육부가 지난 5월 지방재정법시행령을 고쳐 ‘누리과정 보육료 예산 지원은 교육감의 의무’라고 못을 박아 버린 것이다.

현 영유아보육법은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영유아를 보육할 책임을 진다’고 규정하고 있어 정부의 지방재정법시행령 개정은 상위법 위반 논란까지 낳고 있다. 심지어 일부 여당 의원도 작년의 파행에도 불구하고 올해 역시 합리적인 조정안을 내 놓지 못하고 정치적 갈등만 심화시키는 교육부를 비롯한 정부의 무능력을 질책한다.

누리과정 예산이 삭감되면 어린이집의 재정난 심화와 서비스의 질적 하락으로 그 피해는 고스란히 영유아들에게 돌아갈 우려가 높다. 또한 정부가 누리과정 예산을 지방교육 재정에 떠넘길 경우 초중고등 학생에게 지원돼야 할 예산이 상대적으로 줄어들게 돼 교육 전반에 악영향을 미치게 된다.

올해 누리과정 예산으로 홍역을 치른 인천시교육청은 2015년 본예산 편성 시 어쩔수 없이 ‘학교운영비 지원’을 동결하고 교육복지사업 예산을 703억이나 삭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재정 경기교육감의 주장에 따르면, 경기도의 경우 어린이집은 1만 2700개가 넘는데 내년도 누리과정 무상보육 1년 예산으로 약 5천억원이 예상된다. 유치원까지 포함할 경우 약 1조 550억 원 정도의 예산이 필요하다. 작년에 예산 감당을 못해 약 4600억원 정도 편성을 못하다가 나중에 정부가 목적예비비에서 약 5000억원을 책정하고 여기에 약 1조원의 지방채 빚을 내서 가까스로 해결했다고 한다.

진보, 보수 할 것 없이 모든 교육감들이 “2016년 누리과정 예산을 의무지출경비로 편성하게 되면 시도교육청의 여타 교육 사업들이 축소되고 교육청 재정에도 악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집단행동을 불사하며 항의하는 배경이다.

이제라도 대통령과 여당은 상황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선거과정에서 국민에게 약속한 영유아 보육과정에 대한 국가책임을 실현해야 한다. 자신이 해 놓은 약속은 방기한 채 누리과정 떠넘기기에 반발하는 교육감과 어린이집 관계자에게 법과 공권력으로 엄단하겠다고 하니 해도 너무한다는 판단이다.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이 법인세 인상·증세는 반대한다면서 선거 때만 되면 누리과정 무상보육 등 복지는 늘린다는 정치적 사기를 중단하길 바란다. 아울러 가진가가 더 내는 증세와 복지강화를 통한 국민 삶의 질 개선의 길로 나아가길 기대한다. 아이 낳으라면서 공약으로 약속한 무상보육 예산도 책임지지 못하는 정치인과 정부를 어떻게 믿으란 말인가.

조백현 발행인  mail@newstow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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