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초 예정됐던 일정을 이틀이나 앞당기며 정부가 지난 3일 기어코 역사교과서 국정화 고시를 강행했다. 갈수록 국민들의 국정화 반대여론이 높아지자 서둘러 논란을 잠재우기 위해 최소한의 여론수렴 절차까지 무시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공중파 3사가 생중계한 프리젠테이션까지 동원한 황교안 국무총리의 국정화 추진 담화에 대해 심상정 정의당 대표는 “마치 간첩사건 수사 발표를 보는 듯 한 느낌을 가졌다. 이런 걸 시키려고 공안검사 출신 총리를 앉혔구나. 이렇게 생각하는 국민들이 많지 않았겠나 생각한다”라고 비꼬았다.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를 확정 고시한 정부 여당의 모습을 보면 우리나라에 민주주의가 작동하고 있는지를 의심케 한다. 특히 추진과정을 보면 그렇다.

2005년 한나라당 대표였던 시절 기자회견을 통해 “역사에 관한 일은 국민과 역사학자의 판단이다. 어떤 경우든 역사를 정권이 재단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던 박 대통령은 권력을 잡은 후 입장을 하루아침에 180도 바꿨다.

역사학자, 시민사회, 교육계 등 다수 국민이 우려하고 반대하는 국정화를 몰아붙이기 위해 과거 암울했던 유신시대 정치공작 하듯이 역사교과서 추진 여론 조성을 위한 비밀 TF를 만들었다. 독재와 친일을 미화하고 수많은 오류투성이로 전국 2300여개 고등학교 중 세 학교만 채택한 교학사 역사교과서가 모범의 전형으로 치켜세워진다.

현행 역사교과서를 종북, 좌편향이라고 비판하면서 정작 전체주의 북한을 따라 국정화를 추진하는 자가당착을 보인다. ‘학생들이 주체사상을 배운다’, ‘유관순 누나가 교과서에 없다’, ‘6ㆍ25전쟁 책임이 남한에도 있는 듯 기술했다’는 등 왜곡된 주장을 펴다가 “그렇다면 교과서를 검정해 준 교육부 장관이 책임지라”는 역풍을 맞았다.

다양성과 창의성을 가장 중시한다는 자유민주주의를 이념적 신조로 하는 보수주의자들은 국정화를 반대하기는커녕 돈키호테같이 용감무쌍하게 앞장서면서 한편의 코미디를 보여주고 있다.

새누리당의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원이 2013년 11월 ‘한국사 교과서를 둘러싼 논쟁과 해법’이라는 정책리포트를 통해 “국정제는 교과서 공급을 독점하는 것으로, 하나의 관점만을 강요할 가능성이 높다”며 “사실상 이는 자유민주주의 이념과 맞지 않고, 경쟁을 통한 교과서의 질적 수준 제고를 어렵게 한다”고 주장한 것에 대해 정부와 여당은 어떻게 해명할 것인지 궁금하다. 자민당 강경 우익 정권 주도의 일본 역사교과서 왜곡 공세에 대해 우리나라가 수정을 요구할 명분이 이제 사라지게 된 듯해 두려울 뿐이다.

국정화에 대해 진보·보수 할 것 없이 28개의 역사학회가 국정화 철회를 요구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했고, 전국 170여개 대학의 2700여명의 교수가 국정화 반대 의사를 밝혔다. 2만7,000여명의 초·중·고교 교사가 신분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국정화 반대 서명에 참여했고, 대학교에서는 권위주의 시대에 유행했던 대자보가 나붙었다.

그런데도 대통령이 ‘올바른 역사교과서 만들기’라고 강변하며 국정화를 고집불통으로 밀어붙이고만 있으니 기가 막힐 따름이다.

부친이 독재와 친일 의혹을 받고 있는 대통령과 여당 대표가 앞장서서 역사왜곡을 시도하고 있다는 국민적 의혹이 광범위한 상황에서, 국정화를 추진하는 자신들의 행위가 정당하다면 비밀 TF까지 만들어 여론 조작성 작업을 진행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정부가 스타일을 구겨가며 여론수렴 과정을 이틀이나 줄여야만 했는지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부끄러워 얼굴이 후끈거린다.

경제위기와 민생파탄 상황에서 뜬금없이 역사교과서 국정화 일방 강행으로 나라를 혼란에 빠뜨리고선 마치 자신들만이 민생을 걱정하는 듯 한 대통령과 여당의 위선은 보기에도 민망하다.

이제라도 정부 여당은 민주주의와 민생을 위협하는 역사교과서 국정화 시도를 중단하고 역사와 국민 앞에 두려움을 갖길 바란다. 명분도 없고 내년 총선·대선까지 정쟁을 불러올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대해 국민의 반대여론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잘못을 저지른 세력이 늦게라도 결자해지할 일이다.

조백현 발행인  mail@newstow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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